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의 새로운 지평
글·차우규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교육의 힘
1970-80년대 학창 시절, 우리는 서양 음악, 서양 음식, 서양 영화, 서양 학문, 외제 전자제품 및 자동차 등 서양의 문화와 문물들을 우리 것들에 비해 매우 우수한 것이고 우리가 모방하고 배워야 할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K-pop부터 K-drama, K-food, K-beauty, K-방산, 그리고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다. 그리고 국내 어디에 가나 외국인들을 쉽게 만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이젠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매우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 개도국 인사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자주 듣는다. “한국은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이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나요?” 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교육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한국의 발전 원인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쉽게 설명할 순 없지만, 잠깐 만나서 짧게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그것만큼 좋은 대답이 없는 것 같다.
교육의 힘의 원천: 교육열
교육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여기서는 교육의 힘의 원천으로서 ‘교육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열은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으로, 교육열은 개인의 성취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되었다. 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베이비붐 세대들(1955-63년생)이 생산인구로서 사회 전반에 충원된 것은 한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교육열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우울증과 불안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켰고, 협력보다는 개인의 성취만을 중시하는 공동체 부재 문제 등을 유발하였다. 또한, 사교육비로 인한 사회 불평등 문제, 학업과 지식 위주 교육으로 인한 창의성 저해 문제 등을 발생시켰다.
이제 우리의 교육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교육열의 긍정적 측면은 더 부각하고, 부정적 측면은 잘 통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교육열
교육열이 올바로 활용되도록 하기 위해서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들에게, (1)학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균형 잡힌 전인적 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2)단순히 정보를 암기하고 꺼내쓰는 방식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가도록 도와주고, (3)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집단사고를 통해 다양한 관점과 협력의 방식을 배우는 경험을 쌓으며, (4)자신의 성공에만 집중하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5)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습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고 새로운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태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리고 (6)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의 진로는 무엇인지 등을 분명히 설정하는 것을 통해 교육열이 한 방향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교육의 본질 추구
우리가 교육의 본질에 맞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교육의 본질에 맞게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 ‘교육’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 권위(전문성), 신뢰(사랑)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학습자가 교수자의 학문적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에는 권위(전문성을 인정하면서 생기는 관계의 힘)가 생기기 어려우며 그럴 경우 교육이라는 현상은 발생하기 어렵다. 또한,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교육 현상이 발생하기 어렵다. 즉, 학습자는 교수자가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신뢰의 마음이 생겨 ‘교육’이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는 전문성에 따른 권위, 사랑과 존중에 기반한 신뢰가 전제될 때 진정한 의미의 교육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미래 한국 교육의 설계
미래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도 더 빠른 속도와 폭으로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고령화, 기후환경 위기와 환경교육, AI에듀테크, IB와 출력중심교육, K-edu와 해외유학생 직업교육 등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교육에 있어서도 새로운 혁신과 발전이 요구된다. 미래 한국 사회의 성패 여부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우리의 교육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철저히 준비하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저출생·고령화 시대에서 교육의 역할
현재 한국은 심각한 저출생·고령화 위기에 놓여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가장 낮은 합계 출산율을 수년간 지속하고 있으며,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세계적인 석학들 중 일부는 한국의 이런 변화들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한국은 인구소멸이라는 이유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될 것이다.” – 데이비드 콜만
“한국의 고령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2030년경에 인구지진을 맞이할 것이다.” – 폴 월리스
그렇다면 이러한 인구 위기 속에서 우리의 교육은 얼마나 효과적인 대응을 해왔는가? 1996년 보건복지부는 당시 출산억제정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인구의 질 제고로 인구정책의 방향을 선회하였다. 하지만 200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초·중등 학교에서 사용되는 각종 교과서의 인구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출산억제정책 시기에 쓰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 사회의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인구교육 내용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젠 교육이 한국의 인구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인구교육 전문 소양을 갖춘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인구교육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도록 전문 교사 양성 및 연수과정을 마련하고, 학교 교육과정 개편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학교 인구교육 내용으로는 학생들이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 형성(결혼, 출산, 양육, 입양 등)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가치 형성과 인식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할 것이다.
