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문해력 교육의 방향
• 글·서혁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➊ 인공지능(AI) 시대의 문해력
인류의 문해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문자와 기록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점점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들을 문자를 통해 표현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매체들이 보편화되면서 인류의 문해력도 점차 확장되어 왔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디지털 시대에 진입하여 디지털 기기들을 활용한 이해·표현 능력이 요구되면서 디지털 문해력이 중요한 교육 내용이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수년 사이에는 인공지능(AI)이 일상생활은 물론 교육에도 급격하게 유입됨에 따라 AI 문해력이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을 포함하여 유네스코(UNESCO)와 같은 국제 기구에서는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 차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 활용 및 윤리 등 AI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컴퓨터과학교사협회(CSTA)와 인공지능협회(AAAI)의 협업으로 제안된 유치원-12학년 대상 인공지능 교육 프로젝트(AI4K12), UNESCO의 학생 AI역량 프레임워크(AI Competency Framework for Students, CFS), UNESCO의 교사 AI역량 프레임워크(AI Competency Framework for Teachers, CFT), 호주 국가 수준 교육과정(ACARA 9.0)의 교과연계 AI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최근 수년간 우리의 일상생활과 교수학습 장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2022년 말 공식 출시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2024년 하반기 현재 국내외 주요 대학들은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 지침과 함께 대학생들이 실제 학습과 과제 해결에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거나 교과목에 따라서는 사용을 의무화하는 사례도 많이 생기고 있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 과제를 해결해 주며, 원하는 내용과 분량의 글들을 불과 수 초 만에 써 주는 마당에 문해력 교육이 과연 필요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문해력 전문가들의 견해는 기초 문해력, 비판적 문해력, 창의적 문해력이 더욱 중요해졌으며, 문해력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➋ 문해력과 맥락의 이해
전통적으로 문해력(literacy)이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으로 알려져 왔다.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일상생활은 물론 교과학습, 직업 전문 활동에서도 매우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읽기·쓰기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읽기·쓰기 능력은 영유아 때부터 습득되기 시작하는 듣기·말하기의 구어(口語) 능력의 발달 없이는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어과 교육과정의 배치 순서도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 등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초 문해력은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에서 반드시 도달하기를 목표로 하는 언어 이해·표현 능력이다. 기초 문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초등학교 중학년과 고학년의 교과학습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교과 내용 학습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잘 보이지 않던 학생들 간의 문해력 격차가 점점 커지게 된다. 그래서 ‘4학년 슬럼프(4th grade slump)’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면 반드시 기초 문해력에 도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시간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울러 4학년 이상이 되면 중고등학교 시기까지 해당 학년기에 필요한 문해력의 수준이 존재한다. 이를 기본 문해력이라고 한다. 특히 고등학교 2, 3학년생 이후에는 전공이나 직업 전문 활동에 필요한 고급 문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글자 읽기는 곧 세상 읽기이다.(Reading words is reading world.)’는 말이 있다. 문해력은 단지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그 이상이라는 말이다. 문해력은 읽기·쓰기 능력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듣기·말하기 능력을 전제로 한다. 듣기·말하기의 구어(口語)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읽기·쓰기와 같은 문어(文語) 능력을 갖추는 것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해력은 기본적으로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통합적 능력이다.
