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전문에 나타난
역사 인식과
통일지향성

글. 김병인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담긴 의미

우리 헌법 전문(前文)은 328글자로 이루어졌다. 쉼표는 여섯 개이지만 마침표가 하나이니까 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주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며, 술부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이다. 그렇다. 우리 헌법의 제정과 개정 주체는 ‘우리 대한국민’이다. 우리 국민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계승하는 역사적 사건과 정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다. 다른 하나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다. 즉,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잊지 말고 계승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다짐하였다. 이러한 헌법 전문의 정신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친일이 뭐가 잘못이냐?’라거나, ‘식민지 경험 때문에 잘살게 되었다’는 망언은 나올 수가 없다. 모두 반헌법적 언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파의 후손이 고위공직자가 되기 일상이고, 유수 국립대 교수 출신이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잘살게 되었다”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현실은 부끄럽고 치욕적이기까지 하다. 여야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를 운운하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의외로 헌법 정신을 모르고 있거나 무신경한 것은 아닌지 저어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매사에 극도로 분열되어 있고 곳곳에 갈등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선거의 결과나 진영의 논리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서로 인정하거나 공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출구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의 논리로 합쳐지기 어렵다면 헌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헌법 정신으로 대화하고 해결하자. 이를 위해 대한민국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담긴 역사 인식과 통일지향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국경일을 통한 국가정체성 구체화

우리는 헌법 <전문>에 대해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여타 조항에 대한 우위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다. 즉, 헌법 <전문>은 모든 법령보다 우월한 지위 및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전문 첫 구절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으로 시작한다. 이는 우리 역사의 유구성, 연속성을 드러낸다. 이는 국경일을 통한 국가정체성으로 구체화되었다. 1949년 10월 1일 국무회의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면서,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경일을 정한다”라는 입법 취지를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개천절·삼일절·광복절·제헌절 등 네 개였는데 2005년 12월 29일 한글날을 추가하였다.
여기에서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시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통한 역사적 유구성을 강조하고 경축하는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의식까지를 내포하고 있다. 3월 1일 삼일절은 식민통치에 의한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인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거국적 만세운동을 통해 민족사의 단절을 극복하였음을 상징한다.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은 일본 식민통치의 청산을 경축하기 위함이며, 민족사의 단절을 극복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이로써 1910년부터 35년 동안 단절된 민족사가 연결되고 계승되었음을 뜻한다. 7월 17일 제헌절(制憲節)은 대한민국의 법제적 출발점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어 7월 17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10월 3일 한글날은 민족사의 가장 뛰어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末文)에 적힌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 세종 28년 9월’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되어, 이날을 한글날로 정하였다. 이러한 다섯 개의 국경일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적, 법제적 시원과 계승의식 그리고 문화적 우월성을 모든 국민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경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세운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다음 구절은 ‘우리 대한국민은’이다. 이는 헌법 전문의 주어에 해당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국(祖國), 동포(同胞), 한민족, 한겨레, 배달민족, 단일민족, 단군후예로 수식될 수 있다. 이 나라를 세운 사람이 ‘우리’라는 사실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고구려는 주몽, 신라는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백제는 온조, 가야는 김수로, 고려는 왕건, 조선은 이성계가 세웠다. 그리고 그 왕조는 자자손손 그 후손의 나라였다. 이러한 한국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건국자의 후손이었지, 진정한 ‘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우리’가 세운 나라이며, 그리하여 ‘우리나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大)+한(韓)+민국(民國: 민주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대한 한민족이 세운 민주공화국이라는 뜻이다. ‘한’이라는 국호는 삼한(三韓)으로부터 유래한다. 최초의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었다. 이것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아우르는 삼한으로 바뀌었다.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성한 다음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고 표현한 데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후삼국 즉 신라, 후고구려, 후백제도 삼한으로 인식하였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자부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 시대 내내 삼한은 당시 ‘우리나라’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 의식은 한참 동안 사라졌다가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와 함께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1919년 임시정부의 국호 ‘대한민국’에서도 ‘한’이 사용되었으며,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우리의 국호로 채택되었다. ‘한’이라는 국호는 상당히 유구한 역사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민국(民國)’은 민주공화국의 약어라 할 수 있다. 인민공화국, 귀족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우리나라의 국체(國體)이다. 그리고 민주(民主)라는 정체(政體)를 연결시켰다. 국가의 주인이 천주(天主)나 군주(君主)가 아니라 ‘민(民)’이 되었다. 놀라운 역사적 대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천주와 군주의 지배하에 살아왔는데, 이제 우리 민이 주인인 민주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통과 계승의식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법통과 계승의식에 관한 문제이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는 뜻이다. 임시정부의 법통이라 함은 자주독립국가를 건국하려는 전 국민의 열망을 구현한 것이고, 민주이념이라 함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음을 뜻한다.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친일, 반민족, 불의, 독재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이 뭐가 문제라느니,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 이전에 헌법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전문에서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감은 ‘조국(祖國)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몇 차례의 독재와 군사쿠데타를 경험하면서 독재가 횡횡하고 민주이념이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여 끊임없이 민주개혁을 하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민주개혁을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세력은 정파나 진영과 관계없이 ‘반헌법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화적 통일’ 또한 우리의 명백한 역사적 사명임을 적시해두었다. 통일을 원치 않는다거나, 통일의식이 없다는 것은 정당의 정책이나 세대의 이해관계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하고 명령한 지상 최대의 과제일 뿐이다. 나는, 우리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꿈과 포부가 아니라 헌법에 반하는 무지의 소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교육에 통일문제가 주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헌법 조항에 있어서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66조)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제69조)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등 여러 곳에서 평화적 통일에 대한 다짐과 추진의지를 강조해두었다. 평화적 통일에 대한 헌법 정신이 이러할진대 통일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것은 정말 한심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헌법 전문에서는 당대의 과업으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정해두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수 있다’고 끝맺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전문의 정신은 간단명료하다. 우리 국민이 주인이 되어 ‘조국(祖國)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모든 정당, 정파, 진영 등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쪽은 없으니, 우리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하여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헌법 정신을 실천하고 구현하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헌법대로만 합시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김병인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고려시대사를 전공하였으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려 예종대 정치세력 연구’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중세사학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

