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소통과 협업

글.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근간에 소통과 협업이 더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경제학 박사만 100명 정도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10년간 연구위원으로 일하다가 2016년부터 이학・ 공학 박사가 중심이며,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전공이 제각각인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재직하고 있다. KDI 시절에 동질적인 동료들 속에서 사고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면, GIST에서는 이질적인 동료들 속에서 사고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모두 동료들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GIST 학사과정의 교육 목표인 창의성, 소통, 협동, 문제 해결 능력의 함양에도 소통과 협업의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왜 어딜 가나 소통과 협업이 더욱 강조되고 있을까?
첫째, 과거보다 더욱 복잡해진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저마다 장점이 다른 타인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더욱 필요해졌다. 가령 기후 변화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만 하더라도 일국의 정부나 과학기술자들만의 대응으로는 부족하고 국제적 공조, 법적 규제, 생활방식과 의식구조 등 문화적・ 행태적 변화의 유도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여러 주체들 간의 소통과 협업이 요구된다. 학계에서도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고 있는데, 혼자서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것을 통해서는 힘들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 산출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논문은 물론 특허에서도 단독 저자보다는 공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둘째,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국가는 물론 각종 조직에서 창의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됐는데, 이러한 창의성의 발휘에 있어서 집단 창의성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창의성의 바탕이 사물들 간의 새로운 연관을 발견하고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 발산적인 사고를 펼치는 데 있다면, 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가운데 촉진될 수 있다. 또한 발산적 사고를 통해 쏟아진 아이디어들을 여러 측면에서 고려하여 쓸 만한 것으로 다듬는 데도 토론과 협업이 효과적이다.


인간이 가진 공감능력, 표정과 눈빛에서
발산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생각하면,
정서적 소통이나 인생 상담의 주체로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밀어내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AI(인공지능) 시대에 소통과 협업은 인간이 상대적 강점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인간의 정형화된 작업은 거의 다 기계에 의해 완벽히 대체되어 왔고, 심지어 바둑 같이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고도의 인지적 작업도 최근에 AI에 의해 정복됐다. 인간 바둑기사들의 대국 기록인 기보를 엄청난 속도로 학습한 알파고가 2016년 봄에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인간 바둑의 옹호자들은 “사실상 수많은 바둑기사들이 합세하여 협업하는 것과 다름없는 AI와 이세돌 개인의 불공정한 대결이었다.”, “바둑판을 19×19에서 조금만 바꿔도 알파고는 맥을 못 출 것이다.” 등과 같이 AI의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 후 불과 2년 만에 인간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고도 스스로 대국을 두면서 기력을 엄청난 속도로 끌어올려 이제 어떤 인간도 넘볼 수 없는 바둑 실력을 갖추었다(알파고 제로). 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 게임도 규칙만 알려주면 금방 세계 최강자가 되는 AI가 등장했다(알파 제로). 이제 이런 분야에서 AI와 대적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됐다.
한편 제아무리 최신형이라도 AI 스피커가 인간을 대신할 만큼 소통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고된 바는 없다. 그보다는 나름 똑똑히 들려준 말도 AI에게 제대로 인식이 안 돼서 아직 멀었구나 하고 생각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가진 공감 능력, 표정과 눈빛에서 발산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생각하면, 정서적 소통이나 인생 상담의 주체로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밀어내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 소통과 협업은
잘 이루어지고 있나

