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사례에서 배우는
시민교육의 중요성

글. 곽한영 부산대학교 교수

1. 민주시민교육의 시대

지난 9월 11일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9.11 테러의 20주기였다. 9.11 테러는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지만, 특히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 하면서 막 씨앗을 틔우던 세계시민주의가 크게 퇴조하고 국가 단위의 자국우선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격화되어 중국은 이른바 분노청년 혹은 ‘소분홍’(小粉紅) 으로 불리우는 우익세력이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2021년 1월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습격하여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고 건강한 민주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민주시민 교육이 교육영역의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사건을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한편, 토론해볼 수 있는 교육 자료와 교수학습지도안이 교육 관련 민간단체들의 주도로 빠르게 이루어졌고, 이보다 2년 정도 앞서 벌어졌던 흑인차별과 관련된 심각한 인종갈등인 ‘Black Lives Matter!’ 시위와 소요사태 때에도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가 ‘Project 1619’라는 전국적인 교육프로그램의 보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면서 각 교육청 단위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설치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교육프로그램들이 개발 되고, 시행될 때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과연 이런 교육들이 얼마나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교육을 통해 ‘시민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가능한가, 시민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더 나아가 의식이 일부 변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의미한 ‘사회적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가 홍콩의 ‘Liberal Studies’라는 과목이다. 이 과목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홍콩 최초의 대규모 민주화시위로 불리우는 2014년 우산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더 나아가 2019년 범죄인 인도협약 문제를 둘러싼 대규모 시위사태에서도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시위를 불온한 것으로 보는 친중파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책임론’이라는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민주시민교육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별 교과가 학생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사회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시민교육의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Liberal Studies’ 를 중심으로 홍콩의 시민교육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사례가 우리 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생각해보려 한다.

2. 홍콩 시민 교육의 역사

홍콩은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 난징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영국령이 되었다. 이후 1898년 ‘신계’로 불리우는 넓은 지역을 99년 간 영국이 조차하기로 하면서 지금의 홍콩 영역이 확정되었는데 영국 식민정부는 홍콩 교육의 기본 방향을 시민교육과 거리가 먼 ‘탈정치화’로 잡고 있었다. 이는 역사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다. 영국 정부는 식민정부 초기인 18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대만의 국민당계와 중국 공산정권 사이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혼란과 폭동을 경험하면서 시민교육과 정치적 주제는 홍콩의 질서 유지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1970년대 들어 중국의 문화대혁명 여파가 홍콩에 까지 미쳐 혼란이 가중되자 탈정치화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1980년대초반까지 교육당국은 학교에서 정치적 내용과 토론을 장려하지 않고 정치적 참여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법 준수, 정부에 순응을 강조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런 방향성이 크게 바뀐 계기는 1984년 홍콩반환협정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이었다. 앞서 언급한 99년 조차기간이 1997년으로 만료가 다가오자 영국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영국 측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신계 지역의 조차를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악의 경우라도 신계지역만 반환하고 기존의 홍콩섬과 구룡반도 일대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대단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홍콩 전역의 반환을 요구했고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영국은 결국 홍콩 전체를 반환하는 협정을 맺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영국은 물론 홍콩인들도 미처 예상과 대비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민정부는 학생들이 중국의 현재 상황과 홍콩의 이슈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과목으로 Liberal Studies를 신설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가까웠고 그 이면에는 ‘명예로운 철수’를 계획하던 식민정부의 입장에서 홍콩과 중국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철수 전에 홍콩에 확실하게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어두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의와 토론을 중심으로 논술로 평가를 하는 과목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정작 이 과목의 도입을 대학과 학부모, 학생 모두 반대했다는 것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홍콩에서 새로운 과목이 입시 필수 과목으로 도입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논술평가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도 컸으며 교사들은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이라며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선택과목화 된 Liberal Studies는 10% 내외의 학교만 채택하고 전체 수험생의 6.5%만 응시하는 실패한 과목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기존의 영국식학제(ASL)가 중국식 표준(NSS)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Liberal Studies가 필수 과목으로 전환되며 크게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대학, 학부모 등 민간 차원의 의견이 상향식으로 교육정책에 반영되던 영국식 위원회 시스템이 중국식 관료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대학이 반대하던 정책을 홍콩 교육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시민교육’을 ‘중국인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파악했던 중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과목에 강한 추진력이 부여되었으며, 당시 홍콩 주변국인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학생 중심의 통섭적인 액티브 러닝이 새로운 트렌드로 도입되고 있었는데 이런 방향성에 Liberal Studies가 잘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도입이 추진되어 현장에 확산되던 Liberal Studies는 2009년 교육개혁을 계기로 입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홍콩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도입되었다.

