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석을 다진

박도순 초대 원장과의 재회

박도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처음’에서 비롯된다.
‘설렘’과 ‘부족’ 사이 ‘안정’이라는 길을 찾아
균형을 잡아가는 처음의 여정은 그래서 고되지만
값지기도 하다. 25년 전 박도순 초대 원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첫 깃대를 잡고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척해 나갔다. 2023년 재도약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과거를
돌아보고 교육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 초심을 다지고자
박도순 초대 원장을 만나 고견을 구해보았다.
그 만남의 현장에 동행해 보도록 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석을 다진

박도순 초대 원장과의 재회

박도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처음’에서 비롯된다.
‘설렘’과 ‘부족’ 사이 ‘안정’이라는 길을 찾아 균형을 잡아가는 처음의 여정은 그래서 고되지만 값지기도 하다. 25년 전 박도순 초대 원장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첫 깃대를 잡고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척해 나갔다. 2023년 재도약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과거를 돌아보고 교육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 초심을 다지고자 박도순 초대 원장을 만나 고견을 구해보았다.
그 만남의 현장에 동행해 보도록 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으로서 창립부터 3년간 평가원의 기틀을 마련해 주셨는데요, 어느덧 25살의 청년이 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도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이하 ) 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개원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간 평가원은 설립 목적에 따라 충실히 잘 운영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인원과 예산도 나날이 확충돼 왔기에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연구원, 행정원 등 모든 직원 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우리나라 학교 교육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금 더 직접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1997년 9월 발족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설립준비기획단’의 단장으로서 평가원 설립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신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985년 중앙교육연수원에서 분리 개원한 ‘중앙교육평가원’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1994년 한국교육개발원과 국립교육평가원(舊, 중앙교육평가원)이 교육과정 개발과 교육평가 업무를 각각 담당하는 이분화된 구조가 전문성과 효율성 부분에서 문제가 된다고 판단한 정부의 결정으로 ‘국립교육평가원’은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1997년 9월에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 연구‧개발 및 교육평가 연구‧시행 등을 수행할 기관의 설립을 위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설립준비기획단’이 발족되었고 제가 단장으로 발탁되면서 개원에 필요한 업무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기획단에 있으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인적 구성 문제였고 두 번째는 규정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개원 초기의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경험 많은 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인해 인력 선발에 많은 난항을 겪었습니다만, 각고의 노력 끝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 충원할 수 있었고, 이어 규정도 정비해 나갔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가 성장 동력인 교육 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교육과정· 방법·평가의 방향을 제시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이끌면서 괄목할 만한 많은 성과를 남기셨는데요, 그중 보람이 있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제가 평가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일본 국립교육연구소에서 만든 대학입학 시험 문제와 중국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전국 단위 시험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 수능 시험 문제를 외국에서 공동으로 비교 연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이 시험 문제를 제일 잘 만든 것으로 평가 받아 1위를 했어요. 이후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시험 문제를 어떻게 만드는지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가서 강의하고, 영국, 프랑스 외무성에 초청을 받는 등 여러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교육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왔습니다.

•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연계의 전문화를 통한 학교 교육의 질 향상 도모를 목적으로 1998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설립되었는데요, 그간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발전, 디지털 교육 강화 등 복잡다단한 교육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현재 평가원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바로 창의성을 계발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창의성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이고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창의성 교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연구 탐색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부분은 학자마다 견해차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가원에서 그 기준을 마련해서 정리하고 우리나라의 상황과 여건에 맞는 창의적 교육법을 개발해야만 합니다.
대학 교수 시절 정년퇴직 전 1년간은 전부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40~50명의 학생에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 문제를 세 가지씩 적어서 내라고 한 뒤 각각의 문제에 대해서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를 정해주었죠. 그리고 저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평가 기준을 10개로 나누어 주었고, 반대편이 없으면 제가 그 역할을 맡아 토론을 이어 나갔습니다. 지금도 가끔 졸업생들을 만나면 그 수업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해요. 사실 스스로 자료를 찾아가고 연구하는 과정이 가장 많은 공부가 되거든요. 즉, 창의적인 공부 말이죠.