휴대폰과 SNS가 거의 모든 국민에게 보급된 세상에서 소통 부족은 일견 이상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어떤 상대와 대화하는지, 어떤 경우에 차단이나 탈퇴 등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소통의 부족이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은 자기와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의 말이라도 경청하려는 의지를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종의 ‘도약’ 작업인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 간에 진영 논리의 대립도 강해져 타협과 절충보다는 양극단의 지지층을 겨냥한 대결 정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 자료에서 근간에 한국인의 재분배 정책에 대한 선호가 모든 연령대에서 중도의 감소와 함께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의 결집이 일어난 양태를 보이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사회 전반에 협력 대신 무한경쟁 속에 제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이 팽배한 분위기는 협업을 어렵게 한다. 협업은 공통의 목표가 존재하고 서로 노력한 결과가 제로섬(Zero-Sum, 영합)이 아니라 포지티브섬(Positive-Sum, 정합)일 때 가능하다. 즉,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같이 살면서 더 잘 될 수 있는 상생의 길이 보일 때 협업이 촉진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초·중등교육단계부터 모두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좇아 일점집중형의 제로섬 경쟁을 하고 있기에 협업의 경험을 쌓기 어렵다. 치열한 내신등급 경쟁을 하는 학교에서도 협력보다는 경쟁의 DNA가 후천적으로 배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학생들, 특히 대학생들은 조별 과제와 같은 협업을 대체로 싫어한다. 친하지 않은 조원들과 새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하고, 서로 일정을 조율하여 만나서 회의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발표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무임승차 하려는 조원이 있으면 평가가 불공정할 수 있다는 이유 등에서다. 필자가 수행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 설문조사(각국별 1,000명씩 조사)에서도 토론이나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 및 팀별 평가가 소통・협업 능력을 증진시킬 가능성에 대해 한국 대학생의 의견이 가장 부정적이었다. 또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한국 대학생만 개별 작업을 팀 작업보다 선호했다. 아마도 잘 설계된 협력 학습과 평가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4개국 중 한국의 대학생들만 초-중-고-대학교로 올수록 협력 정신이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치열한 경쟁, 일방향적 강의 중심의 수업, 비교과 협력 활동(스포츠 클럽 등)의 비활성화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소통과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
비교과활동을 통해서 소통과 협업 능력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교육활동 중심인 수업을 통해서 이런 역량을 기를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것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 방식과 평가의 세심한 설계와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운영이 중요하다.
필자는 재직 중인 대학에서 교수 강의 중심의 수직적 수업 3개와 조별 과제와 토론 등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강조된 수평적 수업 3개를 비교하면서 수강생들 간의 친구 연결망과 사회 자본 관련 인식이 한 학기 동안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수직적 수업을 들은 학생들보다 수평적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친구 연결망이 더 넓고 깊어졌다. 수평적 수업에서 해당 수업 내의 소외도가 감소하고 신뢰와 공정성에 대한 믿음,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등 사회 자본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필자는 ‘교육의 경제학’, ‘미시 경제학’ 등의 과목을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운영해보았다. 강의 노트와 읽기 자료, 필자가 제작한 동영상 강의를 통해 주요 내용을 예습하도록 하고, 수업 중에는 질의응답, 토론 및 협력적 문제 해결 중심의 활동을 했다. 그 결과, 학생들 간의 소통과 협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강화된 것을 학기 말 강의 평가 응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의 ‘행동 경제학 2’ 수업은 프로젝트 학습(PBL) 방식으로 운영됐다. 조별로 학생들 스스로 제기한 문제를 넛지(Nudge)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해결하는 공익적 사회 실험 프로젝트다. 조 내 무임승차 방지를 위해 상호 평가를 도입하고, 다른 조에게 도움이 되는 상호 조언을 장려하기 위해 절대 평가를 채택했다. 역시 조 내 협업 및 조들 사이의 협력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었다.
교수자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학생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배움을 함께 만들어내는 구성주의 학습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른바 ‘교단 위의 현자’에서 ‘옆에 선 조력자’로, 가르치는 강사에서 학습의 코치로 자세와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각 과목의 성격에 적합하고 목표 역량 함양에 최적인 교수 학습법 및 평가법의 개발·적용·수정에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강의와 암기가 효율적인 과목과 단원도 있기 때문이다. 소통과 협업이 증진되는 수업을 위해서는 교육 환경도 중요하다. 교수자와 학생 간의 소통, 학생들 간의 소통이 활발한 수업을 위해서는 강의실 내의 학생 수가 적정한 범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의실의 구조도 일방향의 강의에 적합한 중앙 집중형 계단식 구조보다는 탁자의 이동과 재배치가 용이한 평면 구조가 바람직하고, 탁자의 모양도 모둠별 활동이 가능한 원탁이나 블록처럼 유연한 결합 및 해체가 가능한 형태가 좋다.
경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평가를 내려야 하는 교육 환경에서는 소통과 협업을 촉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상대 평가를 절대 평가로, 학년별 평가를 교사별 평가로, 일제식 평가를 개별화된 평가로 전환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비단 소통과 협업 능력을 제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아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초저출산시대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살려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다 크게 얘기하면 교육 시스템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지도와 복종에서 대화와 참여로, 교육 서비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에서 공동 학습자의 관계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보의 습득이 일상적으로 가능한 AI 시대에는 표층 학습(진도 중시)에서 심층 학습(적용과 창조 중시)으로 배움의 중점이 이동해야 한다.

