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과 실행 방안
● 글. 정원규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 주권자 교육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정책적 우선순위 등과 관련해 매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다원적 성격에 비춰 볼 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하는 교육행정가 등에게는 꼭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수업이나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도 반대쪽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비난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널리 알려진 공식적 해법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정, 또는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을 수업이나 정책의 시작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는 ‘주권자 교육’이 바로 이러한 공통적 시작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필자가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내용이 주권자 교육에 한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는 일반적으로 주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 외에 인권, 시민적 덕성, 인격적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더 넓게 보면 학생들의 자율성 함양을 위한 내용도 여기에 포함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진로 교육, 지역적 특수성 등을 반영하는 교육 내용,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쟁점들, 또는 세계 시민성과 관련된 내용 등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내용들의 포함 여부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에 대해 대강 합의하면서도 막상 이를 실천하려고 하면 각자의 입장만 개진하다가 결국 아무 일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듯 이견을 가진 사람 중에서 누구도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서 주권자 교육을 생략하거나 후순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시민의 가장 주된 권리가 주권인 한에서 주권자 교육을 방기하자는 것은 민주시민 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 교육으로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에 대한 아래의 규정은 필자가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보고서에서 제시했던 내용이다.1) 연구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이견을 접할 수 있었지만, 아래의 규정에 대한 이견은 거의 제기된 바 없다. 아울러 제기된 이견들도 주로 주권의 범위와 관련된 것이었지, 주권자 교육 자체에 반대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하의 규정은 공통적으로 합의 가능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하의 규정은 공통적 출발점이라는 면에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한 최소한의 내용만 포함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이의 전반적 시행을 위해서는 이하의 내용을 더 확장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학생들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자신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에 확장 적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지원하는 교육
1) 정원규 외 4인(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및 추진 원칙 연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p.17.
주권자 교육과 신민 교육(臣民 敎育)의 그늘
주권자 교육은 그간 우리 교육에 드리워졌던 ‘신민 교육의 그늘’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군사 쿠데타의 망령은 사라졌으므로 이 시점에서 ‘반공 교육’이나 ‘국민 윤리’ 교육으로 기억되는 노골적 신민 교육의 잔재들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권자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순종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 교육적 관성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말미에 이뤄졌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이러한 관성의 극단적 잔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렸으므로, 아직도 유효한 것들만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교육 내용의 측면에서 현재 교육과정이나 교과서가 비판적 가치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지점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령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설명은 기껏해야 시장의 실패에 관한 내용 정도만 포함하고 있지, 시장경제 체제의 다양한 변형들, 대안적인 경제 체제, 또는 시장의 논리가 적용돼서는 안 되는 문제 등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설령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안과 관련된 지식, 정보, 가치 태도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없다. 결국 학생들에게는 불만이 있더라도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즉 현실에 순응하라는 요구만 전달되는 셈이다.
주권자 교육의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대립적 가치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교육 현실 속에서 정답을 전제, 강요하는 수업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주권자는 주권과 관련된 모든 일에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체 주권자의 의사를 수합한 결과가 자신의 결정과 다를 때에는 그것을 따라야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단계에서는 충분히 독자적으로 의견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아도 무조건 특정한 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학생들은 사회나 학교가 요구하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상황에 익숙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는, 즉 체제 순응적인 신민(臣民)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교육제도나 학교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신민 교육적 잔재는 교육정책 운영방식, 제왕적 교장제도, 국가 중심 교육과정 등에서 발견된다. 우선 교육정책의 편성 및 운영방식이 수직적인 한에서 그러한 정책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주권자 교육의 대의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의 주제인 학교 민주시민 교육이 교육부가 실질적으로 주관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그 결과는 과거 반공 교육이나 국민윤리 교육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용과 무관하게 이미 실행 방식에서 학생과 교사의 교육 주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또 교장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이 적절하지 못하면, 교사들은 교장의 선의에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실행 수단을 갖지 못하게 된다. 교사들의 교육 주권이 역시 실행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제약되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은 특히 주권자 교육과 거리가 먼데, 일단 절차적으로 교육 내용의 결정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물론, 교육과정 및 그에 따른 교과서, 수업 교재 제작의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교육청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그러면 이렇듯 아직도 깊이 드리워진 신민 교육의 그늘을 걷어내고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이견을 포섭하며, 주권자 교육으로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또는 하지 말아야 할까? 필자는 먼저 교육행정기관들, 즉 교육부, 교육청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전술한 보고서에서 교육부의 역할과 관련해 특히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2)
학교 민주시민 교육정책 수행 시 교육부 유의사항
–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과 관련된 영역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됨.
