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교실: 학습부진학생
성장 과정에 대한 4년간의 연구를 정리하며1)

글. 김태은 KICE 연구위원

학습부진학생의 시선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
그 기간이 길어야 했던 이유

학습부진학생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가르쳤지만 돌아서면 ‘모르겠다.’라고 하는 이 학생들을 마주하는 교사들은 힘겨움을 호소한다. 학습부진의 원인은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이라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지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큰 노력을 들여 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지 않으니 ‘과연 성장은 할까?’ 에 대한 솔직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2017년에 시작되었다. 한두 번 봐서는 이들의 구체적인 성장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우니 해를 넘겨 가며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종단 연구를 계획하였다. 연구의 진행 여건상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4년간의 추적에 불과했지만 사실 처음엔 ‘초등학생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를 추적하겠다.’는 좀 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학습부진학생들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연구의 핵심 질문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이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웬만한 질문에는 단답형 대답 또는 ‘모르겠는데요.’라는 말로 일관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할까? 수업 시간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다루어지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것도 안 배우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무기력’을 학습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걱정과 두려움은 있었을까? 이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까? 지금의 경험을 몇 년 후에는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등등.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상세하게 기술해 나가는 질적 연구가 필요했다. 양적인 자료, 숫자의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고민을 거쳐 이 연구는 특정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고자 하는 실험연구가 아닌, 현상 그대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학생들의 성장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규정하였으며,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 분석을 위한 연구 모형을 설정하였다. 예비 조사를 거쳐 2017년 12월에 1차 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2020년까지 총 10회의 본조사가 이루어졌다. 매회 본 조사는 2~3일에 걸쳐 등교부터 하교까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학생들의 모든 일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연구진은 매 순간 학습부진학생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최대한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1) 이 글은 [김태은, 오상철, 박태준, 우연경, 권서경, 김영빈, 서덕희(2017).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7-6. / 김태은, 오상철, 우연경, 권서경(2018).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Ⅱ).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8-4. / 김태은, 박준홍, 이재진, 권서경, 고정화(2019).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Ⅲ).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9-7. / 김태은, 권서경, 박준홍, 이민희, 조윤동, 이광호(2020).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Ⅳ).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20-5.] 의 일부 내용을 요약·재구성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혀 둔다.

[그림 1] 본조사 수집 자료의 분석 과정 및 절차

44명의 학생 중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학습부진,
학습이 부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

학생 44명의 자료에 나타난 내용을 기반으로 학습부진의 원인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학습부진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이다. 본 연구에 참여한 44명의 학생에게서 나타난 학습부진의 원인 역시 학생별로 최대 4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었는데, 원인의 개수가 많을수록 학습부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4년간의 학생 성장 자료를 모두 모아 재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인지하고 반성하게 되었던 사항은 이 중 ‘어떠한 원인도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학생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경각심을 갖고자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새 학생 탓을 하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꾸준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느린 이해 속도: 인지적인 이해의 속도가 또래보다 느리거나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양이 부족함.
기초 학습량 부족: 이해의 속도에는 문제가 없으나 기초 학습(읽기, 쓰기, 셈하기)에 대한 연습량이 부족함.
이른 시기의 학습 실패 경험: 초등학교 입학 전 혹은 저학년 시절에 경험한 학습 실패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있음.
학습 전략 부족: 학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나, 학습에 필요한 주의 집중력이 부족함.
학습 동기 부족: 학습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가 없음.
학습된 무기력: 무엇이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며,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무기력한 상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음.
분노·불안: 심리적·물리적으로 불안정한 환경 등에 의해 분노와 불안이 내재되어 있음.
사회성 부족: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몰라서 대인 관계에서 지속적인 문제 행동을 나타냄.
가정 돌봄 부족: 가정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어렵거나 혹은 관심의 부족으로 자녀의 학습에 대한 지원이 부족함.

학습부진학생들이 성장하고자 할 때 보내는 신호,
신호를 읽어 내는 데 필요한 섬세함

같은 학생들을 4년간 만나는 동안 학생들이 했던 말들이 있다. 처음엔 일상적인 표현이라 생각해서 그냥 지나치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가 누적되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말의 이면에는 무엇을 담고 있을지를 분석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읽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에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 이들의 기억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학생들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표 1>은 학생들이 보낸 신호 몇 가지를 정리해 본 것이다.