3. Liberal Studies의 내용과 방식

Liberal Studies 이전에 홍콩의 교육제도에서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사회과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부터 Civics가 도입되었고 1965년에는 Economics and Public Affairs로 대체되었다. 또한 1972년부터는 중학교에 Social Studies가 도입되었고 1984년에는 이 과목이 고등학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는 고등학교에 Government and Public Affairs가 신규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목들은 입시 필수 과목도 아니었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84년까지 영국 식민정부는 탈정치교육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들을 수업에서 다루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신교육과정에서 Liberal Studies는 정치적 이슈를 분석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에 없이 정치적 접근을 보여주는 과목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NSS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Liberal Studies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통섭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학문 분류가 아닌 주제별, 지역별 토픽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습영역을 개인·사회·과학 기술 및 환경 영역으로 나누고 그 하위에 여섯 개의 모듈을 두어 넓은 주제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탐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둘째, 학습 모듈의 설정에 현실적인 사회적 이슈들이 대거 반영되었다. 여섯 개의 학습 모듈 중 ‘Hong Kong Today’와 ‘Modern China’에 이런 특성이 두드러졌는데 2003년 홍콩을 강타한 조류독감(SARS) 사태 이후 공중보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Public Health’라는 모듈이 추가된 것은 Liberal Studies가 얼마나 사회의 당면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목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사 중심적 커리큘럼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학습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모둠토론, 논쟁, 동료 평가 등이 기본적인 수업방식으로 제시되었고, 여기에 학생 각자 주제를 정해 프로젝트식으로 탐구과제를 수행하여 제출하는 Independent Enquiry Study(IES)가 추가되었다.
Liberal Studies는 대학입시의 평가에서도 과목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공통평가문항을 통한 논술형 평가 80%, 학교 자체적으로 프로젝트 결과물을 평가하는 IES 평가 20%를 합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험은 6개 모듈 가운데 지원자가 2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각 모듈에서 3개의 필수문항과 1개의 선택문항(4개 중 택1)을 에세이 형태로 2시간 30분 동안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하고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시민성을 함양하는 수업은 중국 정부가 기대했던 애국심, 정체성 강화 교육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깨달은 홍콩 정부는 2012년부터 ‘도덕과 민족교육(MNE)’이라는 과목을 도입하기로 한다. 하지만 노골적인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강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비판 내용을 담고 있는 MNE의 도입은 홍콩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왔고 이것을 ‘사회적 이슈’로 본 Liberal Studies 수업 과정에서 직접적인 토론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Liberal Studies가 보여주는
시민교육의 방향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통한 내용 전달이 아니라
학생 상호 간의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스스로 가치관을 세워가는 과정으로
달성해야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본인들과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수업 시간을 통해 동료들과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15 ~ 16세 정도의 중등학교 학생들이 Liberal Studies의 탐구수업(IES) 과제로 교외 활동에 나서면서 이것이 반대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18개월간의 시위, 행진, 파업 끝에 결국 2012년 MNE의 도입이 철회되자 홍콩 역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주도한 정치적 시위를 통해 정부 정책이 철회된 결과에 학생들은 열광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결국 2년 후 2014년 우산혁명, 그리고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시위들이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학민사조’에 의해주도되었다는 것에 주목한 정부 당국과 친중파 인사들은 Liberal Studies 과목과 그 과목을 가르친 사회교사들을 원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결국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시위가 잦아든 2020년 초, 홍콩 정부는 교과서 검열기준을 발표하면서 권력분립 내용을 삭제하고 시민불복종 내용 앞에 경고 문구를 삽입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같은 해 11월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2021년 교육과정 개편을 발표하면서 Liberal Studies의 변경사항을 예고했다. 수업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성적 평가 없이 pass/fail로 대체하며, IES 활동은 완전히 삭제하는 대신 중국 본토 견학을 추가했다. 또한 수업 내용의 측면에서 시사 토론은 배제하고 애국심 교육, 준법, 조국의 발전상을 강조하기로 했으며 과목명도 변경하기로 했다. 사실상 기존 Liberal Studies 과목의 폐지에 가까운 수준의 변경이다.

