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부터 고구려 시대까지
타임머신 타고 떠나요~

강화도 여행 -고인돌 유적지 & 전등사

글. 이경희 취재작가 | 사진. 안지섭

강화도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역사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나 유적을 가장 풍성하게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간.
장병훈 씨가 생애 처음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강화도 여행에 나섰다.
딛는 발걸음마다 즐거움과 의미가 가득했던 길을 소개한다.

아이를 위한 가장 특별한 여행
의류 무역업에 종사하는 장병훈 씨와 아내 한미란 씨, 큰딸 하윤(초등학교 4학년), 작은딸 하진(10개월)이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달려 강화도에 도착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출발했으니 말 그대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달려온 셈이다. 오는 내내 무더운 날씨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범생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윤이와 온몸을 파닥거리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진이의 씩씩한 모습에 조금 마음을 놓는다.
“하윤이에게 교과서에서 글과 사진으로만 배우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가족여행이라는 게 교육적이면서 유익한 방향으로 계획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아무래도 놀러 가는 게 목적이다 보니 아이들보다 어른들 일정 위주로 움직이게 되고요. 그래서 오늘 여행은 하윤이를 위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온화하고 다정한 아빠, 유쾌하고 발랄한 엄마의 이야기에 하윤이가 수줍은 듯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짓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첫 번째 행선지로 출발했다. 오늘 하윤이네 가족의 첫 방문지는 강화 고인돌 유적지다. 강화도는 고인돌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으로 청동기 시대에 조성된 고인돌 중 약 120여 기가 이곳에 남아 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나 이미지로 가장 많이 접하는 고인돌 이미지가 바로 이곳 강화도 부근에 있는 고인돌의 모습이다. 고인돌 유적지는 초록색 잔디로 뒤덮인, 드넓은 평야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화역사박물관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휴관 중인 상태다. 그러나 탁 트인 야외에 나온 것만으로도 하윤이는 들뜬 모습이다. 겨울부터 봄을 지나 지금까지 나들이를 거의 하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한미란씨와 하진이 역시 표정이 밝다.

강화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만나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가족 모두가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강화 고인돌에 관해 설명하는 안내판을 볼 때마다 아빠 손을 꼭 잡은 하윤이가 발걸음을 멈춰 선다. 꼼꼼히 읽고 사진도 찍는다. “와- 저렇게 큰 돌은 어떻게 저렇게 올려 놓았을까?” “사람들이 다 같이 든 거 아니에요?” “방법이 있었겠지? 선사 시대 사람들이 고인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가서 알아보자.”
부녀가 걸어가며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흐뭇하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가니 마침내 강화지석묘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이 고인돌은 우리나라 거석기념물의 상징으로 탁자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형태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말 그대로 보물 같은 고인돌이다. 온 가족이 지석묘 앞에 서자 안 그래도 큰 고인돌이 더 거대해 보인다. 방문객들 모두가 고인돌을 한 바퀴 돌며 구석구석 살펴보는 와중에 엄마와 아빠가 하윤이를 부른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안내판에 고인돌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쓰여 있던 것. 굄돌을 먼저 땅에 묻고 운반로를 흙으로 다진 뒤 덮개돌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운반하는 모습, 마지막에 흙을 파내어 축조를 마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나와 있어 이해가 훨씬 쉽다.
“이런 방법으로 만들다니 아빠도 처음 알았네!”
아빠의 탄성에 하윤이도 덩달아 눈을 반짝인다.
고인돌을 본 뒤 청동기 시대에 원시인들이 살던 움집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짚으로 엮은 움집에 들어가자 아늑하면서 습한 느낌이 훅 끼친다. 이 움집을 제일 좋아한 건 하윤이다. “여기서 원시인이 어떻게 살았어요? 비는 피할 수 있었어요? 여기서 밥도 먹었어요?” 쉬지 않고 질문을 하는 하윤이를 보는 엄마, 아빠의 표정에는 먼 거리를 달려온 온 보람이 가득하다.