– 부득이 간접적으로라도 관여하게 된 경우에는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 실질적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교육 자치의 대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함.
이는 이른바 ‘보충성의 원칙’으로 알려진 자치 원칙에 근거 한 것으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근본적으로 일선 기관이 중 심이 돼야 하며 상급 기관은 일선 기관의 역량만으로 할 수 없 는 일들에 주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우리 의 경우에는 교육부가 신민 교육을 선도한 역사가 짧지 않으 므로,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준수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해 교육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간접적인 지원 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대규모의 장기적 연구가 필요한 경우 처럼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일은 교육부 가 직접 주도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경우에도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 선택권을 부여해 교육 주권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청 또한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사업은 최대한 일선 학교가 주도하게 하고 교육청은 지원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부와 달리 교육청은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교재나 수업·학습 자료 등을 마련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 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재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교육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고, 또 교육 내용과 관련해 논란 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한 상황적 특수성 때문이다. 인헌고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교사나 일선 학교가 단독으로 사 회적 논란에 따른 부담을 떠안기는 쉽지 않다. 아울러 교사 들 단독으로 수업·학습 자료를 개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 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청이 이러한 사업의 주체가 되 는 것은 전술한 ‘보충성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그리고 교육 감은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교육청은 주 민들로부터 교육 내용 개발에 대한 권한을 일정 정도 위임받 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교육청은 전국적으로 그 수가 적지 않 으므로 개발된 교재, 자료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가외의 이 점도 존재한다.
2) 정원규 외 4인(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및 추진 원칙 연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p.17.
학생, 교사, 그리고 단위 학교에서의 민주시민 교육
지금까지 주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주권자 교육의 당위성과 신민 교육의 그늘, 그리고 교육 기관들의 역할과 유의점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 각자를 포함한 학생, 교사, 일선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러한 각각의 주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실행 단위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아니라 학생, 교사, 교육 공동체로서의 단위 학교 등이다.
학생의 경우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주권자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주권을 행사할 기회도 갖기 어렵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역량의 미비로 인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주권 행사 역량이 급작스럽게 향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학생들에게는 먼저 주권 행사의 의의와 과실을 맛볼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의무, 개인적 책임 등을 강조하는 교육보다는 사회적 권리나 자율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교육이 일차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진 다음에는 더 많은 권리와 자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부가될 수 있으리라.
현재 교사들은 한편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의사를 존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교장을 포함한 교육청, 교육부 등 상급 기관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민주시민 교육을 위해 교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절실한 과제는 교사들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받는 일이다. 참정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의 시민적 위상, 보직자·학부모·학생 등에 의해 빈번하게 이뤄지는 교권 침해, 그러면서도 교사의 무한한 선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은 민주시민 교육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우리 시대 교사의 초상이다. 자신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에 의해 이뤄지는 민주시민 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순전히 교육 효과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교사의 이러한 노력은 학생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어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일삼는 일부 교사들에 대한 자정활동과 함께 이뤄질 때 더욱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위 학교는 학생, 교사 외에 보직자, 행정직, 학부모, 그리고 이들과 범주는 조금 다르지만 계약직, 지역 사회 주민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단위 학교는 민주시민 교육이 시연되는 기초 공간이며,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는 체험장이다. 그래서 학교는 한편으로 학생들이 거기에서 사회의 민주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민주사회를 체험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상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현실적 민주성은 주로 제도와 관련돼 체험되기 마련이므로, 특히 학교 문화의 변화를 통해 학교의 이상적 민주성이 체험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기획이 필요하다.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교육감 직선제 이후 시행되고 있는 혁신학교 사업이나 최근 교육부, 교육청에 의해 지원되는 민주학교 사업 등이 이러한 기획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종착지 – ‘나’
지금까지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다소 두서없이 나열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 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성과와 별도로 이처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에 자신도 충실한지에 대한 필자 자신과 독자들의 궁금증이다. 가령 나는/당신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의식하고 살고 있는지, 주권을 행사할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타인의 주권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묻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권자 교육이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이었다면, ‘나’는 민주시민 교육의 종착지이자 확인처이다. 이제 민주시민 교육은 과거의 신민 교육처럼 일반 국민이나 학생을 대상화하는 교육이 아니라 주권자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민주시민 교육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부터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그런 교육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과 실행 방안
