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지켜온 66년,
자부심 넘치는 제물포 정신으로 이어지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글. 김수연 취재작가 | 사진. 고인순

최악을 방지하는 것이 법과 규제라면, 명예로움은 인간의 최선을 이끌어내는 가장 적극적인 동력이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 아래 전국 최초로 무감독 시험을 시행해 온 제물포고등학교는 인성 교육의 표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양심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당당한 자부심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양심을 지켜온 66년, 자부심 넘치는 제물포 정신으로 이어지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글. 김수연 취재작가 | 사진. 고인순

최악을 방지하는 것이 법과 규제라면, 명예로움은 인간의 최선을 이끌어내는 가장 적극적인 동력이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 아래 전국 최초로 무감독 시험을 시행해 온 제물포고등학교는 인성 교육의 표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양심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당당한 자부심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낙제생 53명으로 시작된 명예의 역사
시험이 시작되는 교실, 학생들은 일제히 오른손을 들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1954년 개교한 이래 66년 동안 이어져 온 제물포고등학교의 시험 풍경이다. 이들이 인천 일대는 물론 전국 차원에서 ‘전통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 ‘무감독 시험’이라는 특별한 전통이 큰 몫을 차지하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학생들의 구호에서도 보이듯, 이들은 당장 점수 몇 점을 올리는 일보다 스스로 양심과 명예를 지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이 무감독 시험의 출발은 1956년 1학기 중간고사부터였다고 합니다. 초대 길영희 교장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무려 66년에 이르도록 자랑스러운 학교 전통이 되었습니다.”
교무부장인 백성수 교사는 지금껏 이 학교를 거쳐 간 3만8천여 명의 동문은 물론 모든 재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야 할 최고의 전통으로 이 양심 교육을 꼽을 만큼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자부심의 시작이 ‘53명의 낙제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치른 무감독 시험 결과, 전교생 569명 중 53명의 낙제자가 나왔는데, 길영희 교장은 이들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고 한다.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낙제를 면할 수 있었음에도, 양심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53명의 낙제생들은 다음 학기 시험에서 전원 통과하는 변화를 보여줬다. 학교가 추구하는 양심 교육의 의미와 방향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제시해 준 결과였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학교의 교훈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껏 이어지며, 시대를 뛰어넘는 명문 교육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 지켜가는 전통, 자율 정신으로 빛나는 학교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를 때면 양심과 관련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들 스스로가 정했다는, 이른바 ‘양심 명언’들이다.
“인생에서 당신을 판단하는 것은 시험이 아닌 양심이다.”
“양심이 사람을 만든다.”
“양심은 성찰의 나침반이다.”
모두 학생들 자체적으로 구성해 운영하는 ‘양심지원단’이 공모하고 선정한 문구들이다. 이 양심지원단은 작년엔 무인(無人) 아나바다 행사를 치르며 자율과 양심에 따른 행동의 반경을 넓혔다. 또 학교생활 중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찾아 해결방안을 찾아내기도 한다. 다른 학교라면 교사들이 지시하고 훈시할 일을 학생들이 하는 셈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이 명예로운 전통을 지키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에요. 교사로서 뿌듯하고 감동적인 일이죠.”
중국어를 담당하는 이희갑 교사는 지난해 학생들과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무감독 시험을 볼 때면 학생들의 화장실 이용 등의 편의를 위해 교사 1인이 복도에서 대기하며 지도해 왔는데, 아무래도 1인의 교사만으로는 여러 학급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기에 무리가 따랐다. 의논 끝에 교사들은 2인으로 늘려 운영키로 결정했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학생들을 배려하려는 의도였는데, 학생회에서 강력한 항의가 들어오는 거예요. 무감독 시험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정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곧바로 학생회 주최의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고, 결국 교사 증원 배치를 철회했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교사들은 내심 흐뭇했다고 한다. 무감독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진심과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당장 점수 몇 점을
올리는 일보다 스스로 양심과
명예를 지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건,
학생들에 대한 근본적 신뢰이기에
스스로 더 철저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제물포의 명예로운 전통은 오늘도 현재진행형
제물포고등학교가 추구하는 자율적 교육 방침을 엿볼 수 있는 분야는 무감독 시험제도 말고 또 있다.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개가(開架)식 도서관’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폐가(閉架)식으로 운영되는 것에 반해, 이들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책을 접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공간 구성과 설계단계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웃터 북’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학생들의 동선이 가장 빈번한 곳에 위치한 이 웃터 북은 고교 시절의 사색과 탐구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물론 치열한 입시 경쟁이 과열되는 환경 속에서 이러한 학교의 전통이 여전히 유효한 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외부에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하며 경이롭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적지 않다. 특히 매년 초 처음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신입생 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 “역시 제물포고등학교!”라는 안도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달라진 태도가 벌써부터 느껴지거든요. 누구의 감시 없이도 당당하게 양심을 지키며 시험을 치른 경험이 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죠.”
