한국 교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글·신현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간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어제의 일이 오늘로 이어져 우리는 그 일을 그대로 행하든지 아니면 반추를 통해 내일을 위한 변화를 꾀하든, 선택을 통해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이라는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을 유지하던지 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를 기획하든지 분별력을 발휘하여 사안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선택적 기회를 부여받는다. 물론, 선택의 주체는 공간이라는 상황·맥락적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라는 시공간의 맥락은 한국적 교육의 특질과 독특한 환경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 맥락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것이며, 주체의 경로 선택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따라서 당연히 미래의 한국 교육을 논할 때 이러한 맥락은 고려되어야 하고,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과 동향은 맥락적 재해석을 통해 한국화 혹은 토착화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육의 과거와 현재
구한말 외세와의 접촉 과정에서 쇄국과 개국의 정치적 혼돈이 조야를 뒤흔들 때 갑오경장(1894년)을 통해 개국을 선포하며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인 것이 불과 130년 전이었다. 이미 그 당시 서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의 후유증으로 노동조합이 발흥하고 공산 사회주의가 선포되었던 때이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하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세기말 혼돈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공교육이 막 시작되려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공교육도 시작되었다. 우리의 공교육은 기능 중심의 국공립학교 교육과 교육구국(敎育救國)의 기치로 인재 양성에 힘쓰는 사립학교 교육이 병행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근대교육은 일제강점기(1910-1945)를 통해 공립학교 교육이 황국신민화 교육으로 황폐해지고, 사립학교 교육이 근근이 이어져 오면서 공교육의 멸절 일보 직전에 광복 해방(1945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은 국권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고 3년간(1945-1948) 미군정에 의한 신탁통치로 정식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것은 1948년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1948-1960)은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교육입국(敎育立國)의 초석을 다지는 초중고 대학의 기간 교육체제와 법제를 갖추어 나가면서 문맹 퇴치와 직업기술교육 등에 몰두하였다. 3공화국 이후 장기 집권한 박정희 정부(1962-1979) 시기에는 교육의 양적 팽창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산업 역군이자 교육받은 인력의 공급원으로서 교육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1981-1988)와 6공화국 노태우 정부(1988-1993)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의 도화선을 당긴 정부들로서 교육에 관한 국가의 역할이 ‘국가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 적 통치로 이어지던 전통이 도전받던 시기였다. 특히, 정통성 문제로 민주화의 도전이 지속되었던 제5공화국 정부는 드물게 과외 금지 조치로 잘 알려진 7.30 교육개혁으로 시작해서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 종합방안 발표로 마무리되었다.
문민정부로 알려진 김영삼 정부(1993-1998)는 교육 대통령을 자임할 정도로 세기말 이후 근 20여 년에 걸쳐 펼쳐질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류를 잘 포착하여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방대한 교육개혁 방안을 1995년에 발표하였다. 5.31 교육개혁 방안이 갖는 의미는 교육의 전 분야에 걸친 해묵은 현안의 해결 방안은 물론 미래적인 관점에서 갖추어야 할 교육의 태세를 점검하여 발전적 대안을 치밀하게 제시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개혁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경도된 시장주의적 접근의 도입으로 교육의 근본이 훼손되고,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경제 논리에 의해 교육의 정서가 피폐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곤 하지만, 국내외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전통적인 교육 경로의 변경이 불가피한 포화된 시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징후는 뒤이은 정권 교체된 정부인 국민의 정부(1998-2003)와 참여정부(2003-2008)에서도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많은 국가의 교육정책이 5.31 교육개혁의 논리와 정책 아이디어를 맹아로 형성, 개발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고교평준화의 개선안으로서 고등학교 교육의 다양화, 평가 연계 대학재정지원사업, 평생교육의 강조와 인적자원개발로 대표되는 교육의 지평 확대 등 교육 전 분야에 걸쳐 교육 분야의 정책 및 제도들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2008-2013)와 박근혜 정부(2013-2017)에서는 5.31 교육개혁의 아이디어가 당시 상황에 맞게 적합한 방식으로 변경되거나 정교해진 방식으로 교육정책이 추진되었고, 교육 현장은 정책에 따라 이행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 분야 탈규제, 교육부 업무의 지방 위임 및 이양, 학교 자율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부 중심의 정책결정 및 집행 권한은 막강하였다. 물론, 이명박 정부 시기에 교육감 주민직선제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을 중심으로 지방교육의 권력이 상승함에 따라 중앙과 지방의 교육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나면서 거버넌스의 필요와 요구가 비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2017-2022)에서 국가교육회의에 이어 현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가 발족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국 교육의 과거 성찰로부터 얻은 현재의 고민
한국 교육의 실제와 정책 그리고 그것의 맥락을 간단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살펴보았을 때 현재의 우리는 경로 의존과 새로운 경로 창출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안고 있다. 고민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국가와 개인이 교육에 투자한 결과로써 한국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 일갈하고 싶다. 한국 교육이 그동안 경제발전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룩하는데 견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육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는 교육받은 인력, 인재의 공급을 통해 그들이 일궈낸 경제 산업적 성과는 교육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학술적 탐구로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되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는 GDP(명목 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0위,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 국민 1인당 총소득 세계 6위에 오르는 놀랄만한 성과를 냈고 이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교육입국으로 국가의 초석을 닦은 지 75년 만에 교육보국(敎育報國)을 통해 국가경쟁력 이룩이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성과를 이루어 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한국의 거대한 도약의 원천이 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외국의 국가지도자들은 한국 교육의 위대함과 그 성과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국가의 초석으로서 교육의 토대와 당면한 현실적 이슈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우려라는 청색경보로 가볍게 받아들이기에는 사뭇 심각하다. 