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사문학관 & 송강 정철 가사의 터
● 글. 윤지은 취재작가 | 사진. 안지섭
한국가사문학관 & 송강 정철 가사의 터
● 글. 윤지은 취재작가 | 사진. 안지섭
시간을 머금은
자연과 역사를 품은
유적이 조화를 이루는
전라남도 담양은 남도 여행길에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대나무 숲과 메타세쿼이아길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담양에는 특별한 여행을
완성해줄 또 하나의 매력이
숨겨져 있다. ‘한국가사문학관’과
식영정 부근에 조성된
‘송강 정철 가사의 터’가
그곳이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문학을 만나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에게 차로 30~40여 분이면 닿는 전라남도 담양은 익숙한 여행지 중 하나다. 아빠인 정창남 씨가 업무 때문에 주말도 상관없이 서울, 인천 등지로 자주 출장을 가는 편이지만 시간이 날 때 면 가족과의 여행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자락을 따라 드라이브 삼아 담양에 자주 옵니다. 한국가사문학관 에도 온 적이 있기는 한데 아이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둘러볼 기회가 된다니 반갑더군요.”
정창남 씨의 설명처럼 초등학교 5학년인 지원이와 같은 학교 2학년인 해원 이는 한국가사문학관에 왔던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담양에 자주 왔 던 터라 근처 식영정과 부용정 등은 가본 적이 있다고 답한다.
특히 지원이는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선대를 모신 사당인 광주 경열사를 꼽 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만큼 한국가사문학관을 비롯해 송강 정철 가사의 터를 둘러보는 내내 설명에 집중하며 역사 여행에 빠져 들었다.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문학, 가사
한국가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 박민숙 문화해설사로부터 가사문학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사문학은 시조나 한시처럼 어떤 한 시형으로 나타난 장르가 아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우리 고유의 민요적 율격 위에 향가나 고려가요, 한시 등의 내용이 더해지면서 형성된 독특한 발생 경로를 지닌 장르다. 이로 인해 가사는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가 장르로 평가되고 있다.
“가사의 율격은 주로 4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대부분이 그렇지만 산문성이 강화된 긴 가사는 4음보가 아니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지학사) ‘9. 우리 문학의 길 을 따라’에서 정철의 속미인곡을 만날 수 있다.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가사문학이 낯선 지원이와 해원이를 위해 가사문학에 대해 간략히 알려준 후 담양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세워진 기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담양에 가사문학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의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어요.”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이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은 정치적 상황을 벗어나 인심이 넉넉한 호남 지방으로 낙남(落南)한 것에서 담양과 가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히 담양에 많은 누정을 짓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물론 시단(詩壇)을 결성하고 시회(詩會)를 통해 시가문학을 창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가사문학의 기반이 된다.
가사문학의 산실, 한국가사문학관
가사문학은 600여 년 동안 담양권에서 끊임없이 창작되었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고 이름 붙여진 식영정, 부용정, 서하당을 비롯해 면앙정, 환벽당, 송강정, 명옥헌원림 등 가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 곳이다. 이 같은 가사문학의 유산을 전승·보전하고 현대적인 계승을 통하여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바로 한국가사문학관이다. 1995년부터 건립이 추진되어 2000년 10월에 완공한 한국가사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이 맞아준다.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성산별곡> 이야기로부터 송강 정철에 대한 서사를 풀어냈다.
“성산은 지곡리의 옛 지명이에요. 송강 선생이 스물다섯 살 에 당쟁으로 정계에서 물러나 지곡리에 살 때 문인인 김성원을 위해 지은 가사입니다. 세상에 나가지 않고 담양에 살고 있는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 성산의 사계절, 진선(眞仙)과 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지요.”
가사문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송강 정철과 담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이 지어졌다는 말에 무심하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한국가사문학관은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사문학 관련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 <분재기> 등과 송강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 방문한 제1전시실에서는 송강 정철과 당대 임금인 선조의 이야기가 얽힌 두 개의 술잔이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의 흥미를 끌었다.
“송강 선생이 술을 마시면 선조에게 바른 소리를 잘했다고 해요. 그런데 송강 선생이 술을 좋아해서 늘 취해 있었고 선조는 그런 송강 선생에게 한 끼에 술 한 잔만 마시라는 의미에서 술잔을 하사했어요.”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그런데 술잔의 크기가 다르죠. 왜 그럴까요?”라면서 지원이와 해원이를 술잔이 놓인 전시관 앞으로 이끌었다.
