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과 정보화 지원 사업
글·신서영 국립특수교육원 연구사
이년 전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2021)>이라는 책이 ‘아마존닷컴 최고의 책’, ‘워싱턴포스트 권장 도서’ 등에 오르며 유명세를 치른 적 있다. 저자인 토드 로즈는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교수이자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ADHD로 자퇴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대량생산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던 ‘보편성, 표준화’의 표상이었던 ‘평균값’이 교육에 그대로 적용될 경우 얼마나 많은 불합리가 생기는지를 지적하며,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과 소질이 있으므로 교육은 개개인성의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처음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대중들은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 말이야’라고 무릎을 탁 쳤고 개인화된 학습1)의 필요성이 혁신학교 붐과 함께 대한민국의 교육계에 큰 공감을 샀다.
그런데, 특수교육을 전공한 나로서는 ‘평균의 종말’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보며 ‘당연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열광한다고?’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수교육 전공자들은 개별화 교육에 뿌리를 두고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가기 때문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평균적 특성이 아닌 이질적 특성으로 묶인 집단이라는 아이러니한 공통성 때문에 늘 개인화된 학습을 위한 계획과 그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것을 특수교육에서는 ‘개별화 교육계획(Individualized Educational Program)’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학습양식, 장애특성과 인지수준, 성취목표에 기반하여 특정 기간 동안 어떤 방법과 과정으로 학습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장애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불이익2)에 대한 지원 서비스도 포함한다.
1) 개인화된 학습personnalized learning. 정광순(2019)의 “PL(Personalized Learning)로 본 학교교육 제 개념들의 의미 변화 논의”를 보면 그 의미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2) disability. 초창기에는 장애를 결함(impairment)의 개념으로 이해하였으나, 차츰 약점(handicapped)의 개념으로 이해하다가 오늘날은 지원 강도에 따라 장애여부가 결정되는 사회적 불리(social disability)의 개념으로 이해한다(Pam Thomas; Lorraine Gradwell; Natalie Markham. “Defining Impairment within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PDF). leeds.ac.uk. Retrieved 10 November 2012.)
국가 차원에서의 특수교육 정보화 지원 사업의 필요성
오늘날 교육의 빅워드(Big Word)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이다. 혹자는 장애인들이 현재 상태에서 제공되는 교육을 학습하기도 벅찬데, 도리어 시대의 변화에 따른 디지털 전환의 학습 부담까지 안겨주는 것이 아니냐는 과도한 걱정을 하며, 디지털 전환 정책에 장애인을 포함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는가를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그것은 틀린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접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기차역에 가서 차표를 끊고, 식당에 가서 종업원에게 음식을 시키던 시절에는 손글씨로 자모를 결합하여 글자를 쓰는 방법, 기차역을 직접 가는 방법, 줄을 서고 차표를 끊는 방법, 메뉴를 고르고 주문하는 방법을 학습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보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방법, 기차표 앱을 깔고 차표를 끊는 방법, 요식업 앱을 깔고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시대와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다양한 지식과 기능을 배워야 하고 이것이 국가 수준에서 최소한의 교육과정과 학습자료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히 장애인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이며,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적응 및 활용을 위해 국가의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국가가 지원해주어야 하는가를 정보화 인프라, 콘텐츠, 역량 강화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3).
3)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정보화 인프라, 콘텐츠, 역량 강화 등 세 가지 방안은 특수교육 정보화지원사업 발전 방안 연구(국립특수교육원, 2022)에서 도출된 결과를 일부 요약해서 소개한 것이다.
특수교육 정보화 인프라
우선 디지털 인프라 측면은 유형의 인프라와 무형의 인프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유형의 인프라로는 태블릿 PC나 HMD기기, AR글라스 등의 개인학습 기기 뿐만 아닌 전자칠판, 키오스크와 같은 각종 디지털 디바이스도 포함된다. 물론 의사소통기기, 음성낭독기 등과 같은 장애로 인한 접근성 제한을 개선하기 위한 보조공학기구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런 유형의 디지털 디바이스는 지난 코로나19를 계기로 학교 현장에 많이 보급된 편이지만,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역이나 배치 환경(특수학교 또는 특수학급)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따라서 최소한의 정보화 인프라에 대한 시도교육청 예산 비율 제시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또 무형의 인프라로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들 수 있는데, 과거에는 플랫폼이나 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는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통신망의 속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플랫폼 고도화에 있어서는 최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도입이 시급해보인다. 개방형 인공지능 플랫폼에 프롬프트를 설치하면 이미지에 대한 언어설명, 음성인식 대체텍스트 제공, 소리제공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기술을 현재 플랫폼에 도입하여 고도화하면 시각, 청각 등의 감각기능으로 인한 접근성 제한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은 특수학급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고도화된 기술 사용이나 VR, XR, MR, AR 등의 대용량 콘텐츠의 안정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5G 이상의 안정적인 통신망 제공도 필수적이다.
디지털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자신의 수준과 특성에 맞게 배울 수 있도록
국가의 특수교육 정보화 지원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의 진정성은 국가의 경쟁력과 개인의 존엄성
둘 다 회복시키리라고 믿는다.
디지털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자신의 수준과 특성에 맞게 배울 수 있도록 국가의 특수교육 정보화 지원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의 진정성은 국가의 경쟁력과 개인의 존엄성 둘 다 회복시키리라고 믿는다.