<표 1> 학습부진학생이 성장하고자 할 때 보내는 신호

긍정적인 성장을 보였던 학생들,
이들에게 미쳤던 영향… 성장의 계기

4년간의 성장 과정을 분석한 결과, 학생들의 성장은 ‘꾸준히 성장’,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 ‘일시적 변화’, ‘변화 없음’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으며, 44명의 학생 중 27명에게는 긍정적인 성장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8명은 일시적인 변화에 그쳤으며, 9명은 성장의 계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장을 ‘인지, 정의, 심동적 영역 모두에 걸친 전인적 발달로서의 교육적 성장’의 관점으로 보았을 경우이며, 따라서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에서 어제와 달리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이 발견된 경우로 분석한 결과이다. 만일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 다른 관점, 즉 학습부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현재 자기 학년의 수업내용을 따라 갈 수 있는 학생)이라는 상대적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44명 중 과연 현재 학습부진이 아닌 학생은 몇 명일까? 4년간의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래서 학습부진학생들은 어떠한 계기로 성장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었다. 학년별로 도출된 성장의 계기들을 축약하여 제시하면 <표 2>와 같다. 특히 연구에 참여한 44명의 학생 중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학생들에게 나타난 계기들을 정리하니 다음의 5가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확인하였다.

❶ 학생에 관한 관심과 파악(빠른 진단)
❷ 오랜 시간의 꾸준한 연습(구조화된 프로그램)
❸ 지치지 않도록 주어진 보상(지속적인 동기 부여)
❹ 스스로 무엇인가 해냈다는 느낌(작은 성공 경험)
❺ 자녀의 성장에 대한 믿음과 학습 관리(가정에서의 협업)

학습부진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계기’와 ‘지속’이었으며 특히 무엇인가 지속된다는 것의 힘은 매우 컸다. 한줄 한줄 스토리가 있는 내용을 이렇게 축약하는 것은 아쉬워서 ‘우리가 몰랐던 교실: 44명의 아이들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별도의 도서2)를 꾸렸다.

2) 해당 도서는 무료 배포하고 있으며, 기초학력향상지원 사이트(꾸꾸사이트, www.basics.re.kr) > 교원공간 > 기초학력교육연수자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표 2> 성장의 계기가 되었던 환경

4년이 지난 지금 깨닫는 것들,
공교육이 절대 놓지 말아야 할 일들,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와
학생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2021년 1월, 연구에 참여한 한 학생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받았다. 중학교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좋은 얘기 많이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낸 지금은미래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지금부터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생활을 돌아보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낸 학생에게 고마운 한편, 과연 내가 감사 인사를 들을 만큼 해 준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생들이 4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자라는 듯 제자리인 듯, 성장하는 동안 과연 연구자도 성장하였을까.
– ‘우리가 몰랐던 교실’ 중에서 –

앞에서 했던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44명의 학생 중에서 4년이 지난 현재, 더 이상 학습부진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 학생(제 학년의 진도를 따라가는 학생)은 6명. 그렇다면 38명의 학생은 어떤 상황일까? 다시 관점을 달리해서 본 연구에서 상정한 성장의 개념(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어제와 달리 오늘 달라진 학생들)으로 보면 27명의 학생이 성장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부진학생들은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주기를 원하는가?’이다. 4년이 지난 후에야 성장의 신호를 보낸 이 학생의 이야기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칫 성장을 잘못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가 되어주었다.
학습이 부진하게 되는 태초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대부분이 소위 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귀속변인, 즉 가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쩌면 학습부진학생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학교의 노력은 98%의 귀속변인과 싸우는 2%의 공적변인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 같아 보였지만, 학습부진학생들의 성장을 4년간 추적하면서 2%의 공적변인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장면들이 있었다. 물론 2%밖에 안 되는 것 같은 공적변인이 때로 너무 미약하게 느껴져 좌절할 때는 이 아이들이 지금 보이는 눈앞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점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으며, 학생들에게는 너의 성장을 돕기 위해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자체로 주는 의미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2017년 해당 연구를 설계할 당시, 힘든 연구가 될 것이라는 주위의 걱정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연구였다.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 중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보다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탐색하는 동안 연구자도 성장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을 만큼, 힘겹고 파란만장한 과정이었지만 당장에 내 눈앞에 있는 학습부진학생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얻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연구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위로를 해본다.