● 글. 정원규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 주권자 교육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정책적 우선순위 등과 관련해 매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다원적 성격에 비춰 볼 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하는 교육행정가 등에게는 꼭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다. 수업이나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도 반대쪽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비난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널리 알려진 공식적 해법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정, 또는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을 수업이나 정책의 시작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는 ‘주권자 교육’이 바로 이러한 공통적 시작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필자가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내용이 주권자 교육에 한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는 일반적으로 주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 외에 인권, 시민적 덕성, 인격적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더 넓게 보면 학생들의 자율성 함양을 위한 내용도 여기에 포함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진로 교육, 지역적 특수성 등을 반영하는 교육 내용, 국가적 차원의 사회적 쟁점들, 또는 세계 시민성과 관련된 내용 등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 내용들의 포함 여부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에 대해 대강 합의하면서도 막상 이를 실천하려고 하면 각자의 입장만 개진하다가 결국 아무 일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듯 이견을 가진 사람 중에서 누구도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서 주권자 교육을 생략하거나 후순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시민의 가장 주된 권리가 주권인 한에서 주권자 교육을 방기하자는 것은 민주시민 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 교육으로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에 대한 아래의 규정은 필자가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보고서에서 제시했던 내용이다.1) 연구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이견을 접할 수 있었지만, 아래의 규정에 대한 이견은 거의 제기된 바 없다. 아울러 제기된 이견들도 주로 주권의 범위와 관련된 것이었지, 주권자 교육 자체에 반대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하의 규정은 공통적으로 합의 가능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하의 규정은 공통적 출발점이라는 면에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한 최소한의 내용만 포함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이의 전반적 시행을 위해서는 이하의 내용을 더 확장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학생들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자신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에 확장 적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지원하는 교육
1) 정원규 외 4인(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및 추진 원칙 연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p.17.
주권자 교육과 신민 교육(臣民 敎育)의 그늘
주권자 교육은 그간 우리 교육에 드리워졌던 ‘신민 교육의 그늘’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군사 쿠데타의 망령은 사라졌으므로 이 시점에서 ‘반공 교육’이나 ‘국민 윤리’ 교육으로 기억되는 노골적 신민 교육의 잔재들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권자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순종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 교육적 관성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말미에 이뤄졌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이러한 관성의 극단적 잔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렸으므로, 아직도 유효한 것들만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교육 내용의 측면에서 현재 교육과정이나 교과서가 비판적 가치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지점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령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설명은 기껏해야 시장의 실패에 관한 내용 정도만 포함하고 있지, 시장경제 체제의 다양한 변형들, 대안적인 경제 체제, 또는 시장의 논리가 적용돼서는 안 되는 문제 등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설령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안과 관련된 지식, 정보, 가치 태도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없다. 결국 학생들에게는 불만이 있더라도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즉 현실에 순응하라는 요구만 전달되는 셈이다.
주권자 교육의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대립적 가치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교육 현실 속에서 정답을 전제, 강요하는 수업과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주권자는 주권과 관련된 모든 일에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체 주권자의 의사를 수합한 결과가 자신의 결정과 다를 때에는 그것을 따라야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단계에서는 충분히 독자적으로 의견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아도 무조건 특정한 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학생들은 사회나 학교가 요구하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상황에 익숙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치는, 즉 체제 순응적인 신민(臣民)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교육제도나 학교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신민 교육적 잔재는 교육정책 운영방식, 제왕적 교장제도, 국가 중심 교육과정 등에서 발견된다. 우선 교육정책의 편성 및 운영방식이 수직적인 한에서 그러한 정책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주권자 교육의 대의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의 주제인 학교 민주시민 교육이 교육부가 실질적으로 주관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그 결과는 과거 반공 교육이나 국민윤리 교육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용과 무관하게 이미 실행 방식에서 학생과 교사의 교육 주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또 교장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이 적절하지 못하면, 교사들은 교장의 선의에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실행 수단을 갖지 못하게 된다. 교사들의 교육 주권이 역시 실행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제약되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은 특히 주권자 교육과 거리가 먼데, 일단 절차적으로 교육 내용의 결정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물론, 교육과정 및 그에 따른 교과서, 수업 교재 제작의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교육청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그러면 이렇듯 아직도 깊이 드리워진 신민 교육의 그늘을 걷어내고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이견을 포섭하며, 주권자 교육으로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또는 하지 말아야 할까? 필자는 먼저 교육행정기관들, 즉 교육부, 교육청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전술한 보고서에서 교육부의 역할과 관련해 특히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2)
학교 민주시민 교육정책 수행 시 교육부 유의사항
–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내용과 관련된 영역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됨.