4. 우리나라 시민교육에의 시사점

홍콩의 사례는 제대로 이루어진 시민교육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Liberal Studies가 보여주는 시민교육의 방향은 기존의 학문 중심 교육과정을 학생들의 생활영역, 관심영역, 시의성 있는 이슈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이를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통한 내용 전달이 아니라 학생 상호 간의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스스로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달성해야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에 익숙해져있던 홍콩 학생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IES 활동은 시민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직접 교실 밖으로 나가 사회적 참여를 경험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환기시켜준다.
그러나 홍콩 시민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토론과 논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활동의 모호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과목을 필수화하여 현장에서 실제로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교육 당국의 정책적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도 알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수업에서 다룰 때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의 문제로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Liberal Studies의 좌초는 결국 이런 외부적 정치적 논란의 파고를 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곽한영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교육을 전공하고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법학에세이’, ‘귀찮아, 법없이 살면 안될까’ 등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또한 홍콩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시민교육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썼으며 홍콩 시민교육 교과서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현재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홍콩의 사례에서 배우는 시민교육의 중요성

글. 곽한영 부산대학교 교수

1. 민주시민교육의 시대

지난 9월 11일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9.11 테러의 20주기였다. 9.11 테러는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지만, 특히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 하면서 막 씨앗을 틔우던 세계시민주의가 크게 퇴조하고 국가 단위의 자국우선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격화되어 중국은 이른바 분노청년 혹은 ‘소분홍’(小粉紅) 으로 불리우는 우익세력이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2021년 1월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습격하여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고 건강한 민주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민주시민 교육이 교육영역의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 사건을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한편, 토론해볼 수 있는 교육 자료와 교수학습지도안이 교육 관련 민간단체들의 주도로 빠르게 이루어졌고, 이보다 2년 정도 앞서 벌어졌던 흑인차별과 관련된 심각한 인종갈등인 ‘Black Lives Matter!’ 시위와 소요사태 때에도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가 ‘Project 1619’라는 전국적인 교육프로그램의 보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면서 각 교육청 단위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설치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교육프로그램들이 개발 되고, 시행될 때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과연 이런 교육들이 얼마나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교육을 통해 ‘시민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가능한가, 시민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더 나아가 의식이 일부 변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의미한 ‘사회적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가 홍콩의 ‘Liberal Studies’라는 과목이다. 이 과목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홍콩 최초의 대규모 민주화시위로 불리우는 2014년 우산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더 나아가 2019년 범죄인 인도협약 문제를 둘러싼 대규모 시위사태에서도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시위를 불온한 것으로 보는 친중파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책임론’이라는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민주시민교육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별 교과가 학생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사회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시민교육의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Liberal Studies’ 를 중심으로 홍콩의 시민교육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사례가 우리 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생각해보려 한다.