기후환경 위기와 환경교육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는 극단적인 기후 현상, 해빙과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다양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며,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미세먼지, 태풍과 해일, 극단적인 기후로 인한 대형 산불과 농작물 피해 등 수없이 많은 자연재해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이러한 위기는 자연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파괴한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와도 무관치 않다. 이제 이런 환경 위기는 개인의 건강과 생명의 위협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조만간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후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교육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고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기술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방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개발, 정책적 대응, 법과 제도 마련, 친환경 기업 육성 등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민들이 동참하고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환경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환경교육도 인구교육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으로써 모든 교과 활동 및 교과 외 활동과 연계하여 지식뿐 아니라 소통과 참여를 통한 가치·태도 형성 교육에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
AI에듀테크
AI에듀테크는 교육 기술(technology in education)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 맞춤형 개별화 수업을 향한 교육계의 노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교육계의 숙원 중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학교 현장에서 완전 학습 이론을 도입하고 티칭머신의 개발과 활용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 당시에는 빅데이터를 분석할 서버나 분석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 학생 맞춤형 수업과 평가 지도 등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빅데이터 분석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젠 이러한 교육을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어떻게 교육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은 단순한 실험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시범연구와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으로 학교 교육 현장에 AI에듀테크가 올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원대학교는 국내 최초로 교육부의 설립 인가를 받아 2027년도에 국내 유일의 AI에듀테크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교사 양성 과정과 교사 재교육 과정으로 AIDT교육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며, 개발플랫폼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AI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ISTE(International Society for Technology in Education)처럼, AI 및 Edutech 기업들과 학교 등 교육기관들이 협력하여 교육기술의 계속된 발전을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IB(Inetrnational Baccalaureate)와 출력중심 교육
미래 창의·융합교육의 일환으로서 국제교육(IB)은 교육의 원칙에 따라 개념기반 교육과정과 탐구 학습을 핵심 요소로 하고, 자기 주도성과 국제적 마인드(Global Mindedness)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제교육(IB)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IB학교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교육청의 관심과 지원도 커지고 있다. IB학교는 국제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로,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 국제적 관점, 그리고 학문적 도전 등을 강조한다. 그리고 IB프로그램은 주로 세 가지로 구성된다.
미래 사회에서는 교과 위주의 분절적인 지식교육보다는 주제 중심의 교과융합교육이 요구될 것이며, 교사 주도의 ‘입력’ 중심 교수법보다는 학생 주도의 ‘출력’ 중심 교수법이 중시될 것이다. 즉, 이 교수법은 (1)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외부로 표현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학습의 깊이와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2) 이론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실생활과 연결된 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실제로 활용해 볼 수 있는 실천 기회를 제공한다. (3) 다른 학생들과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장려함으로써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4)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이 수행한 결과에 대해 교사나 동료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개선할 기회를 제공한다.
K-edu와 해외유학생 직업교육
과거에는 교육기관들이 해외의 우수 교육 콘텐츠와 인력을 수입하여 우리나라 교육현장 실정에 맞게 리모델링 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오히려 우리의 우수한 교육 콘텐츠와 교육 인력을 해외 교육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로 옮겨가게 된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ODA사업의 일환으로 개도국의 교육을 지원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우리의 우수 콘텐츠와 인력을 상대국에 판매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미래 한국 사회에서는 생산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각 산업체가 필요 노동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인력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교육기관에서는 국내에서의 필요 인력을 파악해 해외에서 필요 인재들을 선발해 교육시키고 해당 기관들에 필요 인력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육 내용으로는 필요 인력들이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직업 활동을 원활히 수행하는 데 기초가 되는 내용들을 포함하여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향후 우리나라 교육은 그 역할 지평이 과거와는 달리 매우 넓어질 것이며, 그에 따라 교육기관들도 학교 교육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직업교육 및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으로 그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차우규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를 졸업하여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민윤리교육 전공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8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이직하여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중 2005년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어 산학협력단장, 종합교육연수원장, 교육연구원장, 부총장 겸 교수부장 등 보직을 역임했으며, 2024년 4월 제12대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