“옥으로 만든 옥배는 선조가 하사한 크기 그대로지만 은으로 만든 은배는 재질이 물러 송강 선생이 대장장이를 불러 잔을 두드려 크게 만든 거예요.”
임금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나 마음껏 술을 마시기 위해 잔을 크게 만든 송강 선생의 재치와 배포에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외에도 송강 정철의 후손이 기증한 귀한 서책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송강 정철의 친필을 모은 <송강선조유필>에는 귀향살이를 하며 책을 읽은 횟수만큼 그린 동그라미가 있다. 그 동그라미의 수만큼 송강 정철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좌)재미있는 해설이 더해진 한국가사문학관 여행 / (우)송강 정철의 시문집인 <송강집>
관람시간 09:30~18:00
휴 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입 장 료 2019년 12월까지 무료 관람
문 의 061-380-2700~2703
한국가사문학관 외부 전경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 식영정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이라 불리는 식영정은 한국가사문학관 바로 옆,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 중반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인 식영정은 이름 그대로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식영정 뒤로는 이곳이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임을 밝히는 성산별곡시비가 세워져 있다.
식영정 주변에는 원래 송강 정철이 김성원과 노닐던 자미탄,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 조대, 서석대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이곳은 송강과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등 ‘식영정 사선(四仙)’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광주호에 잠겨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이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 불리는 이유라 하겠다. 식영정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연못 위에 세워진 부용정과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라 지은 정자인 서하당이 나란히 복원되어 송강을 비롯해 식영정 사선의 숨결과 푸른 숲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송강 정철의 흔적을 따라 담양을 걷다 보니 어느새 그가 노래한 풍류에 젖어 한없이 여유로워졌다.
“처음에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정자에 올라보니 선조들의 여유도 느껴지고, 재밌었어요.”
여행 말미, 씩씩하게 들려준 지원이의 소감처럼 송강 정철의 가사를 따라 여유와 풍류가 흐르는 담양을 만나는 색다른 시간이었다.
(좌)식영정 뒤편에 위치한 성산별곡시비 / (우)나무 그늘에 바람이 시원한 식영정
시간을 머금은
자연과 역사를 품은
유적이 조화를 이루는
전라남도 담양은 남도 여행길에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대나무 숲과 메타세쿼이아길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담양에는 특별한 여행을
완성해줄 또 하나의 매력이
숨겨져 있다. ‘한국가사문학관’과
식영정 부근에 조성된
‘송강 정철 가사의 터’가
그곳이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문학을 만나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에게 차로 30~40여 분이면 닿는 전라남도 담양은 익숙한 여행지 중 하나다. 아빠인 정창남 씨가 업무 때문에 주말도 상관없이 서울, 인천 등지로 자주 출장을 가는 편이지만 시간이 날 때 면 가족과의 여행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자락을 따라 드라이브 삼아 담양에 자주 옵니다. 한국가사문학관 에도 온 적이 있기는 한데 아이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둘러볼 기회가 된다니 반갑더군요.”
정창남 씨의 설명처럼 초등학교 5학년인 지원이와 같은 학교 2학년인 해원 이는 한국가사문학관에 왔던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담양에 자주 왔 던 터라 근처 식영정과 부용정 등은 가본 적이 있다고 답한다.
특히 지원이는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선대를 모신 사당인 광주 경열사를 꼽 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만큼 한국가사문학관을 비롯해 송강 정철 가사의 터를 둘러보는 내내 설명에 집중하며 역사 여행에 빠져 들었다.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문학, 가사
한국가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 박민숙 문화해설사로부터 가사문학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사문학은 시조나 한시처럼 어떤 한 시형으로 나타난 장르가 아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우리 고유의 민요적 율격 위에 향가나 고려가요, 한시 등의 내용이 더해지면서 형성된 독특한 발생 경로를 지닌 장르다. 이로 인해 가사는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가 장르로 평가되고 있다.