2. 홍콩 시민 교육의 역사

홍콩은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 난징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영국령이 되었다. 이후 1898년 ‘신계’로 불리우는 넓은 지역을 99년 간 영국이 조차하기로 하면서 지금의 홍콩 영역이 확정되었는데 영국 식민정부는 홍콩 교육의 기본 방향을 시민교육과 거리가 먼 ‘탈정치화’로 잡고 있었다. 이는 역사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다. 영국 정부는 식민정부 초기인 184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대만의 국민당계와 중국 공산정권 사이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혼란과 폭동을 경험하면서 시민교육과 정치적 주제는 홍콩의 질서 유지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에 1970년대 들어 중국의 문화대혁명 여파가 홍콩에 까지 미쳐 혼란이 가중되자 탈정치화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1980년대초반까지 교육당국은 학교에서 정치적 내용과 토론을 장려하지 않고 정치적 참여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법 준수, 정부에 순응을 강조하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런 방향성이 크게 바뀐 계기는 1984년 홍콩반환협정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이었다. 앞서 언급한 99년 조차기간이 1997년으로 만료가 다가오자 영국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영국 측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신계 지역의 조차를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악의 경우라도 신계지역만 반환하고 기존의 홍콩섬과 구룡반도 일대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대단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홍콩 전역의 반환을 요구했고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영국은 결국 홍콩 전체를 반환하는 협정을 맺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영국은 물론 홍콩인들도 미처 예상과 대비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민정부는 학생들이 중국의 현재 상황과 홍콩의 이슈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과목으로 Liberal Studies를 신설한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가까웠고 그 이면에는 ‘명예로운 철수’를 계획하던 식민정부의 입장에서 홍콩과 중국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철수 전에 홍콩에 확실하게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어두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의와 토론을 중심으로 논술로 평가를 하는 과목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정작 이 과목의 도입을 대학과 학부모, 학생 모두 반대했다는 것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한 홍콩에서 새로운 과목이 입시 필수 과목으로 도입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논술평가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도 컸으며 교사들은 ‘가르칠 수 없는 과목’이라며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선택과목화 된 Liberal Studies는 10% 내외의 학교만 채택하고 전체 수험생의 6.5%만 응시하는 실패한 과목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기존의 영국식학제(ASL)가 중국식 표준(NSS)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Liberal Studies가 필수 과목으로 전환되며 크게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대학, 학부모 등 민간 차원의 의견이 상향식으로 교육정책에 반영되던 영국식 위원회 시스템이 중국식 관료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대학이 반대하던 정책을 홍콩 교육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시민교육’을 ‘중국인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파악했던 중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과목에 강한 추진력이 부여되었으며, 당시 홍콩 주변국인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학생 중심의 통섭적인 액티브 러닝이 새로운 트렌드로 도입되고 있었는데 이런 방향성에 Liberal Studies가 잘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도입이 추진되어 현장에 확산되던 Liberal Studies는 2009년 교육개혁을 계기로 입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홍콩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도입되었다.