– 부득이 간접적으로라도 관여하게 된 경우에는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 실질적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교육 자치의 대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함.
이는 이른바 ‘보충성의 원칙’으로 알려진 자치 원칙에 근거 한 것으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근본적으로 일선 기관이 중 심이 돼야 하며 상급 기관은 일선 기관의 역량만으로 할 수 없 는 일들에 주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우리 의 경우에는 교육부가 신민 교육을 선도한 역사가 짧지 않으 므로, 이러한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준수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해 교육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간접적인 지원 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대규모의 장기적 연구가 필요한 경우 처럼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일은 교육부 가 직접 주도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경우에도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 선택권을 부여해 교육 주권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청 또한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사업은 최대한 일선 학교가 주도하게 하고 교육청은 지원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부와 달리 교육청은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교재나 수업·학습 자료 등을 마련하는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 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재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교육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고, 또 교육 내용과 관련해 논란 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한 상황적 특수성 때문이다. 인헌고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교사나 일선 학교가 단독으로 사 회적 논란에 따른 부담을 떠안기는 쉽지 않다. 아울러 교사 들 단독으로 수업·학습 자료를 개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 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청이 이러한 사업의 주체가 되 는 것은 전술한 ‘보충성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그리고 교육 감은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교육청은 주 민들로부터 교육 내용 개발에 대한 권한을 일정 정도 위임받 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교육청은 전국적으로 그 수가 적지 않 으므로 개발된 교재, 자료의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가외의 이 점도 존재한다.
2) 정원규 외 4인(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기본 개념 및 추진 원칙 연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p.17.
학생, 교사, 그리고 단위 학교에서의 민주시민 교육
지금까지 주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주권자 교육의 당위성과 신민 교육의 그늘, 그리고 교육 기관들의 역할과 유의점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 각자를 포함한 학생, 교사, 일선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러한 각각의 주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실행 단위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아니라 학생, 교사, 교육 공동체로서의 단위 학교 등이다.
학생의 경우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주권자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주권을 행사할 기회도 갖기 어렵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역량의 미비로 인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주권 행사 역량이 급작스럽게 향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학생들에게는 먼저 주권 행사의 의의와 과실을 맛볼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의무, 개인적 책임 등을 강조하는 교육보다는 사회적 권리나 자율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교육이 일차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진 다음에는 더 많은 권리와 자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부가될 수 있으리라.
현재 교사들은 한편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의사를 존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교장을 포함한 교육청, 교육부 등 상급 기관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민주시민 교육을 위해 교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절실한 과제는 교사들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받는 일이다. 참정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의 시민적 위상, 보직자·학부모·학생 등에 의해 빈번하게 이뤄지는 교권 침해, 그러면서도 교사의 무한한 선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인식은 민주시민 교육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우리 시대 교사의 초상이다. 자신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에 의해 이뤄지는 민주시민 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순전히 교육 효과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교사의 이러한 노력은 학생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어도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일삼는 일부 교사들에 대한 자정활동과 함께 이뤄질 때 더욱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위 학교는 학생, 교사 외에 보직자, 행정직, 학부모, 그리고 이들과 범주는 조금 다르지만 계약직, 지역 사회 주민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단위 학교는 민주시민 교육이 시연되는 기초 공간이며,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는 체험장이다. 그래서 학교는 한편으로 학생들이 거기에서 사회의 민주성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민주사회를 체험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상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현실적 민주성은 주로 제도와 관련돼 체험되기 마련이므로, 특히 학교 문화의 변화를 통해 학교의 이상적 민주성이 체험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기획이 필요하다.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교육감 직선제 이후 시행되고 있는 혁신학교 사업이나 최근 교육부, 교육청에 의해 지원되는 민주학교 사업 등이 이러한 기획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의 종착지 – ‘나’
지금까지 학교 민주시민 교육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다소 두서없이 나열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 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의 성과와 별도로 이처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에 자신도 충실한지에 대한 필자 자신과 독자들의 궁금증이다. 가령 나는/당신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의식하고 살고 있는지, 주권을 행사할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타인의 주권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묻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권자 교육이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이었다면, ‘나’는 민주시민 교육의 종착지이자 확인처이다. 이제 민주시민 교육은 과거의 신민 교육처럼 일반 국민이나 학생을 대상화하는 교육이 아니라 주권자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민주시민 교육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부터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그런 교육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