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호흡하는 교육

글.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학장

우리나라의 경우 집에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가 있으면 부모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대입에 관심을 보인다. 자녀가 지금의 나이에 맞게 학교생활을 잘하느냐보다 미래에 닥칠 대학입시에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요즘 말로 하면 ‘기-승-전-대입’이다. 무슨 말로 시작해도 결국 대입으로 결론이 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등 교육 현장에서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성숙에 대해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대입과 연결시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일정한 틀 속에서 골몰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각자 가고 싶은 대학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간 사람은 적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20대에 가고 싶은 곳을 간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 사람, 즉 소수의 성공과 다수의 실패 차이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20대의 다수가 실패와 고통이 아니라 행복과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교육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틀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괴물을 키우는 교육

부모들은 자녀에게 “다른 것은 못 해도 공부만 잘해다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이 말은 ‘집안의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공부에 전념하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공부를 잘 하기만 하면 뭐든 해도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하나는 ‘집안의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공부만 하면 되는구나’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두 가지 반응은 가정과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 기본적으로 배려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끼리 생활하게 되면 그간에 잘 나타나지 않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삶과 호흡하는 교육

글.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학장

우리나라의 경우 집에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가 있으면 부모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대입에 관심을 보인다. 자녀가 지금의 나이에 맞게 학교생활을 잘하느냐보다 미래에 닥칠 대학입시에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요즘 말로 하면 ‘기-승-전-대입’이다. 무슨 말로 시작해도 결국 대입으로 결론이 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등 교육 현장에서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성숙에 대해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대입과 연결시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일정한 틀 속에서 골몰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각자 가고 싶은 대학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간 사람은 적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20대에 가고 싶은 곳을 간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 사람, 즉 소수의 성공과 다수의 실패 차이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20대의 다수가 실패와 고통이 아니라 행복과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교육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틀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괴물을 키우는 교육

부모들은 자녀에게 “다른 것은 못 해도 공부만 잘해다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이 말은 ‘집안의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공부에 전념하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공부를 잘 하기만 하면 뭐든 해도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하나는 ‘집안의 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공부만 하면 되는구나’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두 가지 반응은 가정과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 기본적으로 배려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끼리 생활하게 되면 그간에 잘 나타나지 않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위의 반응 중에 첫째는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어떠해도 좋다는 성과 지상주의의 유형을 낳을 수 있다. 오로지 최종 성과에만 주목할 뿐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정당한지 돌아보지 않게 된다. 둘째는 결과 이외에 다른 문제에 대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유형을 낳을 수 있다.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공부 이외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냉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처럼 말이 원래의 취지와 전혀 다른 의미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과 지상주의 유형과 공감 부족 유형이 서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공감을 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성과에만 주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동료가 있어도 위로를 건넬 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분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학업의 성취를 높일지 몰라도 결과 이외에 다른 것을 이해할 줄 모르는 괴물을 키우는 셈이다.


자녀가 지금의 나이에 맞게
학교생활을 잘하느냐보다 미래에 닥칠
대학입시에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요즘 말로 하면
‘기-승-전-대입’이다

백락의 말 조련과 장자의 비판

사람에게 교육은 ‘없던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다. 동물의 경우 훈련이 사람의 교육에 대응할 만하다. 말은 주위에 나는 소리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원래 유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다. 반면 말이 훈련을 받으면 사람을 등에 태우고 칼날이 부딪치고 화살이 쏟아지는 전장을 누비게 된다. 이렇게 훈련된 말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전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말을 조련하는 사람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장자』의 「마제(馬蹄)」에 보면 말의 생태와 조련을 다루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말은 사람과 달리 말굽이 있어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털이 있어 바람이나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이 때문에 말은 마구간이 아니라 야생 상태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람은 전투와 의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말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말을 야생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조련사는 말의 털을 깎고 발굽을 깎아내고 인두로 지지며 굴레로 묶어서 구유에다 나란히 모아 둔다. 말의 조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먹이를 주지 않고 물도 한 모금도 먹이지 않고 달음박질을 시켜 명령에 따르게 한다. 말은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앞에 있는 재갈로 통제하고 뒤에서 채찍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러한 말의 훈련 과정을 설명한 뒤에 역설적인 사실을 들추어낸다. 당시 백락(伯樂)이 훌륭한 조련사로서 각광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말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하고 죽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백락의 조련 과정에서 말은 마구(馬具)에 길들여지느라 20∼30%가 다치거나 죽고, 먹이와 채찍으로 통제하는 훈련을 받다가 50%가 다치거나 죽게 된다. 이렇게 보면 백락은 원래 있던 말의 반을 훈련시키느라 나머지 반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 것이다.