특수교육 디지털 콘텐츠 제작 및 공급
다음으로 디지털 콘텐츠의 제작 및 공급이다. 콘텐츠는 과거에도 꾸준히 국립특수교육원 등을 통해 제작되고 공급되어왔지만 과거의 콘텐츠는 웹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미지, 일방향적 영상, PDF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정상분포곡선상에서 2표준편차 밖의 이질적 특성을 지닌 이들에게 한 가지 유형의 콘텐츠를 한 가지 수준으로 제공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학습제재별 특성에 맞는 콘텐츠 유형 고려, 학업수준에 맞는 수준별 콘텐츠의 제작이 필요하며 특히 장애유형별 특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적장애 학생은 학생이 수용가능한 학습량과 난이도가 고려되어야 하며, 지체장애학생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활동을 아바타를 통해 대리경험할 수 있도록 VR콘텐츠를 개발·보급해 주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학생은 음성낭독, 청각장애학생은 자막 혹은 수어지원 등 접근성 지원을 통해 더욱 풍부한 학습경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국가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형으로 학습자료를 일일이 제작해 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교사들에게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를 제공하거나 콘텐츠 제작을 위한 도구 및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한편 이것들이 공급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은 이 모든 다양한 콘텐츠의 제작은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 자료 지원을 위한 것이므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기주도적 맞춤형 콘텐츠 제공이 절실하다. 이는 데이터 축적과 기초선 측정을 통해 가능하므로 다양한 유형과 수준의 콘텐츠 제작 뿐만 아니라 LMS 기능이 탑재된 플랫폼 고도화를 통해 제공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특수교육 디지털 역량 강화
마지막으로 역량 강화이다. 역량 강화는 가르치는 자의 역량과 배우는 자의 역량으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가르치는 자의 역량은 교수자, 즉 교사의 역량을 말하는데 교사의 디지털 역량은 개인의 디지털 관심 및 연령대 등 다양한 변인이 결부되어 매우 천차만별이다. 최신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부터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콘텐츠 제작 및 판매까지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있는 반면에 테블릿 PC의 전원조작조차도 어려워하는 교사도 있다. 따라서 특수교사 디지털 역량 강화 연수는 이러한 현장의 실태를 반영하여 왕초보 연수부터 고급연수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개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론 위주가 아닌 실기 중심의 소규모 학습자 참여형 연수가 바람직할 것이다. 학생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대내외 정보화 활동 기회를 확대하고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디지털 소양 교육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특수교육 교육과정에서는 초등 실과 및 기본교육과정의 중고등 선택과목 중 정보통신활용에서 디지털 소양교육을 하고 있다. 내용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소양, 정보통신윤리, 디지털 아이템 제작 등 디지털 기술 활용 진로직업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한 양질의 교육과정 및 교육자료 개발이 필요하며, 교과 간 융합활동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되는 정보화 소양을 기르도록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협업 체계 구축
이상으로 특수교육을 위한 디지털 전환을 위해 무엇을 지원해야 할 것인가를 인프라, 콘텐츠, 역량 강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특수교육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개개인이 성취해 나가야 할 학습이기 때문에 개인성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개인성은 개개인의 독특한 차이를 일컬으므로 모든 교육에서 필수적이다. 다만,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장애로 인한 감각기능, 의사소통 능력, 신체활동 능력 등이 일반 학생보다 부족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정서행동적 장애가 수반될 수도 있으므로 지원체계가 일반 학생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탄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심리상담, 교육, 사회복지 측면에서 팀 접근이 필요한데, 예전에는 이를 위해 직접 만나서 회의했다. 하지만 이제는 화상회의, LMS 등이 가능한 디지털 플랫폼이 있으니 이를 활용하여 체계적인 협업체제를 구축한다면, 효율적인 팀어프로칭(Team-approaching)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디지털 전환 시대와 교육의 진정성
2022년 특수교육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103,695명이며 이는 2021년 98,154명보다 5.6% 증가한 수치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제외한 학령기 학생이 매년 2%가량 감소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매우 특이한 증가율이다. 그 원인으로는 다양한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장애아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의료기술이 퇴보하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특수교육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작용했으리라 판단된다. 장애인이라는 낙인효과를 피하고자 특수교육 대상 학생으로 선정, 배치되는 것을 꺼려하며 아이가 학습을 따라가기 벅차더라도 일반 학급에 배치되길 바라던 풍속과는 달리 요즈음은 내 아이의 수준과 특성에 대한 배려가 있는 특수교육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라고 가정한다면 학부모의 달라진 태도에는 분명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내 아이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으로 선정되어 아이의 특성과 수준에 맞는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느 학부모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으로 선정·배치되기를 바라며, 시위를 해서라도 특수학교 건립을 하고 싶겠는가. 모든 사람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디지털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자신의 수준과 특성에 맞게 배울 수 있도록 국가의 특수교육 정보화 지원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의 진정성은 국가의 경쟁력과 개인의 존엄성을 둘 다 회복시키리라고 믿는다.
신서영
국립특수교육원 연구사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19년을 재직하다가, 현재는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로 근무 중이다.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주요 관심사는 교육과정, 에듀테크, 인공지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