백성수 교무부장은 유독 이 ‘믿음’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 간에, 함께 공부하는 동료 간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인 것이다. 무감독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역시 이와 일치한다.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종현 학생은 무감독 시험 선서를 할 때마다 전통 있는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60년 이상 이어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우리 학교는 졸업한 선배들이 주는 상과 장학금도 타 학교보다 많은 편인데,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활약하는 선배들이 많다는 의미라 든든하기도 하고, 훌륭한 전통과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같은 반인 강민승 학생은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건, 학생들에 대한 근본적 신뢰이기에 스스로 더 철저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 명예로운 전통에 걸맞은 탄탄한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자율적 선택에 맡기는 신뢰가 학생들로 하여금 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최원준 학생은 “나 제고생이야!”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전통의 명문고를 다니는 이점이라 했다.
“어디 가서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우리 학교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지금 제가 2학년인데, 학교의 이런 전통이 앞으로도 제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겠죠.”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목표 아래 시작된 교육 철학이, 6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생생히 확인되는 듯하다.

무감독 시험을 비롯한 양심 교육이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 학교 개교 시기는 전쟁 직후 물질적 궁핍과 가치관의 혼란이 극도에 달하던 무렵이었어요. 그런 시대에 무감독 시험이라는, 도덕적 기풍으로 학교를 일으킨 초대 길영희 교장선생님의 결단은 그야말로 혜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빛나는 전통이 비단 과거에만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에요. 인성과 학력을 겸비한 인재 양성은 특정 시대를 넘어 우리 교육이 지향해 갈 근본 방향이기 때문이죠.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른다는 건 양심에 따라 자기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이게 무너지면 제아무리 높은 학식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에선 아직도 반칙과 부정이 당연한 듯 저질러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 양심이란 가치는 인성 교육의 차원에서 더욱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양심인증서를 발급해 졸업식 때 수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취지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들이 무감독 시험 전통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정말 대단합니다. 몇 해 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교장으로 부임해 지켜보니, 3년 동안 그러한 명예로운 자부심을 지켜준 학생들에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상징적인 징표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졸업생들에게 양심인증서를 만들어 수여하고 있습니다. 3년간 바른 선택과 바른 행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준 것에 대한 명예로운 보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물포고등학교의 전통을 이어가는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아주 작은 점수 차가 학생들에게 주는 중압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6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거예요. 때로 마음의 갈등과 유혹이 있을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물포고는 그 전통을 지금껏 훌륭히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큰 동력은 매 순간 양심을 기준 삼아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 학생들입니다. 어쩌다 잠시 길을 벗어났다가도, ‘제고인이 그러면 돼?’하는 물음 하나면 바로 행동을 고치거든요, 그 점이 저는 진짜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는 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규제와 감시가 아닌 스스로 판단으로 앞서 나가는 인재, 자랑스러운 ‘제고인’의 전통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낙제생 53명으로 시작된 명예의 역사
시험이 시작되는 교실, 학생들은 일제히 오른손을 들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1954년 개교한 이래 66년 동안 이어져 온 제물포고등학교의 시험 풍경이다. 이들이 인천 일대는 물론 전국 차원에서 ‘전통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 ‘무감독 시험’이라는 특별한 전통이 큰 몫을 차지하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학생들의 구호에서도 보이듯, 이들은 당장 점수 몇 점을 올리는 일보다 스스로 양심과 명예를 지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이 무감독 시험의 출발은 1956년 1학기 중간고사부터였다고 합니다. 초대 길영희 교장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무려 66년에 이르도록 자랑스러운 학교 전통이 되었습니다.”
교무부장인 백성수 교사는 지금껏 이 학교를 거쳐 간 3만8천여 명의 동문은 물론 모든 재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야 할 최고의 전통으로 이 양심 교육을 꼽을 만큼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자부심의 시작이 ‘53명의 낙제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처음 치른 무감독 시험 결과, 전교생 569명 중 53명의 낙제자가 나왔는데, 길영희 교장은 이들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고 한다.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낙제를 면할 수 있었음에도, 양심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53명의 낙제생들은 다음 학기 시험에서 전원 통과하는 변화를 보여줬다. 학교가 추구하는 양심 교육의 의미와 방향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제시해 준 결과였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학교의 교훈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껏 이어지며, 시대를 뛰어넘는 명문 교육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 지켜가는 전통, 자율 정신으로 빛나는 학교
학교 건물 계단을 오를 때면 양심과 관련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들 스스로가 정했다는, 이른바 ‘양심 명언’들이다.
“인생에서 당신을 판단하는 것은 시험이 아닌 양심이다.”
“양심이 사람을 만든다.”
“양심은 성찰의 나침반이다.”
모두 학생들 자체적으로 구성해 운영하는 ‘양심지원단’이 공모하고 선정한 문구들이다. 이 양심지원단은 작년엔 무인(無人) 아나바다 행사를 치르며 자율과 양심에 따른 행동의 반경을 넓혔다. 또 학교생활 중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찾아 해결방안을 찾아내기도 한다. 다른 학교라면 교사들이 지시하고 훈시할 일을 학생들이 하는 셈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이 명예로운 전통을 지키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에요. 교사로서 뿌듯하고 감동적인 일이죠.”