교육은 왜 하는가

백락의 경우 명시적으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사상이라는 지표가 제시되다 보니 훌륭한 조련사의 명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장자의 통찰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기-승-전-대
입’의 교육을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교육도 소수의 성공에 가려진 다수의 실패가 각자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그냥 눈감게 될 수 있다.
보통 ‘교육’하면 학교를 비롯한 특정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 생각은 교육과 시험 평가를 혼동하는 결과이다.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지만 평가는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효과는 시험 성적으로만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교육은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는 교과 활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교육은 친구와 어울리며 잡담하고 무엇을 하며 살까 고민하고 상상하게 하는 제반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교육을 평가와 교과서의 자장에서 벗어나게해야 진정으로 그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교육은 결국 시대, 사회, 학교, 교과서 등의 환경에서 부모, 교사, 친구와 어울리며 사람이 독자적으로 느끼고 사고하면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다양한 활동을 가리킨다. 그 결과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배운 것을 혼자 있을 때도 제대로 활용하고, 학교 안에서 익힌 것을 학교 밖에서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은 결코 특정한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틀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백락이 말을 조련하는 무자비한 방식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절반의 사상자를 낳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백락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의 근육을 키우는 교육

사람은 아무리 계획을 잘 짠다고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난다. 이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한다. 선택이 바라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우리는 선택에 앞서 참조할 만한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남아있고 결과가 반드시 자신의 기대와 예상대로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교과서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 담을 수가 없고 교육은 모든 문제를 예비할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안타까움, 시간이 더 있으면 잘할 수 있을 듯한 아쉬움, 진심을 전달하기 어려운 실망,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과정의 초조,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 등을 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특히 인생은 한 번의 승부로 끝나지 않고 한 가지 문제를 풀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새로운 문제는 앞서 겪었던 경우와 비슷할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경우와 전혀 다를 때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매 순간이 나의 실력과 한계를 실험하는 도전의 특성을 갖는다. 도전은 긴장되고 두렵기 때문에 중도 포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물건을 들려고 하면 근육이 필요하듯이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풀려면 삶의 근력을 필요로 한다. 이 삶의 근력이 바로 가정과 학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 드나들고 부모와 교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기른 교육의 힘에 해당된다. 이제 교육은 학교 안에서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는 활동을 벗어나서 삶의 지평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패에 너그러운 사회

우리는 인생을 정해진 공식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매번 성공을 거둘 수 없으므로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실패할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이때 사회가 실패에 너그럽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재기할 수 없는 심판으로 간주된다면 인생에서 실패가 끼어들 가능성을 열어두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르면 성공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실패는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이 된다.
사람이 인생에서 실패를 피하려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세상에는 성공만을 가져다주는 비법이 있고 규칙과 상식을 넘어서는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된다. 실패에 너그럽지 않은 사회는 앞서 이야기 했던 성과 지상주의와 공감 부족의 유형이 여기저기에서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시대가 괴물을 낳고 괴물이 시대를 오도하게 된다.
사회가 실패에 너그러울수록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며 알 수 없는 미래의 바다를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다. 장자보다 앞서 활약했던 공자를 키운 것은 바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였다. 공자가 유학의 창시자이자 성인으로 평가받기에 시대의 환영을 받은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공자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어』에 보면 노나라 사람은 공자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지기불가이위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자가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실패가 공자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오늘날 교육과 인생에서 겪는 실패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태도를 가져야겠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최초로 풀어야 하는 대열에 있는 만큼 ‘실패할 수 있는 기회’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논어』에 보면 노나라 사람은
공자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
(지기불가이위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자가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학장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학대학에서 동양고전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성과를 K-MOOC를 통해 사회적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인권유학』, 『공자의 인생 강의』, 『동양철학의 유혹』, 『맹자여행기』, 『사람다움의 발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위의 반응 중에 첫째는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어떠해도 좋다는 성과 지상주의의 유형을 낳을 수 있다. 오로지 최종 성과에만 주목할 뿐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정당한지 돌아보지 않게 된다. 둘째는 결과 이외에 다른 문제에 대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유형을 낳을 수 있다.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공부 이외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냉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처럼 말이 원래의 취지와 전혀 다른 의미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과 지상주의 유형과 공감 부족 유형이 서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공감을 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성과에만 주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동료가 있어도 위로를 건넬 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분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학업의 성취를 높일지 몰라도 결과 이외에 다른 것을 이해할 줄 모르는 괴물을 키우는 셈이다.


자녀가 지금의 나이에 맞게
학교생활을 잘하느냐보다 미래에 닥칠
대학입시에 어떻게 성공하느냐에
관심을 둔다. 요즘 말로 하면
‘기-승-전-대입’이다