3. Liberal Studies의 내용과 방식

Liberal Studies 이전에 홍콩의 교육제도에서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사회과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부터 Civics가 도입되었고 1965년에는 Economics and Public Affairs로 대체되었다. 또한 1972년부터는 중학교에 Social Studies가 도입되었고 1984년에는 이 과목이 고등학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는 고등학교에 Government and Public Affairs가 신규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목들은 입시 필수 과목도 아니었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84년까지 영국 식민정부는 탈정치교육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들을 수업에서 다루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신교육과정에서 Liberal Studies는 정치적 이슈를 분석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에 없이 정치적 접근을 보여주는 과목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NSS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Liberal Studies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통섭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학문 분류가 아닌 주제별, 지역별 토픽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습영역을 개인·사회·과학 기술 및 환경 영역으로 나누고 그 하위에 여섯 개의 모듈을 두어 넓은 주제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탐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둘째, 학습 모듈의 설정에 현실적인 사회적 이슈들이 대거 반영되었다. 여섯 개의 학습 모듈 중 ‘Hong Kong Today’와 ‘Modern China’에 이런 특성이 두드러졌는데 2003년 홍콩을 강타한 조류독감(SARS) 사태 이후 공중보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Public Health’라는 모듈이 추가된 것은 Liberal Studies가 얼마나 사회의 당면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목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사 중심적 커리큘럼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학습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모둠토론, 논쟁, 동료 평가 등이 기본적인 수업방식으로 제시되었고, 여기에 학생 각자 주제를 정해 프로젝트식으로 탐구과제를 수행하여 제출하는 Independent Enquiry Study(IES)가 추가되었다.
Liberal Studies는 대학입시의 평가에서도 과목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공통평가문항을 통한 논술형 평가 80%, 학교 자체적으로 프로젝트 결과물을 평가하는 IES 평가 20%를 합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험은 6개 모듈 가운데 지원자가 2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각 모듈에서 3개의 필수문항과 1개의 선택문항(4개 중 택1)을 에세이 형태로 2시간 30분 동안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하고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시민성을 함양하는 수업은 중국 정부가 기대했던 애국심, 정체성 강화 교육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깨달은 홍콩 정부는 2012년부터 ‘도덕과 민족교육(MNE)’이라는 과목을 도입하기로 한다. 하지만 노골적인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강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비판 내용을 담고 있는 MNE의 도입은 홍콩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왔고 이것을 ‘사회적 이슈’로 본 Liberal Studies 수업 과정에서 직접적인 토론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Liberal Studies가 보여주는
시민교육의 방향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통한 내용 전달이 아니라
학생 상호 간의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스스로 가치관을 세워가는 과정으로
달성해야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본인들과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수업 시간을 통해 동료들과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15 ~ 16세 정도의 중등학교 학생들이 Liberal Studies의 탐구수업(IES) 과제로 교외 활동에 나서면서 이것이 반대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18개월간의 시위, 행진, 파업 끝에 결국 2012년 MNE의 도입이 철회되자 홍콩 역사상 최초로 학생들이 주도한 정치적 시위를 통해 정부 정책이 철회된 결과에 학생들은 열광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결국 2년 후 2014년 우산혁명, 그리고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시위들이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학민사조’에 의해주도되었다는 것에 주목한 정부 당국과 친중파 인사들은 Liberal Studies 과목과 그 과목을 가르친 사회교사들을 원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결국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시위가 잦아든 2020년 초, 홍콩 정부는 교과서 검열기준을 발표하면서 권력분립 내용을 삭제하고 시민불복종 내용 앞에 경고 문구를 삽입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같은 해 11월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2021년 교육과정 개편을 발표하면서 Liberal Studies의 변경사항을 예고했다. 수업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성적 평가 없이 pass/fail로 대체하며, IES 활동은 완전히 삭제하는 대신 중국 본토 견학을 추가했다. 또한 수업 내용의 측면에서 시사 토론은 배제하고 애국심 교육, 준법, 조국의 발전상을 강조하기로 했으며 과목명도 변경하기로 했다. 사실상 기존 Liberal Studies 과목의 폐지에 가까운 수준의 변경이다.

4. 우리나라 시민교육에의 시사점

홍콩의 사례는 제대로 이루어진 시민교육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Liberal Studies가 보여주는 시민교육의 방향은 기존의 학문 중심 교육과정을 학생들의 생활영역, 관심영역, 시의성 있는 이슈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이를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을 통한 내용 전달이 아니라 학생 상호 간의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스스로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달성해야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에 익숙해져있던 홍콩 학생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IES 활동은 시민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직접 교실 밖으로 나가 사회적 참여를 경험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환기시켜준다.
그러나 홍콩 시민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토론과 논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활동의 모호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과목을 필수화하여 현장에서 실제로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교육 당국의 정책적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도 알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수업에서 다룰 때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의 문제로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Liberal Studies의 좌초는 결국 이런 외부적 정치적 논란의 파고를 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곽한영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교육을 전공하고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법학에세이’, ‘귀찮아, 법없이 살면 안될까’ 등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또한 홍콩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시민교육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썼으며 홍콩 시민교육 교과서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현재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