즐거움과 배움을 한 번에
두 번째 행선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 다. 전등사는 삼랑성(정족산성) 안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삼 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강화도의 성들 대부분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돌이 이용됐다는 것 이 특징이다. 삼랑성의 출입문에 위치한 매표소를 지나 전등사 까지 꽤 길게 올라가는 길에 하윤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우리는 교회 다니는데 절에 와도 돼?” 한미란 씨가 딸의 진지한 얼굴에 웃음을 터뜨린다. “종교를 떠나서 불교는 우리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종교야. 역사를 배울 때 불교와 불교문화가 정말 많이 나오거든. 우리 나라에는 불교 관련 유적지도 많으니 우리가 관심을 갖고 공 부해야 하지.” 한창 온라인 수업 중인 하윤이가 바로 어제 수업 시간에 전 등사를 사진으로 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엄마, 아빠의 눈이 커 진다. “오! 진짜 잘 됐네~”
초여름을 맞은 전등사는 사방이 짙은 녹음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된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절로, 다양한 유적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웅전의 외곽은 안타깝게도 공사 중이라 천막으로 싸여있다.
대웅전 처마를 받치고 있다는 벌거벗은 나부상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가족들이 못내 아쉬워 한다. 대신 대웅전 내부도 들여다보고 대웅전 서쪽 옆에 있는 목조건축물 약사전은 물론, 나라를 지키고 융성을 기원한 이들의 염원이 모인 곳곳을 하윤이가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채 탐방한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삼랑성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를 무찌른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양헌수 장군 승전비(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6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빠는 수백 년 된 고목들과 절 곳곳에 예쁘게 장식된 등을 보고 신난 하윤이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실제로 와보니까 우리 문화유산을 교과서나 사진으로만 보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 와보니 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아이와 대화도 더 나누게 되네요. 하윤이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조상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더 큰 감화를 받은 듯한 한미란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등사를 내려오는 길, 막내인 하진이는 엄마 품에서 곯아떨어졌지만 나머지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이다. 평소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크고 화려한 것을 욕심내지 않으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장병훈 씨 가족에게 오늘 함께한 시간이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윤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미처 몰랐어요. 전등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솔직히 말해보라고 했더니 정말 재미있다는 거예요. 하윤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게 저희 부부의 소망이었는데 오늘 여러모로 의미가 큰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만들기, 창작에 관심이 많은 하윤이가 선사 시대 사람들의 만들어낸 ‘움집’을 구경한 게 가장 재미있었다고 수줍게 이야기를 덧붙인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유적지가 임시 폐쇄돼 아쉬움은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즐거움과 배움을 얻어 간 장병훈 씨 가족. 오늘 하루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여정이 됐길 바라본다.

선사 시대부터 고구려 시대까지
타임머신 타고 떠나요~

강화도 여행 -고인돌 유적지 & 전등사

글. 이경희 취재작가 | 사진. 안지섭

강화도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 역사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나 유적을 가장 풍성하게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간.
장병훈 씨가 생애 처음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강화도 여행에 나섰다.
딛는 발걸음마다 즐거움과 의미가 가득했던 길을 소개한다.

아이를 위한 가장 특별한 여행
의류 무역업에 종사하는 장병훈 씨와 아내 한미란 씨, 큰딸 하윤(초등학교 4학년), 작은딸 하진(10개월)이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달려 강화도에 도착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출발했으니 말 그대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달려온 셈이다. 오는 내내 무더운 날씨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모범생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윤이와 온몸을 파닥거리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진이의 씩씩한 모습에 조금 마음을 놓는다.
“하윤이에게 교과서에서 글과 사진으로만 배우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가족여행이라는 게 교육적이면서 유익한 방향으로 계획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아무래도 놀러 가는 게 목적이다 보니 아이들보다 어른들 일정 위주로 움직이게 되고요. 그래서 오늘 여행은 하윤이를 위한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온화하고 다정한 아빠, 유쾌하고 발랄한 엄마의 이야기에 하윤이가 수줍은 듯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짓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첫 번째 행선지로 출발했다. 오늘 하윤이네 가족의 첫 방문지는 강화 고인돌 유적지다. 강화도는 고인돌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으로 청동기 시대에 조성된 고인돌 중 약 120여 기가 이곳에 남아 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나 이미지로 가장 많이 접하는 고인돌 이미지가 바로 이곳 강화도 부근에 있는 고인돌의 모습이다. 고인돌 유적지는 초록색 잔디로 뒤덮인, 드넓은 평야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화역사박물관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휴관 중인 상태다. 그러나 탁 트인 야외에 나온 것만으로도 하윤이는 들뜬 모습이다. 겨울부터 봄을 지나 지금까지 나들이를 거의 하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던 한미란씨와 하진이 역시 표정이 밝다.