더 나아가서 문해력은 단지 글자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맥락(context)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맥락은 좁은 의미로는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사회문화적 배경까지 포함한다. 더 나아가서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필자는 수년 전 서울 인근에서 등산을 하던 중 산 정상 부근에서 “산불조심 -인화물질 두고가기”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등산로 입구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이었다. 이 현수막을 게시한 사람의 의도나 목적은 누구나 대부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산 정상에 걸려 있는 경우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산 정상에 ‘인화 물질 두고가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산불 발생 위험이 높아지지 않겠는가.(실제로 그 이듬해 공교롭게도 해당 산 정상 부근에서는 큰 산불이 발생하여 각종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➌ 확장된 문해력
확장된 문해력이란 문해력을 사용하는 공간, 참여자, 양식, 맥락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림 1]은 이를 도식으로 간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공간의 확장’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소통의 공간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까지 넓게 확장된 것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이다. ‘참여자의 확장’은 기존에는 소통의 참여자가 주로 인간이었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소통의 참여자로 인공지능 대리인(AI Agent)이 개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양식의 확장’은 기존에는 문자 중심의 단일 양식 기반이었으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문자는 물론 음성, 음악, 소리,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복합양식으로 이루어진 소통이 대폭 증가했다는 점이다. 즉 보기(Viewing), 읽기(Reading), 듣기(Auding)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보들읽기’를 수행해야만 한다(서혁, 2023). 이에 따라 이들 복합양식의 자료들을 동시에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복합양식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맥락(context)의 확장’은 전술한 ‘양식의 확장’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즉, 기존에는 문자 텍스트의 중심의 내용을 통일성(coherence) 있게 처리하면 되었으나, 복합양식 텍스트의 경우에는 문자는 물론 음성, 음악,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양식들이 갖는 소통의 맥락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복합맥락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사용자의 인지적 처리 과정이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➍ 인공지능 활용 능력과 프롬프트 문해력
현대 사회에서 인공지능(AI)의 활용 능력은 문해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인해,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교육적 적용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문해력 교육에도 새로운 과제를 제시해 준다. 즉, 일반적으로 문해력(literacy)이라고 하면 종이와 펜 기반의 문자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넓은 의미의 문해력을 가리키지만,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으로 디지털 기기 및 플랫폼을 활용해 콘텐츠를 탐색·평가·활용·공유·제작하는 능력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AI 문해력(AI literacy)은 데이터 분석 및 설명을 주로 하는 기술형 AI(descriptive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반면에 프롬프트 문해력(prompt literacy)은 사용자가 생성형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질문과 지시를 통해 생성된 결과들을 해석하고 반복 수행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문해력의 특성도 변하고 있으며, 동시에 문해력 교육의 내용과 방향도 변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입력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하거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문해력 교육은 학생들이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생성형 AI에게 소통의 맥락, 의도, 목적 등을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생성형 AI는 사용자의 머릿속을 모른다. 거대 언어 모형(LLM)에 기반한 빅데이터를 수집·저장하고 있다가, 사용자가 요청하면 확률통계적으로 계산한 가장 유사한 자료(데이터)를 내어줄 뿐이다. 단순히 “‘◯◯’이 뭐야?”라고 질문하면 내가 원하는 ‘◯◯’을 주는 것이 아니라 AI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데이터) 중에서 생성형 AI의 손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료를 내 줄 뿐인 것이다. 생성형 AI는 그 자료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거나, 사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맞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생성형 AI는 거대한 사이버 도서관에 가깝다. 그래서 정답을 대략적으로나마 아는 사용자가 가장 정확한 답을 얻는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프롬프트 문해력(prompt literacy)이다. 프롬프트 문해력의 핵심은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확인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 사용 의도와 목적, 맥락에 맞게 효과적으로 질문하고 지시하는 데 있다. 프롬프트 문해력은 이른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 기본 문해력은 물론이고, 생성형 AI가 제시해 주는 자료나 정보를 다른 도구들을 활용하여 비교검증·평가판단·취사선택할 수 있는 비판적 문해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스스로의 문해 활동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상위인지(메타인지) 능력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문해력 교육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들이 더욱 활성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 마련 방안도 범교과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들이 보급될 예정이고, AI 디지털 교과서(AIDT)의 보급도 예정되어 있다. 차기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교과에서 어떻게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교육할 것인지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준비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문해력이 이에 따라 크게 확장 심화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참고자료
서혁(2023), 독서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독서 교육: 독서 환경의 변화와 교육적 대응을 중심으로, 독서연구 제68호, 9-33.
서혁, 김연지(2024), 포스트 AI 시대 학교 교육 환경의 변화와 확장된 문해력 교육, 국어교육학연구 제59집 제1호, 5-32.
서혁, 윤준채, 이소라, 류수경, 오은하, 편지윤, 윤희성, 변은지, 한지수 역(2022), <독서심리학>. 사회평론아카데미.
Yohan Hwang, Jang Ho Lee, Dongkwang Shin(2023), What is prompt literacy? An exploratory study of language learners’ development of new literacy skill using generative AI, arXiv:2311.05373.
서혁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1996년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2006~2024 현재). 전주교대 교수 역임(1996~2005).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초빙교수(2002~ 2003),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교 방문교수(2012~2013). (전)국어교육학회 회장, (전)한국독서학회 회장. 주요 연구 업적으로는 <독서심리학>, <독서교육론>, <국어교육학과 사고>, <어휘교육론> 등. 논문으로는 시선추적장치를 활용한 읽기 과정 연구, 텍스트 복잡도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