AI와의 소통과 협업 역량도 키워야 한다
끝으로 AI끼리도 소통하고 협업하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5G 초연결 시대의 문이 열렸다. 그동안 특정 기기에 갇혀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AI는 5G 망을 타고 다른 AI와 활발하게 연결하여 소통할 것이다. 스마트폰, AI 스피커, 스마트홈의 연결을 넘어 스마트카, 스마트오피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까지 AI로 연결되면 우리의 삶도 크게 바뀔 것이다. AI 비서가 자신의 아바타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AI 비서와 소통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AI와 협업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AI시대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10년 후 가장 중요한 직업 기초능력으로 기계와의 협업 능력이 위기 대처 능력, 대응력, 미래 예측력, 인지적 부담 관리 능력과 함께 꼽히는 이유다. 결국 사람들 간의 소통과 협업, 기계와의 소통과 협업 등 상호작용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의 핵심과제인 셈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를 받은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교육문제를 왕성하게 연구한 경제학자이자 교육 연구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부임 이후 펴낸 최근 저서로는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 방향』, 『4차 산업혁명과 한국 교육의 대전환』 등이 있다.

AI 시대의 소통과 협업

글.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근간에 소통과 협업이 더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경제학 박사만 100명 정도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10년간 연구위원으로 일하다가 2016년부터 이학・ 공학 박사가 중심이며,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전공이 제각각인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재직하고 있다. KDI 시절에 동질적인 동료들 속에서 사고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면, GIST에서는 이질적인 동료들 속에서 사고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모두 동료들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GIST 학사과정의 교육 목표인 창의성, 소통, 협동, 문제 해결 능력의 함양에도 소통과 협업의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왜 어딜 가나 소통과 협업이 더욱 강조되고 있을까?
첫째, 과거보다 더욱 복잡해진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저마다 장점이 다른 타인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더욱 필요해졌다. 가령 기후 변화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만 하더라도 일국의 정부나 과학기술자들만의 대응으로는 부족하고 국제적 공조, 법적 규제, 생활방식과 의식구조 등 문화적・ 행태적 변화의 유도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여러 주체들 간의 소통과 협업이 요구된다. 학계에서도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고 있는데, 혼자서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것을 통해서는 힘들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 산출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논문은 물론 특허에서도 단독 저자보다는 공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둘째, 빠른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국가는 물론 각종 조직에서 창의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됐는데, 이러한 창의성의 발휘에 있어서 집단 창의성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창의성의 바탕이 사물들 간의 새로운 연관을 발견하고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 발산적인 사고를 펼치는 데 있다면, 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가운데 촉진될 수 있다. 또한 발산적 사고를 통해 쏟아진 아이디어들을 여러 측면에서 고려하여 쓸 만한 것으로 다듬는 데도 토론과 협업이 효과적이다.