백락의 말 조련과 장자의 비판

사람에게 교육은 ‘없던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다. 동물의 경우 훈련이 사람의 교육에 대응할 만하다. 말은 주위에 나는 소리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원래 유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다. 반면 말이 훈련을 받으면 사람을 등에 태우고 칼날이 부딪치고 화살이 쏟아지는 전장을 누비게 된다. 이렇게 훈련된 말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전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말을 조련하는 사람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장자』의 「마제(馬蹄)」에 보면 말의 생태와 조련을 다루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말은 사람과 달리 말굽이 있어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털이 있어 바람이나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이 때문에 말은 마구간이 아니라 야생 상태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람은 전투와 의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말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말을 야생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조련사는 말의 털을 깎고 발굽을 깎아내고 인두로 지지며 굴레로 묶어서 구유에다 나란히 모아 둔다. 말의 조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먹이를 주지 않고 물도 한 모금도 먹이지 않고 달음박질을 시켜 명령에 따르게 한다. 말은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앞에 있는 재갈로 통제하고 뒤에서 채찍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러한 말의 훈련 과정을 설명한 뒤에 역설적인 사실을 들추어낸다. 당시 백락(伯樂)이 훌륭한 조련사로서 각광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말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하고 죽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백락의 조련 과정에서 말은 마구(馬具)에 길들여지느라 20∼30%가 다치거나 죽고, 먹이와 채찍으로 통제하는 훈련을 받다가 50%가 다치거나 죽게 된다. 이렇게 보면 백락은 원래 있던 말의 반을 훈련시키느라 나머지 반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 것이다.

교육은 왜 하는가

백락의 경우 명시적으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사상이라는 지표가 제시되다 보니 훌륭한 조련사의 명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장자의 통찰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기-승-전-대
입’의 교육을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교육도 소수의 성공에 가려진 다수의 실패가 각자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그냥 눈감게 될 수 있다.
보통 ‘교육’하면 학교를 비롯한 특정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 생각은 교육과 시험 평가를 혼동하는 결과이다.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지만 평가는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효과는 시험 성적으로만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교육은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는 교과 활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교육은 친구와 어울리며 잡담하고 무엇을 하며 살까 고민하고 상상하게 하는 제반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교육을 평가와 교과서의 자장에서 벗어나게해야 진정으로 그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교육은 결국 시대, 사회, 학교, 교과서 등의 환경에서 부모, 교사, 친구와 어울리며 사람이 독자적으로 느끼고 사고하면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다양한 활동을 가리킨다. 그 결과 교육은 학생으로 하여금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배운 것을 혼자 있을 때도 제대로 활용하고, 학교 안에서 익힌 것을 학교 밖에서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은 결코 특정한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틀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백락이 말을 조련하는 무자비한 방식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절반의 사상자를 낳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백락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의 근육을 키우는 교육

사람은 아무리 계획을 잘 짠다고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난다. 이때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한다. 선택이 바라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우리는 선택에 앞서 참조할 만한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남아있고 결과가 반드시 자신의 기대와 예상대로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교과서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 담을 수가 없고 교육은 모든 문제를 예비할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안타까움, 시간이 더 있으면 잘할 수 있을 듯한 아쉬움, 진심을 전달하기 어려운 실망,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과정의 초조,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 등을 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특히 인생은 한 번의 승부로 끝나지 않고 한 가지 문제를 풀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새로운 문제는 앞서 겪었던 경우와 비슷할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경우와 전혀 다를 때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매 순간이 나의 실력과 한계를 실험하는 도전의 특성을 갖는다. 도전은 긴장되고 두렵기 때문에 중도 포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물건을 들려고 하면 근육이 필요하듯이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풀려면 삶의 근력을 필요로 한다. 이 삶의 근력이 바로 가정과 학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 드나들고 부모와 교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기른 교육의 힘에 해당된다. 이제 교육은 학교 안에서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는 활동을 벗어나서 삶의 지평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패에 너그러운 사회

우리는 인생을 정해진 공식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매번 성공을 거둘 수 없으므로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실패할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이때 사회가 실패에 너그럽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재기할 수 없는 심판으로 간주된다면 인생에서 실패가 끼어들 가능성을 열어두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르면 성공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실패는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이 된다.
사람이 인생에서 실패를 피하려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세상에는 성공만을 가져다주는 비법이 있고 규칙과 상식을 넘어서는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된다. 실패에 너그럽지 않은 사회는 앞서 이야기 했던 성과 지상주의와 공감 부족의 유형이 여기저기에서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시대가 괴물을 낳고 괴물이 시대를 오도하게 된다.
사회가 실패에 너그러울수록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며 알 수 없는 미래의 바다를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다. 장자보다 앞서 활약했던 공자를 키운 것은 바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였다. 공자가 유학의 창시자이자 성인으로 평가받기에 시대의 환영을 받은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공자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어』에 보면 노나라 사람은 공자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지기불가이위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자가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실패가 공자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오늘날 교육과 인생에서 겪는 실패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태도를 가져야겠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최초로 풀어야 하는 대열에 있는 만큼 ‘실패할 수 있는 기회’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논어』에 보면 노나라 사람은
공자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사람
(지기불가이위지자 知其不可而爲之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자가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학장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학대학에서 동양고전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성과를 K-MOOC를 통해 사회적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인권유학』, 『공자의 인생 강의』, 『동양철학의 유혹』, 『맹자여행기』, 『사람다움의 발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