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으로 만든 교실
수학으로 만나는 세상
글·김정주 마산동중학교 교사
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수학, 필요도 없는데 왜 배워요?”이다.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 교실에서 수학 없이 만들 수 있는 것 한번 찾아볼래?” 과연 수 개념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수학은 세상과 통하는 창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학은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잘 풀어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문제 풀이에만 급급해서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 참 안타깝다. 문제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만들어진 문제는 수학 관련 앱이나 AI가 잘도 풀어주는데 말이다. ChatGPT도 확률론과 통계학의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과 통계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대규모 데이터 처리 및 ChatGPT의 성능향상이나 학습 추론 과정에도 고급 수학적 기법이 필요하다. 그러니 수학이 쓰이지 않는 데가 있을까? 그럼에도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수학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마산동중학교의 김정주 교사는 책상과 의자만 있던 교실을 수학이 보이는 학생들의 작품으로 키워나가면서 ‘수학으로 만든 교실, 수학으로 만나는 세상’을 통해 수학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수학체험교실,
그리고 Math storybook
2013년부터 부임하는 학교마다 수학체험교실을 만들어서 여러 체험이나 조작 활동 속에서 직접 탐구하고 느끼고 생각해서 실제 쓰임을 알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수업 중 활동들을 모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경남수학체험전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수학체험전을 개최해 왔다. 이로인해 학생들은 수학에 대한 흥미와 학습 동기를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해결력이 길러져 학력 향상의 결과를 가져 오기도 했다.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체험 및 토론·협력 수업을 실시하여 수행평가에 반영하였고, 그 활동들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기록하였다. 자칫 체험으로만 끝날 수 있는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형식의 ‘Math storybook’이라는 수학 노트를 직접 제작하였고, 그 활동은 아래와 같다.
멘토·멘티 활동으로 우정도 쌓고 실력도 쑥쑥~
수학 개념을 정확하게 익히는 방법 중 하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학생은 배우는 학생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라고 말하며, 멘토·멘티 학생에게 모두 점수를 부여한다. 가르친 학생에게 질문하고 배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평가하고 사인을 받기 때문에 더 세심하게 친구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면서 얻는 경험은 자신감이 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삶을 살게 한다. 실제로 멘토·멘티 활동과 체험전 부스 운영 활동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성공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고 활동 후 감상문에 밝혔다. 2015년 진영중학교의 신하림 학생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적향상을 가져온 사례와 그 기록물 수학 노트 두 권으로 2015 수학성공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전국 5명 안에 들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학생들이 질문한 문제를 풀어주면 대부분 학생들이 “이게 답이에요? 쉽네요. 저도 아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풀 수 없다는 생각과 문제가 이상하다거나 한번 풀어보고 안되면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틀린 원인 분석 및 대처방안을 적은 ‘극복하자 이 문제만큼은’이라는 오답 노트를 만들고 다음 세 가지 TIP을 준다.
수학 일기를 통한 수학클리닉과 실생활 문제해결
수학 일기는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고민을 알고 그에 맞는 수업이나 처방을 할 수 있어 수학클리닉의 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삶 속에서 수학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 방정식, 부등식, 함수식을 세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적어 발표하기도 해서 수학의 유용성을 느끼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수학 일기에서 알게 된 사실은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들은 좋은 성적보다 문제를 이해했을 때 만족감을 느꼈다는 것과 상위권인 학생들은 ‘선행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가 가장 많은 고민거리였다는 것이다. 신월중학교에서 함께 수학 활동을 3년간 열심히 했던 박민서 학생의 수학 일기 일부분을 소개한다.
학생들의 결을 살리는 인문·예술 융합 교육
체험수학은 기대 이상의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내어 학생들의 숨은 재능들을 찾는 역할을 한다. 주어진 도형만을 이용해 만든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품, 정다각형들의 대각선, 개성 가득한 도마뱀 테셀레이션 벽화, 수학식을 그려낸 그림, 한지와 자투리 종이를 이용한 페이퍼피스아트. 무엇보다도 매 학기 한 권의 수학 도서를 읽고 쓴 독서 감상문, 수학 만화, 수학 시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만났다. 작품들은 수학실이나 축제 때 전시하여 다른 학생들의 좋은 학습자료가 되기도 한다. 특히 뛰어난 수학 시 작품이 많은데, 활동할 때 먼저 학생들이 알고 있는 수학 용어를 칠판에 적어보게 한다. 자신이 생각한 시의 소재와 관련한 수학 용어의 뜻이나 개념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정말로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며 다른 친구들의 질문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문제 풀이가 어려워서 포기했던 수학 시간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부분과 접목한 인문·예술 융합 수업을 하니 학생들에게 하나씩 변화가 일어났다.
폐품을 활용한 수학 교구 제작을 통한
수학 원리 이해와 환경교육
값비싼 교구도 좋겠지만 폐품을 이용한 수학 교구 제작은 원리를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급식소의 폐플라스틱병으로 대형 파스칼 삼각형, 폐박스로 축구공과 대형 황금 비자를 만들었다. 또한 폐건축 자재 위에 피타고라스 나무를 그려 어두운 공간을 멋진 예술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쌓기나무와 아크릴판으로 이항분포기를 만들어 경우의 수, 확률, 빠른 길 찾기, 이항정리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아크릴판과 비비탄으로 피타고라스 정리 실험기, 폐스티로폼으로 피타고라스 정리 증명 퍼즐, 피자 모양으로 만든 원 넓이 확인판, 수업 시간 가지고 놀다 뺏긴 캐릭터 카드를 변형한 수준별 문제 카드, 청소 시간에 부르는 만화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든 ‘부등식의 성질’ 노래 등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학습자료들을 개발하였다. 올해 가장 많은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손꼽았던 활동은 1학년 주제 선택 시간에 학교 옆 폐철길을 걸으면서 자연 속에서 수학을 찾고, 쓰레기를 줍고, 5,000보 걷기로 건강을 챙기는 활동이었다. 목표를 달성한 학생에게 상품으로 준 종량제 봉투는 부모님들이 매우 좋아하셨다고 한다. 주민들의 칭찬을 받은 학생들을 어깨가 올라가고 다음에도 또 하고 싶다고 하니 학생들이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환경교육은 저절로 되었다.