김태은 KICE 연구위원

교육심리를 전공했으며, 학습부진, 교수학습 전략, 수업 혁신 연구 등을 수행하였다. 특히 기초학력 관련 연구와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국가의 기초학력 정책 발굴 및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교실: 학습부진학생
성장 과정에 대한 4년간의 연구를 정리하며1)

글. 김태은 KICE 연구위원

학습부진학생의 시선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
그 기간이 길어야 했던 이유

학습부진학생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가르쳤지만 돌아서면 ‘모르겠다.’라고 하는 이 학생들을 마주하는 교사들은 힘겨움을 호소한다. 학습부진의 원인은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이라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지도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큰 노력을 들여 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지 않으니 ‘과연 성장은 할까?’ 에 대한 솔직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2017년에 시작되었다. 한두 번 봐서는 이들의 구체적인 성장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우니 해를 넘겨 가며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종단 연구를 계획하였다. 연구의 진행 여건상 초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4년간의 추적에 불과했지만 사실 처음엔 ‘초등학생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를 추적하겠다.’는 좀 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학습부진학생들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연구의 핵심 질문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이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웬만한 질문에는 단답형 대답 또는 ‘모르겠는데요.’라는 말로 일관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할까? 수업 시간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다루어지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것도 안 배우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무기력’을 학습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걱정과 두려움은 있었을까? 이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까? 지금의 경험을 몇 년 후에는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등등.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상세하게 기술해 나가는 질적 연구가 필요했다. 양적인 자료, 숫자의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고민을 거쳐 이 연구는 특정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고자 하는 실험연구가 아닌, 현상 그대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학생들의 성장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규정하였으며,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 분석을 위한 연구 모형을 설정하였다. 예비 조사를 거쳐 2017년 12월에 1차 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2020년까지 총 10회의 본조사가 이루어졌다. 매회 본 조사는 2~3일에 걸쳐 등교부터 하교까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학생들의 모든 일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연구진은 매 순간 학습부진학생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최대한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1) 이 글은 [김태은, 오상철, 박태준, 우연경, 권서경, 김영빈, 서덕희(2017).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7-6. / 김태은, 오상철, 우연경, 권서경(2018).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Ⅱ).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8-4. / 김태은, 박준홍, 이재진, 권서경, 고정화(2019).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Ⅲ).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19-7. / 김태은, 권서경, 박준홍, 이민희, 조윤동, 이광호(2020).
초·중학교 학습부진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연구(Ⅳ).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I 2020-5.] 의 일부 내용을 요약·재구성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혀 둔다.

[그림 1] 본조사 수집 자료의 분석 과정 및 절차

44명의 학생 중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학습부진,
학습이 부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

학생 44명의 자료에 나타난 내용을 기반으로 학습부진의 원인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학습부진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이다. 본 연구에 참여한 44명의 학생에게서 나타난 학습부진의 원인 역시 학생별로 최대 4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었는데, 원인의 개수가 많을수록 학습부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4년간의 학생 성장 자료를 모두 모아 재분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인지하고 반성하게 되었던 사항은 이 중 ‘어떠한 원인도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학생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경각심을 갖고자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새 학생 탓을 하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꾸준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느린 이해 속도: 인지적인 이해의 속도가 또래보다 느리거나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양이 부족함.
기초 학습량 부족: 이해의 속도에는 문제가 없으나 기초 학습(읽기, 쓰기, 셈하기)에 대한 연습량이 부족함.
이른 시기의 학습 실패 경험: 초등학교 입학 전 혹은 저학년 시절에 경험한 학습 실패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있음.
학습 전략 부족: 학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나, 학습에 필요한 주의 집중력이 부족함.
학습 동기 부족: 학습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가 없음.
학습된 무기력: 무엇이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으며,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무기력한 상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음.
분노·불안: 심리적·물리적으로 불안정한 환경 등에 의해 분노와 불안이 내재되어 있음.
사회성 부족: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몰라서 대인 관계에서 지속적인 문제 행동을 나타냄.
가정 돌봄 부족: 가정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어렵거나 혹은 관심의 부족으로 자녀의 학습에 대한 지원이 부족함.

학습부진학생들이 성장하고자 할 때 보내는 신호,
신호를 읽어 내는 데 필요한 섬세함

같은 학생들을 4년간 만나는 동안 학생들이 했던 말들이 있다. 처음엔 일상적인 표현이라 생각해서 그냥 지나치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가 누적되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말의 이면에는 무엇을 담고 있을지를 분석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읽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에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 이들의 기억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학생들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표 1>은 학생들이 보낸 신호 몇 가지를 정리해 본 것이다.

