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도시’

통영 한산도로 떠나는 여행

경남 통영은 ‘이순신의 도시’로 불린다. 통영의 섬, 한산도 바다는 한산도 대첩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요즘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빠져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아들(노서준, 초등학교 3학년)을 데리고 아빠(노우철)는 한산도로 역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30분쯤 배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한산도로 함께 가 보자.

충무공의 섬, ‘한산도’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도시인 경남 통영의 옛 이름이 충무란 거 아니? 임진왜란 때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야.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뚫고 통영에 삼군수군통제영을 만들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의 수군을 꿰뚫고 통솔했어. 통영이란 이름도 삼군수군통제영을 줄인 말이란다. 1955년 통영읍이 시로 승격하여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시로 이름이 지어졌다가 지금은 통영시가 했다고 합니다. 전압도 지금 가고 있는 한산도를 포함한 한려수도는 한려해상국립으로 방역을 보존하고 자연경관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곳일 뿐만 아니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조선조를 침략한 왜군 공원 복귀를 궤멸시키는 한산도 대첩을 이끈 끈끈한 장소이기도 해 . 어때? 설명을 듣고 우리가 가는 곳이 원래 깊어 보이지 않니?”
배 안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통영의 옛 이름을 설명한다. 아들은 위인전 만화책에서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 신고를 했습니다. 아빠는 만화책에서 본 이순신 장군에 대해 신이 나서 조잘조잘 얘기하는 아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빠, 그럼 우리가 지금 가는 한산도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무찌른 한산도 대첩이 된 곳이라 거지?” 아들의 물음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빛이 났습니다. 아빠와 아들은 배 주인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때의 연속상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은 “와, 너무 재미있어요”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아빠의 말에 귀를 기른다. 두 사람이 역사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배는 한산도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했다.

‘충무공을 배우다’ 이충무공유적지

배에서 내려 제승당까지는 15분쯤 쯤 된다. 섬의 끝을 따라 얻게란 초록빛 나무들 사이로 걷는다. 충을 바다를 보며 걷다 한산도 무공을 뺀다의 초입에 다다랐다. 아들과 아빠는 윌슨 체제 설명을 올리다. 또한 제승당을 치료할 때 충무공의 존영을 모신 충무사, 송덕비, 활터, 수루 등 건물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있다.

유적지의 입구에는 “멸사봉공의 정신, 창의와 개척정신, 유비무환의 정신”이라는 충무공의 정신이 크게 적혀있었다.

충무사(영당)
제승당 유허비
제승당
한산정
수루
대첩문
수호사
관리사무소
휴게소
한산문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멸사봉공’의 정신
거북선과 조총을 새로이 만든 ‘창의 개척’ 정신
거북선과 조총을 새로이 만든 ‘창의 개척’ 정신

‘충무공을 느끼다’ 수루, 제승당, 한산정

내삼문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수루였다. 수루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수루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왜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자주 찾았던 망루다. 수루에서 남해안 왜적의 동태를 살핀 후 봉화, 연, 고동 소리 등을 이용하여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 등 주변 지역으로 알렸다. 특히 이곳에서 장군은 수루에 올라 나라를 구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나랏일을 걱정하는 시를 읊기도 했다.

두 사람이 방문한 여름은 비가 와서 수루가 닫혀있었지만, 닫힌 입구 앞에서도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 푸른 바다를 보며 낭만에 젖기 보다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깊은 생각에 빠졌을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지 않냐고 아빠가 묻자, 아들은 웃었다.

아빠와 아들은 제승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부하들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작전 계획을 세우는 등 주로 군사 업무를 하던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의 제작과 보급에도 힘썼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1,491일간의 일들을 기록한 <난중일기> 중 1,029일간의 일기와 수많은 시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 26년(1593) 7월 15일부터 한양으로 압송되었던 해인 선조 30년(1597) 2월 26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제승당 안에는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전투들이 묘사된 그림이 그려진 병풍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들과 아빠는 가만히 서서 제승당 안을 들여다보며, 그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만화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한 거 같아?”라고 아빠가 묻자, “음… 비슷한 듯 달라요.”라며 다시 한번 제승당 내부를 유심히 바라본다. “난 조용한 제승당에 앉아 혼자 일기를 쓰고, 부하들과 함께 나라를 구할 전략을 구상하던 장군의 모습이 떠오르네”라고 아빠는 아들에게 나긋이 말했다. 아들은 “멋져요”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영웅을 좋아하고,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10살 아이다운 말과 행동이다.

제승당을 지나 한산정으로 나가본다. 활터라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활 쏘는 연습을 했었다며, 아빠와 아들은 나란히 서서 활을 쏘는 흉내를 내본다.

‘충무공을 만나다’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마지막으로 간 곳은 충무사다. 아빠는 아들에게 충무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야.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통영 시민들이,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 14일에는 해군 사관생도들이 찾아와 참배를 한대.”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호랑이처럼 날카로웠고 위엄이 느껴졌다. 영정 앞에는 참배를 위한 향과 향로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빠는 아들에게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숭고한 정신에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향을 피우고 함께 참배하자고 제안했다. 아들은 처음 피워보는 향을 신기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아빠를 따라 한다.

아빠와 아들은 세 시간 동안 한산도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걷고, 보고, 읽고, 느꼈다. 두 사람에게 오늘 여행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아빠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여정 중 가장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와서 학창 시절 한국사 교과서로 배웠던 것들을 아들과 함께 공부하고 익힐 수 있는 현장 학습의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즐거웠고 알찬 여행이었다”라고 전했다. 아들은 다소 엉뚱하지만 열의에 가득찬 목소리로 “아빠,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몇 척이었는 줄 알아요? 못맞히면 다음번엔 노량해전이 일어난 남해 노량진에 가야 해요! 저는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 유적지를 다 가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이순신 장군 유적지 여행이 목표인 아들과 그런 아들을 늘 지지해주는 아빠의 다음 여행을 응원해 본다.

한산대첩
한산대첩은 선조 25년(1592)에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이다.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은 7월 8일과 10일에 각각 한산도 앞바다와 안골포에서 왜군에 승리했는데 특히 안골포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크게 활약했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큰 승리를 거둔 데는 학익진 전법과 거북선, 판옥선이 큰 역할을 했다. 조선 수군은 한산대첩의 승리로 적을 섬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해상권을 장악한 동시에 적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여 적의 사기와 전의에 큰 타격을 주었다. 왜군 함대 73척을 궤멸한 한산대첩은 이후 행주대첩·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 안골포: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동에 있었던 포구
+ 학익진: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반원의 형태로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에 적합한 지형을 가진 곳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운영시간:
매일 09:00-18:00 하절기(3월~9월), 매일 09:00-17:00 동절기(10월~2월)
위치: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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