꿈을 그리는 수학으로 진로 교육 실시
학생들이 함수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래프를 마음대로 그리지 못해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좌표평면 위에 점을 찍어 자신의 꿈을 그리고 지나는 점들의 좌표를 표시하도록 하였다.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을 소개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푸드 파이터가 되고 싶은 학생이 그린 햄버거 모양에 몇백 개의 점을 찍다 보면 좌표평면 위에 점의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모를 수가 없게 된다. 그 노력에 감동해서 친구들 앞에서 많은 칭찬을 했고, 이후 이 학생은 담임선생님께 수학이 오후 수업이라 조퇴를 못한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또 한 번 감동했다. 제빵사, 일러스트레이터, 야구선수, 음악가 등 다양한 진로를 좌표 평면 위에 그려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친구들도 꿈을 응원한다. 그래프를 그리는 데 더욱 효과적인 학습 방법 중 하나는 수학 소프트웨어 GrafEq 프로그램을 활용한 수업이다. 이 수업은 영재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나아가 운동부나 학습 부진 학생들에게도 관심과 흥미를 이끌었다. GrafEq 프로그램 활용 수업은 수학식으로 귀여운 캐릭터를 그리고, 금연과 같은 생활에 필요한 내용의 픽토그램을 그려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활동이 포함된다.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위해 필요한 방정식과 부등식을 스스로 공부한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부등식 범위, 다양한 함수와 방정식 등 배우지 않은 여러 그래프에도 궁금증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에 관심과 재미를 느끼는 수업이 된다. 때로는 프로그램 사용 방법과 그래프 그리는 방법을 알려 주면 교사도 잘 모르는 수식을 스스로 검색해서 그리고 있었다. 단순한 직선에서 시작해서 뛰어난 예술 작품을 그려낸다. 한 평면 위에 수십 개의 포물선으로 그린 어항 속 물고기 꼬리는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2018년에 의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그래프로 그려보고 꿈상자를 만들어 자신의 꿈을 발표했던 학생이 2022년 서울대를 합격하고도 중학교 친구들과 한 약속 때문에 다른 대학교 치의대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인성교육 실시 및 평생교육 실시
멘토·멘티 활동이나 협력이 필요한 여러 체험활동은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수학동아리 학생들은 비누 베이스로 도형 탐구 후 이를 이용해 천연비누를 만들고 라틴방진을 적용한 냄비 받침대를 만들어 마음을 전하는 손편지와 함께 학교 인근 복지관과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여 나눔을 실천하였다.
2년 전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던 복지관 한글반 어르신들을 수학체험전에 초청해서 수학 수업 및 여러 체험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대칭을 이용한 컵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딸에게 주겠다는 할머니도 계셨고, “이진법으로 만든 마법의 카드가 진짜로 신기하네!” 하시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이리 잘 가르쳐 주시는 선상님, 참 이뿌요. 참 내가 학교에 와서 그 애리번 수학을 다 배워 보네!” 하시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올해 7월에는 학교 주위 주민센터 할머니들 20명을 학교 수학 교실로 초청하여 3시간 넘게 수학을 가르쳤다. 남은 몇몇 학생들이 학원도 포기하고 도우미를 자청했다. 다른 체험보다 수학을 배우는 것이 치매 예방에 좋다고 어려운 것도 꼭 해보겠다고 하시고 매달 좀 불러달라고 아쉬워 하시면서 교실을 나섰다. 힘든 시절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70세, 80세가 훌쩍 넘은 할머니들에게는 뜻깊은 추억이 되는 마지막 학교 교실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 수업 후 환하게 웃는 사진 속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니 좋은 일을 한듯 뿌듯한 마음이 든다.
교과서 문제 풀이 과정을 단계별로 시각화하기, 단원 정리 마인드맵을 기본으로 수학 시, 수학 일기, 수학자에게 편지쓰기, 수학 도서 읽고 감상문 쓰기를 통해 수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식을 쌓았다. 자신이 만든 문제를 친구들과 함께 풀면서 멘토·멘티활동 상황을 기록하였고 체험활동 후 알게 된 내용을 수학노트에 정리하고 직접 만든 작품을 넣어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수학책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우정은 깊어졌고, 협동학습을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소중함을 알아간다면 수학시간이 조금은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정주
마산동중학교 교사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 수학교육을 전공하였고 논문으로 「효과적인 수학체험전 설계와 운영 방안에 관한 연구(2015)」가 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체험중심 수학교육 방법개선을 위한 직무연수를 실시하였으며 2014년부터 경남중등수학체험전을 처음 시작하여 3년간 개최하였고 효과적인 수학학습 방법 연구 및 영재교육, 체험수학관련 자료를 개발하였다. 2014년에는 수학교육상을 수상하고, 2024년에는 제13회 대한민국스승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에도 수학체험전 개최 및 지역과 함께하는 여러 활동을 진행하면서 수학문화 확산 및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