<표 1> 학습부진학생이 성장하고자 할 때 보내는 신호

긍정적인 성장을 보였던 학생들,
이들에게 미쳤던 영향… 성장의 계기

4년간의 성장 과정을 분석한 결과, 학생들의 성장은 ‘꾸준히 성장’,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 ‘일시적 변화’, ‘변화 없음’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으며, 44명의 학생 중 27명에게는 긍정적인 성장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8명은 일시적인 변화에 그쳤으며, 9명은 성장의 계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장을 ‘인지, 정의, 심동적 영역 모두에 걸친 전인적 발달로서의 교육적 성장’의 관점으로 보았을 경우이며, 따라서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에서 어제와 달리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이 발견된 경우로 분석한 결과이다. 만일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 다른 관점, 즉 학습부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현재 자기 학년의 수업내용을 따라 갈 수 있는 학생)이라는 상대적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44명 중 과연 현재 학습부진이 아닌 학생은 몇 명일까? 4년간의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래서 학습부진학생들은 어떠한 계기로 성장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었다. 학년별로 도출된 성장의 계기들을 축약하여 제시하면 <표 2>와 같다. 특히 연구에 참여한 44명의 학생 중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학생들에게 나타난 계기들을 정리하니 다음의 5가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확인하였다.

❶ 학생에 관한 관심과 파악(빠른 진단)
❷ 오랜 시간의 꾸준한 연습(구조화된 프로그램)
❸ 지치지 않도록 주어진 보상(지속적인 동기 부여)
❹ 스스로 무엇인가 해냈다는 느낌(작은 성공 경험)
❺ 자녀의 성장에 대한 믿음과 학습 관리(가정에서의 협업)

학습부진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계기’와 ‘지속’이었으며 특히 무엇인가 지속된다는 것의 힘은 매우 컸다. 한줄 한줄 스토리가 있는 내용을 이렇게 축약하는 것은 아쉬워서 ‘우리가 몰랐던 교실: 44명의 아이들이 알려준 것들’이라는 별도의 도서2)를 꾸렸다.

2) 해당 도서는 무료 배포하고 있으며, 기초학력향상지원 사이트(꾸꾸사이트, www.basics.re.kr) > 교원공간 > 기초학력교육연수자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표 2> 성장의 계기가 되었던 환경

4년이 지난 지금 깨닫는 것들,
공교육이 절대 놓지 말아야 할 일들,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와
학생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2021년 1월, 연구에 참여한 한 학생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받았다. 중학교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좋은 얘기 많이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낸 지금은미래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지금부터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생활을 돌아보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낸 학생에게 고마운 한편, 과연 내가 감사 인사를 들을 만큼 해 준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학생들이 4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자라는 듯 제자리인 듯, 성장하는 동안 과연 연구자도 성장하였을까.
– ‘우리가 몰랐던 교실’ 중에서 –

앞에서 했던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44명의 학생 중에서 4년이 지난 현재, 더 이상 학습부진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 학생(제 학년의 진도를 따라가는 학생)은 6명. 그렇다면 38명의 학생은 어떤 상황일까? 다시 관점을 달리해서 본 연구에서 상정한 성장의 개념(비록 속도는 더디지만, 어제와 달리 오늘 달라진 학생들)으로 보면 27명의 학생이 성장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부진학생들은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주기를 원하는가?’이다. 4년이 지난 후에야 성장의 신호를 보낸 이 학생의 이야기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칫 성장을 잘못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경계가 되어주었다.
학습이 부진하게 되는 태초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대부분이 소위 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귀속변인, 즉 가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쩌면 학습부진학생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학교의 노력은 98%의 귀속변인과 싸우는 2%의 공적변인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 같아 보였지만, 학습부진학생들의 성장을 4년간 추적하면서 2%의 공적변인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장면들이 있었다. 물론 2%밖에 안 되는 것 같은 공적변인이 때로 너무 미약하게 느껴져 좌절할 때는 이 아이들이 지금 보이는 눈앞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점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으며, 학생들에게는 너의 성장을 돕기 위해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자체로 주는 의미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2017년 해당 연구를 설계할 당시, 힘든 연구가 될 것이라는 주위의 걱정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연구였다.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 중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보다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탐색하는 동안 연구자도 성장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을 만큼, 힘겹고 파란만장한 과정이었지만 당장에 내 눈앞에 있는 학습부진학생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얻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연구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는 위로를 해본다.

김태은 KICE 연구위원

교육심리를 전공했으며, 학습부진, 교수학습 전략, 수업 혁신 연구 등을 수행하였다. 특히 기초학력 관련 연구와 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국가의 기초학력 정책 발굴 및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