인간이 가진 공감능력, 표정과 눈빛에서
발산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생각하면,
정서적 소통이나 인생 상담의 주체로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밀어내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AI(인공지능) 시대에 소통과 협업은 인간이 상대적 강점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인간의 정형화된 작업은 거의 다 기계에 의해 완벽히 대체되어 왔고, 심지어 바둑 같이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고도의 인지적 작업도 최근에 AI에 의해 정복됐다. 인간 바둑기사들의 대국 기록인 기보를 엄청난 속도로 학습한 알파고가 2016년 봄에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인간 바둑의 옹호자들은 “사실상 수많은 바둑기사들이 합세하여 협업하는 것과 다름없는 AI와 이세돌 개인의 불공정한 대결이었다.”, “바둑판을 19×19에서 조금만 바꿔도 알파고는 맥을 못 출 것이다.” 등과 같이 AI의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 후 불과 2년 만에 인간 기보를 전혀 학습하지 않고도 스스로 대국을 두면서 기력을 엄청난 속도로 끌어올려 이제 어떤 인간도 넘볼 수 없는 바둑 실력을 갖추었다(알파고 제로). 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 게임도 규칙만 알려주면 금방 세계 최강자가 되는 AI가 등장했다(알파 제로). 이제 이런 분야에서 AI와 대적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됐다.
한편 제아무리 최신형이라도 AI 스피커가 인간을 대신할 만큼 소통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고된 바는 없다. 그보다는 나름 똑똑히 들려준 말도 AI에게 제대로 인식이 안 돼서 아직 멀었구나 하고 생각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가진 공감 능력, 표정과 눈빛에서 발산하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생각하면, 정서적 소통이나 인생 상담의 주체로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밀어내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 소통과 협업은
잘 이루어지고 있나