“가사의 율격은 주로 4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대부분이 그렇지만 산문성이 강화된 긴 가사는 4음보가 아니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지학사) ‘9. 우리 문학의 길 을 따라’에서 정철의 속미인곡을 만날 수 있다.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가사문학이 낯선 지원이와 해원이를 위해 가사문학에 대해 간략히 알려준 후 담양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세워진 기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담양에 가사문학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의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어요.”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이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은 정치적 상황을 벗어나 인심이 넉넉한 호남 지방으로 낙남(落南)한 것에서 담양과 가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히 담양에 많은 누정을 짓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물론 시단(詩壇)을 결성하고 시회(詩會)를 통해 시가문학을 창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가사문학의 기반이 된다.
가사문학의 산실, 한국가사문학관
가사문학은 600여 년 동안 담양권에서 끊임없이 창작되었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고 이름 붙여진 식영정, 부용정, 서하당을 비롯해 면앙정, 환벽당, 송강정, 명옥헌원림 등 가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 곳이다. 이 같은 가사문학의 유산을 전승·보전하고 현대적인 계승을 통하여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바로 한국가사문학관이다. 1995년부터 건립이 추진되어 2000년 10월에 완공한 한국가사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이 맞아준다.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성산별곡> 이야기로부터 송강 정철에 대한 서사를 풀어냈다.
“성산은 지곡리의 옛 지명이에요. 송강 선생이 스물다섯 살 에 당쟁으로 정계에서 물러나 지곡리에 살 때 문인인 김성원을 위해 지은 가사입니다. 세상에 나가지 않고 담양에 살고 있는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 성산의 사계절, 진선(眞仙)과 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지요.”
가사문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송강 정철과 담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이 지어졌다는 말에 무심하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한국가사문학관은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사문학 관련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 <분재기> 등과 송강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 방문한 제1전시실에서는 송강 정철과 당대 임금인 선조의 이야기가 얽힌 두 개의 술잔이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의 흥미를 끌었다.
“송강 선생이 술을 마시면 선조에게 바른 소리를 잘했다고 해요. 그런데 송강 선생이 술을 좋아해서 늘 취해 있었고 선조는 그런 송강 선생에게 한 끼에 술 한 잔만 마시라는 의미에서 술잔을 하사했어요.”
박민숙 문화해설사는 “그런데 술잔의 크기가 다르죠. 왜 그럴까요?”라면서 지원이와 해원이를 술잔이 놓인 전시관 앞으로 이끌었다.
“옥으로 만든 옥배는 선조가 하사한 크기 그대로지만 은으로 만든 은배는 재질이 물러 송강 선생이 대장장이를 불러 잔을 두드려 크게 만든 거예요.”
임금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나 마음껏 술을 마시기 위해 잔을 크게 만든 송강 선생의 재치와 배포에 정창남·최은경 씨 가족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외에도 송강 정철의 후손이 기증한 귀한 서책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송강 정철의 친필을 모은 <송강선조유필>에는 귀향살이를 하며 책을 읽은 횟수만큼 그린 동그라미가 있다. 그 동그라미의 수만큼 송강 정철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좌)재미있는 해설이 더해진 한국가사문학관 여행 / (우)송강 정철의 시문집인 <송강집>
한국가사문학관 외부 전경
관람시간 09:30~18:00
휴 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입 장 료 2019년 12월까지 무료 관람
문 의 061-380-2700~2703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 식영정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이라 불리는 식영정은 한국가사문학관 바로 옆,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 중반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인 식영정은 이름 그대로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식영정 뒤로는 이곳이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임을 밝히는 성산별곡시비가 세워져 있다.
식영정 주변에는 원래 송강 정철이 김성원과 노닐던 자미탄,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 조대, 서석대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많다. 이곳은 송강과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등 ‘식영정 사선(四仙)’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광주호에 잠겨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이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 불리는 이유라 하겠다. 식영정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연못 위에 세워진 부용정과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라 지은 정자인 서하당이 나란히 복원되어 송강을 비롯해 식영정 사선의 숨결과 푸른 숲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송강 정철의 흔적을 따라 담양을 걷다 보니 어느새 그가 노래한 풍류에 젖어 한없이 여유로워졌다.
“처음에는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정자에 올라보니 선조들의 여유도 느껴지고, 재밌었어요.”
여행 말미, 씩씩하게 들려준 지원이의 소감처럼 송강 정철의 가사를 따라 여유와 풍류가 흐르는 담양을 만나는 색다른 시간이었다.
(좌)식영정 뒤편에 위치한 성산별곡시비 / (우)나무 그늘에 바람이 시원한 식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