헌법 전문에 나타난
역사 인식과
통일지향성

글. 김병인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담긴 의미

우리 헌법 전문(前文)은 328글자로 이루어졌다. 쉼표는 여섯 개이지만 마침표가 하나이니까 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주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며, 술부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이다. 그렇다. 우리 헌법의 제정과 개정 주체는 ‘우리 대한국민’이다. 우리 국민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계승하는 역사적 사건과 정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다. 다른 하나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다. 즉,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잊지 말고 계승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다짐하였다. 이러한 헌법 전문의 정신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친일이 뭐가 잘못이냐?’라거나, ‘식민지 경험 때문에 잘살게 되었다’는 망언은 나올 수가 없다. 모두 반헌법적 언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파의 후손이 고위공직자가 되기 일상이고, 유수 국립대 교수 출신이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잘살게 되었다”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현실은 부끄럽고 치욕적이기까지 하다. 여야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를 운운하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의외로 헌법 정신을 모르고 있거나 무신경한 것은 아닌지 저어할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매사에 극도로 분열되어 있고 곳곳에 갈등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산재해 있다. 선거의 결과나 진영의 논리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서로 인정하거나 공감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출구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와 헌정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의 논리로 합쳐지기 어렵다면 헌법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헌법 정신으로 대화하고 해결하자. 이를 위해 대한민국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담긴 역사 인식과 통일지향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국경일을 통한 국가정체성 구체화