휴대폰과 SNS가 거의 모든 국민에게 보급된 세상에서 소통 부족은 일견 이상한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로 어떤 상대와 대화하는지, 어떤 경우에 차단이나 탈퇴 등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소통의 부족이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은 자기와 생각과 경험이 다른 사람의 말이라도 경청하려는 의지를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종의 ‘도약’ 작업인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 간에 진영 논리의 대립도 강해져 타협과 절충보다는 양극단의 지지층을 겨냥한 대결 정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 자료에서 근간에 한국인의 재분배 정책에 대한 선호가 모든 연령대에서 중도의 감소와 함께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의 결집이 일어난 양태를 보이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사회 전반에 협력 대신 무한경쟁 속에 제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이 팽배한 분위기는 협업을 어렵게 한다. 협업은 공통의 목표가 존재하고 서로 노력한 결과가 제로섬(Zero-Sum, 영합)이 아니라 포지티브섬(Positive-Sum, 정합)일 때 가능하다. 즉,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같이 살면서 더 잘 될 수 있는 상생의 길이 보일 때 협업이 촉진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초·중등교육단계부터 모두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좇아 일점집중형의 제로섬 경쟁을 하고 있기에 협업의 경험을 쌓기 어렵다. 치열한 내신등급 경쟁을 하는 학교에서도 협력보다는 경쟁의 DNA가 후천적으로 배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학생들, 특히 대학생들은 조별 과제와 같은 협업을 대체로 싫어한다. 친하지 않은 조원들과 새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하고, 서로 일정을 조율하여 만나서 회의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발표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무임승차 하려는 조원이 있으면 평가가 불공정할 수 있다는 이유 등에서다. 필자가 수행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 설문조사(각국별 1,000명씩 조사)에서도 토론이나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 및 팀별 평가가 소통・협업 능력을 증진시킬 가능성에 대해 한국 대학생의 의견이 가장 부정적이었다. 또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한국 대학생만 개별 작업을 팀 작업보다 선호했다. 아마도 잘 설계된 협력 학습과 평가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4개국 중 한국의 대학생들만 초-중-고-대학교로 올수록 협력 정신이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치열한 경쟁, 일방향적 강의 중심의 수업, 비교과 협력 활동(스포츠 클럽 등)의 비활성화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소통과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
비교과활동을 통해서 소통과 협업 능력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교육활동 중심인 수업을 통해서 이런 역량을 기를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효과적인 것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 방식과 평가의 세심한 설계와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운영이 중요하다.
필자는 재직 중인 대학에서 교수 강의 중심의 수직적 수업 3개와 조별 과제와 토론 등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강조된 수평적 수업 3개를 비교하면서 수강생들 간의 친구 연결망과 사회 자본 관련 인식이 한 학기 동안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수직적 수업을 들은 학생들보다 수평적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친구 연결망이 더 넓고 깊어졌다. 수평적 수업에서 해당 수업 내의 소외도가 감소하고 신뢰와 공정성에 대한 믿음,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등 사회 자본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필자는 ‘교육의 경제학’, ‘미시 경제학’ 등의 과목을 거꾸로 수업(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운영해보았다. 강의 노트와 읽기 자료, 필자가 제작한 동영상 강의를 통해 주요 내용을 예습하도록 하고, 수업 중에는 질의응답, 토론 및 협력적 문제 해결 중심의 활동을 했다. 그 결과, 학생들 간의 소통과 협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강화된 것을 학기 말 강의 평가 응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의 ‘행동 경제학 2’ 수업은 프로젝트 학습(PBL) 방식으로 운영됐다. 조별로 학생들 스스로 제기한 문제를 넛지(Nudge)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해결하는 공익적 사회 실험 프로젝트다. 조 내 무임승차 방지를 위해 상호 평가를 도입하고, 다른 조에게 도움이 되는 상호 조언을 장려하기 위해 절대 평가를 채택했다. 역시 조 내 협업 및 조들 사이의 협력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었다.
교수자는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학생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배움을 함께 만들어내는 구성주의 학습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른바 ‘교단 위의 현자’에서 ‘옆에 선 조력자’로, 가르치는 강사에서 학습의 코치로 자세와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각 과목의 성격에 적합하고 목표 역량 함양에 최적인 교수 학습법 및 평가법의 개발·적용·수정에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강의와 암기가 효율적인 과목과 단원도 있기 때문이다. 소통과 협업이 증진되는 수업을 위해서는 교육 환경도 중요하다. 교수자와 학생 간의 소통, 학생들 간의 소통이 활발한 수업을 위해서는 강의실 내의 학생 수가 적정한 범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의실의 구조도 일방향의 강의에 적합한 중앙 집중형 계단식 구조보다는 탁자의 이동과 재배치가 용이한 평면 구조가 바람직하고, 탁자의 모양도 모둠별 활동이 가능한 원탁이나 블록처럼 유연한 결합 및 해체가 가능한 형태가 좋다.
경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평가를 내려야 하는 교육 환경에서는 소통과 협업을 촉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상대 평가를 절대 평가로, 학년별 평가를 교사별 평가로, 일제식 평가를 개별화된 평가로 전환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비단 소통과 협업 능력을 제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아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초저출산시대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살려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다 크게 얘기하면 교육 시스템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간 관계가 지도와 복종에서 대화와 참여로, 교육 서비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에서 공동 학습자의 관계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보의 습득이 일상적으로 가능한 AI 시대에는 표층 학습(진도 중시)에서 심층 학습(적용과 창조 중시)으로 배움의 중점이 이동해야 한다.

AI와의 소통과 협업 역량도 키워야 한다
끝으로 AI끼리도 소통하고 협업하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5G 초연결 시대의 문이 열렸다. 그동안 특정 기기에 갇혀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AI는 5G 망을 타고 다른 AI와 활발하게 연결하여 소통할 것이다. 스마트폰, AI 스피커, 스마트홈의 연결을 넘어 스마트카, 스마트오피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까지 AI로 연결되면 우리의 삶도 크게 바뀔 것이다. AI 비서가 자신의 아바타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AI 비서와 소통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AI와 협업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AI시대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10년 후 가장 중요한 직업 기초능력으로 기계와의 협업 능력이 위기 대처 능력, 대응력, 미래 예측력, 인지적 부담 관리 능력과 함께 꼽히는 이유다. 결국 사람들 간의 소통과 협업, 기계와의 소통과 협업 등 상호작용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의 핵심과제인 셈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를 받은 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교육문제를 왕성하게 연구한 경제학자이자 교육 연구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부임 이후 펴낸 최근 저서로는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 방향』, 『4차 산업혁명과 한국 교육의 대전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