강화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만나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가족 모두가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강화 고인돌에 관해 설명하는 안내판을 볼 때마다 아빠 손을 꼭 잡은 하윤이가 발걸음을 멈춰 선다. 꼼꼼히 읽고 사진도 찍는다. “와- 저렇게 큰 돌은 어떻게 저렇게 올려 놓았을까?” “사람들이 다 같이 든 거 아니에요?” “방법이 있었겠지? 선사 시대 사람들이 고인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가서 알아보자.”
부녀가 걸어가며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흐뭇하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가니 마침내 강화지석묘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이 고인돌은 우리나라 거석기념물의 상징으로 탁자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형태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말 그대로 보물 같은 고인돌이다. 온 가족이 지석묘 앞에 서자 안 그래도 큰 고인돌이 더 거대해 보인다. 방문객들 모두가 고인돌을 한 바퀴 돌며 구석구석 살펴보는 와중에 엄마와 아빠가 하윤이를 부른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안내판에 고인돌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쓰여 있던 것. 굄돌을 먼저 땅에 묻고 운반로를 흙으로 다진 뒤 덮개돌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운반하는 모습, 마지막에 흙을 파내어 축조를 마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나와 있어 이해가 훨씬 쉽다.
“이런 방법으로 만들다니 아빠도 처음 알았네!”
아빠의 탄성에 하윤이도 덩달아 눈을 반짝인다.
고인돌을 본 뒤 청동기 시대에 원시인들이 살던 움집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짚으로 엮은 움집에 들어가자 아늑하면서 습한 느낌이 훅 끼친다. 이 움집을 제일 좋아한 건 하윤이다. “여기서 원시인이 어떻게 살았어요? 비는 피할 수 있었어요? 여기서 밥도 먹었어요?” 쉬지 않고 질문을 하는 하윤이를 보는 엄마, 아빠의 표정에는 먼 거리를 달려온 온 보람이 가득하다.

즐거움과 배움을 한 번에
두 번째 행선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 다. 전등사는 삼랑성(정족산성) 안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삼 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강화도의 성들 대부분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돌이 이용됐다는 것 이 특징이다. 삼랑성의 출입문에 위치한 매표소를 지나 전등사 까지 꽤 길게 올라가는 길에 하윤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우리는 교회 다니는데 절에 와도 돼?” 한미란 씨가 딸의 진지한 얼굴에 웃음을 터뜨린다. “종교를 떠나서 불교는 우리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종교야. 역사를 배울 때 불교와 불교문화가 정말 많이 나오거든. 우리 나라에는 불교 관련 유적지도 많으니 우리가 관심을 갖고 공 부해야 하지.” 한창 온라인 수업 중인 하윤이가 바로 어제 수업 시간에 전 등사를 사진으로 봤다는 이야기를 하자 엄마, 아빠의 눈이 커 진다. “오! 진짜 잘 됐네~”
초여름을 맞은 전등사는 사방이 짙은 녹음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된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절로, 다양한 유적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웅전의 외곽은 안타깝게도 공사 중이라 천막으로 싸여있다.
대웅전 처마를 받치고 있다는 벌거벗은 나부상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가족들이 못내 아쉬워 한다. 대신 대웅전 내부도 들여다보고 대웅전 서쪽 옆에 있는 목조건축물 약사전은 물론, 나라를 지키고 융성을 기원한 이들의 염원이 모인 곳곳을 하윤이가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채 탐방한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삼랑성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를 무찌른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양헌수 장군 승전비(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6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빠는 수백 년 된 고목들과 절 곳곳에 예쁘게 장식된 등을 보고 신난 하윤이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실제로 와보니까 우리 문화유산을 교과서나 사진으로만 보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 와보니 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아이와 대화도 더 나누게 되네요. 하윤이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조상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더 큰 감화를 받은 듯한 한미란씨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등사를 내려오는 길, 막내인 하진이는 엄마 품에서 곯아떨어졌지만 나머지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이다. 평소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크고 화려한 것을 욕심내지 않으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장병훈 씨 가족에게 오늘 함께한 시간이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윤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미처 몰랐어요. 전등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솔직히 말해보라고 했더니 정말 재미있다는 거예요. 하윤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게 저희 부부의 소망이었는데 오늘 여러모로 의미가 큰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만들기, 창작에 관심이 많은 하윤이가 선사 시대 사람들의 만들어낸 ‘움집’을 구경한 게 가장 재미있었다고 수줍게 이야기를 덧붙인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유적지가 임시 폐쇄돼 아쉬움은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즐거움과 배움을 얻어 간 장병훈 씨 가족. 오늘 하루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여행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여정이 됐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