중국어를 담당하는 이희갑 교사는 지난해 학생들과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무감독 시험을 볼 때면 학생들의 화장실 이용 등의 편의를 위해 교사 1인이 복도에서 대기하며 지도해 왔는데, 아무래도 1인의 교사만으로는 여러 학급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기에 무리가 따랐다. 의논 끝에 교사들은 2인으로 늘려 운영키로 결정했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처음엔 좀 놀랐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학생들을 배려하려는 의도였는데, 학생회에서 강력한 항의가 들어오는 거예요. 무감독 시험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정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곧바로 학생회 주최의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고, 결국 교사 증원 배치를 철회했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교사들은 내심 흐뭇했다고 한다. 무감독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진심과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당장 점수 몇 점을
올리는 일보다 스스로 양심과
명예를 지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건,
학생들에 대한 근본적 신뢰이기에
스스로 더 철저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제물포의 명예로운 전통은 오늘도 현재진행형
제물포고등학교가 추구하는 자율적 교육 방침을 엿볼 수 있는 분야는 무감독 시험제도 말고 또 있다.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개가(開架)식 도서관’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폐가(閉架)식으로 운영되는 것에 반해, 이들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책을 접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공간 구성과 설계단계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웃터 북’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학생들의 동선이 가장 빈번한 곳에 위치한 이 웃터 북은 고교 시절의 사색과 탐구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물론 치열한 입시 경쟁이 과열되는 환경 속에서 이러한 학교의 전통이 여전히 유효한 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외부에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하며 경이롭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적지 않다. 특히 매년 초 처음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신입생 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 “역시 제물포고등학교!”라는 안도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학생들의 달라진 태도가 벌써부터 느껴지거든요. 누구의 감시 없이도 당당하게 양심을 지키며 시험을 치른 경험이 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죠.”
백성수 교무부장은 유독 이 ‘믿음’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 간에, 함께 공부하는 동료 간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인 것이다. 무감독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역시 이와 일치한다.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종현 학생은 무감독 시험 선서를 할 때마다 전통 있는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60년 이상 이어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우리 학교는 졸업한 선배들이 주는 상과 장학금도 타 학교보다 많은 편인데,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활약하는 선배들이 많다는 의미라 든든하기도 하고, 훌륭한 전통과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같은 반인 강민승 학생은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건, 학생들에 대한 근본적 신뢰이기에 스스로 더 철저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 명예로운 전통에 걸맞은 탄탄한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자율적 선택에 맡기는 신뢰가 학생들로 하여금 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최원준 학생은 “나 제고생이야!”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전통의 명문고를 다니는 이점이라 했다.
“어디 가서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우리 학교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지금 제가 2학년인데, 학교의 이런 전통이 앞으로도 제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겠죠.”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목표 아래 시작된 교육 철학이, 6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생생히 확인되는 듯하다.

무감독 시험을 비롯한 양심 교육이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 학교 개교 시기는 전쟁 직후 물질적 궁핍과 가치관의 혼란이 극도에 달하던 무렵이었어요. 그런 시대에 무감독 시험이라는, 도덕적 기풍으로 학교를 일으킨 초대 길영희 교장선생님의 결단은 그야말로 혜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빛나는 전통이 비단 과거에만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에요. 인성과 학력을 겸비한 인재 양성은 특정 시대를 넘어 우리 교육이 지향해 갈 근본 방향이기 때문이죠.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른다는 건 양심에 따라 자기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이게 무너지면 제아무리 높은 학식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에선 아직도 반칙과 부정이 당연한 듯 저질러지는 것이 사실이기에, 이 양심이란 가치는 인성 교육의 차원에서 더욱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양심인증서를 발급해 졸업식 때 수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취지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들이 무감독 시험 전통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정말 대단합니다. 몇 해 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교장으로 부임해 지켜보니, 3년 동안 그러한 명예로운 자부심을 지켜준 학생들에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상징적인 징표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졸업생들에게 양심인증서를 만들어 수여하고 있습니다. 3년간 바른 선택과 바른 행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준 것에 대한 명예로운 보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물포고등학교의 전통을 이어가는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아주 작은 점수 차가 학생들에게 주는 중압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6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거예요. 때로 마음의 갈등과 유혹이 있을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물포고는 그 전통을 지금껏 훌륭히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큰 동력은 매 순간 양심을 기준 삼아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 학생들입니다. 어쩌다 잠시 길을 벗어났다가도, ‘제고인이 그러면 돼?’하는 물음 하나면 바로 행동을 고치거든요, 그 점이 저는 진짜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는 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규제와 감시가 아닌 스스로 판단으로 앞서 나가는 인재, 자랑스러운 ‘제고인’의 전통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