• 지난해 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더욱 확대될 것 같은데요, 새로운 국가 교육과정이 안착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에서는 교육과정이 주마다 달라요. 그 말인즉슨 웬만한 건 다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겁니다. 정부가 개입을 안 하고요.
그래서 뭘 어떻게 가르치는지 초등학교도 그 방법이 학교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획일화되어 있어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교자율시간’이 도입되고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등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학교 교육과정에 자율성이 더욱 확대되었을 때,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측면은 ‘교육 격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확대된 교육과정 자율성을 환영하면서 적극적이고전문적으로 대응하겠지만, 또 다른 학교에서는 교육과정 자율성의 확대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학교마다 교육과정 자율성에 대응하는 전문성에 차이가 나면, 결국에는 ‘학교 간’ 또는 ‘지역 간’ 교육 격차가 발생할 수 있어요.
따라서 새로운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의 취지가구현되기 위해서는 읍면 지역의 학교나 소규모 학교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요, 교사들이 개정 교육과정에 대해 협력적으로 연구하면서 전문성을 신장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 학교 통폐합, 교사 정원 축소 등 교육 현안을 해결할 미래 학교나 교직 상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우선 줄어드는 학생 수와 그 수에 맞는 학급 당 적정 교사 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학급당 적정 학생‧교사 수를 법으로 정하는 외국의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이 꼭 이를 따라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역시 상황에 맞춰 적절한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거죠. 이런 연구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해줘야 해요. 그렇지만 저출산 문제에 따른 미래 학교와 교육 문제는 어느 한 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정부,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의 다각적인 협업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연계된 모든 기관 및 정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궁리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 최근 교육 현장에서의 챗지피티 활용, AI를 이용한 디지털 교과서 개발, 디지털 선도학교 운영 등 디지털 기반의 교육혁신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 방향에 대한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1960년에 파리 유네스코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걸려있던 현수막에 “지식을 전수하는 사회가 아니라 학습을 학습하는 사회다”라고 적혀있더군요. 이는 학습을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현재를 예측하고 말한 것 같지 않나요? 그것도 60년 전에 말이에요. 이제는 지식을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요샌 핸드폰만 집어 들어도 다양한 지식을 손쉽게 찾을 수 있어요. 챗지피티까지 등장했을 정도니 지식을 습득하는 건 더 이상 학습이 아니게 된 거죠.
그래서 이제 학교에서는 지식을 가르치는 걸 우선으로 할 게 아니라 학습방법을 가르쳐야만 해요. 물론 디지털 정보를 맹신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아직은 오류가 많고 확실하지 않은 정보도 난무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우선 학생들에게 디지털 정보 활용법을 교육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디지털 기반의 교육 현실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계획적인 콘텐츠를 마련해서 수업에 응용하면 좋겠습니다. 토론과 발표를 통해 디지털정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정보에 대해 옳고 그른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교수님은 국립교육평가원장을 거쳐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으로 수능을 창안·설계하신 교육평가 전문가로서 앞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포함한 국가 수준에서의 학생 평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새로운 입학 전형제도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난이도에 대한 기본 모델을 SAT 즉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잡았었습니다. 서열화를 만들지 않는 적정 난이도의 문제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이 학생 평가에 있어서 적정 난이도의 올바른 방향성 제시의 역할을 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으로서, 25주년을 맞이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이나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설립 취지에 따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능의 장기적인 발전을 모색하기에 앞서 입시에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다시 한 번 고민해 주셨으면 하고요,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시험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식 위주의 시험이 아닌 주관식 시험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구술은 3천 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그다음에 주관식 시험이 생겨났고, 그 이후에 객관식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절대적인 숫자로만 평가하는 현 수능의 세태가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 교육광장은 초·중·고등학교 교사, 교수, 교육 전문가 등 교육 현장에 계신 다양한 관계자들이 독자층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맺음 인사 부탁드립니다.

교육광장 속에 학부모님들을 위한 코너도 만들어서 학부모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교육 문제를 다룰 때 학부모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금 체계적으로 되는 데가 거의 없어요. 이는 향후 교육 문제 개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