한국의 교육은 양적 팽창에 비해 교육의 질적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교육체제는 내용과 방법 면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명문대와 의대를 지향하는 학생·학부모의 열망과 학교의 화답은 보통교육을 대학입시를 위한 정형화된 교육으로 만들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원인이면서 또한 그로부터 고통받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학력 지상주의가 학벌사회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세기말 교실 붕괴로 시작된 붕괴 담론은 이제 왕따 및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비자발적인 공포감을 항상 느끼며 생활하는 학교 그리고 본업이 교실에서 학생들을 이끄는 수업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업무들 외 생활지도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 속에서 근무하는 교원의 문제로 진화되었다. 교원은 실추된 권위와 과중한 업무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의 상실로 교직을 중도에 그만두려는 경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학부모들은 자녀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가정에서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학원을 기웃거린다. 교실이 흔들리는 것은 이와 같이 학교 공동체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교원이 당연히 서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며, 자리를 찾지 못하게 만드는 학교와 교육체제, 더 나아가 국가사회의 잘못된 공조 때문이다. 정부의 교육정책 또한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고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적용될 수 있는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문제가 발생하면 임시방편적으로 여론의 향배에 따라 단기적인 처방으로 임해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현재 우리의 교육이 안고 있는 고민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한국교육학회 70주년 기념 학술대회로부터 마련되었다. 교육의 실제(현장) 및 교육정책과 함께 한국 교육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학술연구단체인 한국교육학회는 1953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인 부산에서 뜻있는 학자들에 의해 발족하여 작년에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23년 6월에 열린 학술대회는 한국 교육학 각 분야의 70년 성과와 과제를 탐색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교육의 현상을 탐구해 온 교육학의 주요성과는 ①교육 분야의 확대와 다양성 그리고 연구자의 증가로 큰 양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②그에 따라 현장으로부터 파생된 연구 주제나 방법론이 다양해지는 질적 성장도 이루었고, ③한국교육학회는 교육 실제와 정책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로서의 기반을 견고하게 구축하였으며, ④교육 연구자들은 국가 교육정책 및 제도 형성의 지원자 그리고 현장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역할 혹은 중간계 지식인(knowledge practitioner) 양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 개선에 이바지해 왔다는 점 등이었다.
반면, 70주년 기념 연차 학술대회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교육학의 주요 과제(혹은 문제점)는 ①우리의 교육 현상을 설명·예측하고, 현장 문제해결에 이바지하는 ‘한국 교육이론’의 도출과 생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 ②교육 연구 및 이론과 실제 현장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 ③교육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쟁점과 이슈들을 학문적 담론 형성을 통해 공론장에서 대화하고 논의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 ④보다 실천적인 연구를 통해 교육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교육정책 및 제도를 선도해 나가는데 부족했다는 점, ⑤미래의 교육에 대비하는 교육의 실천 과제와 가치 있는 담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이러한 한국 교육학 70주년을 되돌아보면서 나타난 주요 과제 중의 하나는 한국 교육을 연구하는 교육학이 한국 교육 및 세계 교육의 미래 담론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필요와 당위였다. 즉 한국 교육학은 미래의 교육을 내다보면서 미래 한국 교육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빠르게 진화하는 AI를 비롯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글로벌 기후 및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의 고조, 경제 사회적 격차로 인한 불평등과 이로 인한 갈등의 심화, 국제적 분쟁의 확산과 전쟁의 위기감, 물질문명의 고도화에 따른 인간소외 및 병리 현상의 심화, 치명적인 바이러스 팬데믹과의 공존, 여기에 더하여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에 이어 국가소멸론이 운위되는 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메가트렌드는 미래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 분야에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국가, 사회적으로 교육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한국 교육의 세 가지 축인 정부와 학계는 물론 교육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시대적 소명을 마주하고 있다. 바야흐로 복잡하고 혼란한 불확실한 미래 시대를 열어갈 교육 분야에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임이 틀림없다.
첫째, 정부는 국가와 국민이 처한 교육적 상황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데이터에 기반하여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조화를 정교하게 설계된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5년 단임의 정권에서는 인기영합적으로 현재의 교육 이슈 선점에 주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미래 준비가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의 빅데이터 의존성 확대와 디지털 대전환이 교육 실제에서 연착륙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미래지향적으로 정책의 과학적 기반을 학계와 민간의 협치를 통해 꾸준히 축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교육 현장(교육계)은 미래지향적 교육공동체의 회복과 그들의 굳건한 결연을 통해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 영역으로 우뚝 서야 하겠다. 개인 혹은 집단으로 운신하는 교육 현장의 교원, 학생, 학부모, 행정가들의 가치 지향성 다변화로 인해 공동체의 배려와 존중 그리고 협치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탐대실의 이기적 결과를 넘어 심정적 연대와 공감 확산을 통해 교육 논리의 창출을 주도하는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기능 회복이 중요하다.
셋째, 학계는 교육 실제와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카데미즘을 회복하고, 현장적 실천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통해 교육의 글로벌 및 디지털 시대에 정책적으로 대응하며, 지속가능한 미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독자성을 확립하기 위한 아카데미즘의 정착과 교육학 연구와 실제 현장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한국 교육학의 오래된 숙제이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준비하는 본질에 정합하는 키워드이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육학 학술연구는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지식적 아이디어와 함께 지혜의 보고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신현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교육행정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남대학교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교육정책, 고등교육, 교원교육 분야이며, 교육정치학회, 교원교육학회, 교육행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고려대학교 BK 사업단장, 기획예산처장, 사범대학장을 거쳐, 현재는 제46대한국교육학회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