우리는 헌법 <전문>에 대해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여타 조항에 대한 우위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다. 즉, 헌법 <전문>은 모든 법령보다 우월한 지위 및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전문 첫 구절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으로 시작한다. 이는 우리 역사의 유구성, 연속성을 드러낸다. 이는 국경일을 통한 국가정체성으로 구체화되었다. 1949년 10월 1일 국무회의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면서,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경일을 정한다”라는 입법 취지를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개천절·삼일절·광복절·제헌절 등 네 개였는데 2005년 12월 29일 한글날을 추가하였다.
여기에서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시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개천절은 기원전 2333년,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통한 역사적 유구성을 강조하고 경축하는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의식까지를 내포하고 있다. 3월 1일 삼일절은 식민통치에 의한 역사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인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하여 평화적 시위를 전개한 거국적 만세운동을 통해 민족사의 단절을 극복하였음을 상징한다.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은 일본 식민통치의 청산을 경축하기 위함이며, 민족사의 단절을 극복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이로써 1910년부터 35년 동안 단절된 민족사가 연결되고 계승되었음을 뜻한다. 7월 17일 제헌절(制憲節)은 대한민국의 법제적 출발점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어 7월 17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10월 3일 한글날은 민족사의 가장 뛰어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末文)에 적힌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 세종 28년 9월’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되어, 이날을 한글날로 정하였다. 이러한 다섯 개의 국경일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적, 법제적 시원과 계승의식 그리고 문화적 우월성을 모든 국민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경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세운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다음 구절은 ‘우리 대한국민은’이다. 이는 헌법 전문의 주어에 해당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국(祖國), 동포(同胞), 한민족, 한겨레, 배달민족, 단일민족, 단군후예로 수식될 수 있다. 이 나라를 세운 사람이 ‘우리’라는 사실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고구려는 주몽, 신라는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백제는 온조, 가야는 김수로, 고려는 왕건, 조선은 이성계가 세웠다. 그리고 그 왕조는 자자손손 그 후손의 나라였다. 이러한 한국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건국자의 후손이었지, 진정한 ‘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우리’가 세운 나라이며, 그리하여 ‘우리나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大)+한(韓)+민국(民國: 민주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대한 한민족이 세운 민주공화국이라는 뜻이다. ‘한’이라는 국호는 삼한(三韓)으로부터 유래한다. 최초의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이었다. 이것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아우르는 삼한으로 바뀌었다.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성한 다음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고 표현한 데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후삼국 즉 신라, 후고구려, 후백제도 삼한으로 인식하였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자부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 시대 내내 삼한은 당시 ‘우리나라’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 의식은 한참 동안 사라졌다가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와 함께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1919년 임시정부의 국호 ‘대한민국’에서도 ‘한’이 사용되었으며,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우리의 국호로 채택되었다. ‘한’이라는 국호는 상당히 유구한 역사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민국(民國)’은 민주공화국의 약어라 할 수 있다. 인민공화국, 귀족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우리나라의 국체(國體)이다. 그리고 민주(民主)라는 정체(政體)를 연결시켰다. 국가의 주인이 천주(天主)나 군주(君主)가 아니라 ‘민(民)’이 되었다. 놀라운 역사적 대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천주와 군주의 지배하에 살아왔는데, 이제 우리 민이 주인인 민주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통과 계승의식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법통과 계승의식에 관한 문제이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는 뜻이다. 임시정부의 법통이라 함은 자주독립국가를 건국하려는 전 국민의 열망을 구현한 것이고, 민주이념이라 함은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음을 뜻한다.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정신에 친일, 반민족, 불의, 독재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이 뭐가 문제라느니,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 이전에 헌법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전문에서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감은 ‘조국(祖國)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이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몇 차례의 독재와 군사쿠데타를 경험하면서 독재가 횡횡하고 민주이념이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여 끊임없이 민주개혁을 하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민주개혁을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세력은 정파나 진영과 관계없이 ‘반헌법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화적 통일’ 또한 우리의 명백한 역사적 사명임을 적시해두었다. 통일을 원치 않는다거나, 통일의식이 없다는 것은 정당의 정책이나 세대의 이해관계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하고 명령한 지상 최대의 과제일 뿐이다. 나는, 우리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꿈과 포부가 아니라 헌법에 반하는 무지의 소산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교육에 통일문제가 주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헌법 조항에 있어서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66조)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제69조)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등 여러 곳에서 평화적 통일에 대한 다짐과 추진의지를 강조해두었다. 평화적 통일에 대한 헌법 정신이 이러할진대 통일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것은 정말 한심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헌법 전문에서는 당대의 과업으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정해두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수 있다’고 끝맺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전문의 정신은 간단명료하다. 우리 국민이 주인이 되어 ‘조국(祖國)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모든 정당, 정파, 진영 등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쪽은 없으니, 우리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현실 문제를 타개하여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헌법 정신을 실천하고 구현하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헌법대로만 합시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이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견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김병인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고려시대사를 전공하였으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려 예종대 정치세력 연구’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중세사학회 회장을 역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