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함께한 가을 나들이
녹두장군 전봉준 유적지를 찾아서

3대가 함께한 가을 나들이 녹두장군 전봉준 유적지를 찾아서

유명한 전래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에 나오는 녹두꽃이 바로 전봉준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을 만나러 유적지인 전북 정읍으로 향했다.
단풍이 짙게 물드는 가을날, 할머니·엄마·아들 3대가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을 만나러 갔다.

글. 정혜영 | 사진. 김범기

코로나19로 가족여행이 어려웠던 김지은 씨는 모처럼 마음을 먹고 시어머니 (김순희 씨), 아들(모도환 군)과 함께 고즈넉한 가을 역사 여행을 떠났다.
엄마 김지은 씨는 “기차 여행도 즐기고,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3대가 함께 하여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호사로 일하는 김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시어머니가 다른 집에 거주하면서 자녀 양육을 도와주셨는데,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고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올해부터 함께 살게 됐다. 이에 이번 여행을 통해 시어머니에 대한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아이에게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게 됐다.
김순희 할머니도 “그동안 많은 여행지를 다녔지만 공부할 수 있는 여행은 처음” 이라며 “가을하면 떠오르는 단풍 구경도 좋지만 흔하지 않은 장소라서 더욱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3대가 떠나는 여행은 전봉준 유적지가 있는 정읍역을 향해 KTX가 떠나며 시작됐다.

실감나는 전시로 가득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동학농민운동의 주역인 전봉준 선생의 유적지를 찾기 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미리 알아보기 위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하 기념관)을 먼저 찾았다. 기념관은 어린이 전시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이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도환 군은 “엄마! 여기서 사진 한 컷 찍고 싶다.”며 얼굴을 쭉 내민다. 어린이 전시실 입구에 전시된 전봉준 선생의 모형 옆에 얼굴을 넣어 사진을 찍으며 관람이 시작됐다.
기념관에는 1894년 1년 간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규모 민중항쟁이었으며, 누구를 중심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승리했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전봉준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을 영도한 민족의 선각자이자 불요불굴의 의지력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도환 군은 전시되어 있는 총도 만져보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던 인물사진 사이에 함께 서보는 등 마치 1894년으로 돌아간 듯 재연해 보았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어린이 전시실

전봉준 유적지

전봉준 유적지

전봉준 선생 고택 우물

동학농민혁명시절에 살던 정읍 전봉준 유적지
기념관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동학농민혁명의 주축으로 녹두장군이라 불렸던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유적(사적 제293호)지가 나온다. 사실 이곳은 태어난 생가는 아니다. 생가는 고창에 있으며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을 전후로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전봉준 선생은 농사일과 동네 훈장 등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전봉준 선생의 유적지는 1878년(고종 15년)에 지어졌는데,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관군이 불을 질렀으나 전소되지 않고 1974년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몰락한 양반집 가난한 아들로 태어난 전봉준 선생은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워 농사일도 하고 때때로 훈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남향의 초가삼간집으로 동쪽에서부터 부엌, 큰방, 윗방, 끝방이 나란히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도환 군과 엄마, 할머니는 작은 방과 부엌, 화장실을 둘러본다.
도환 군은 전봉준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는 책상에 앉아 보며 “엄마 나 어때?”하며 “나 전봉준 선생님 같이 공부하는 것 같아?”라며 그 당시처럼 재연해 본다. 초가집 처마 밑에 3대가 나란히 앉아 가을 햇볕을 즐기며 잠시 나마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을 함께 느껴본다.
전봉준 선생 유적지 옆에는 유명한 우물이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이 곳 역시 조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터로 전봉준 선생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이 우물 물을 마셨다고 한다. 엄마와 할머니, 도환 군은 우물 뚜껑을 열고 고개가 빠질 듯 살펴봤다.

동학농민혁명의 열기 가득한 장소로
동학농민혁명의 열기를 더욱 느끼기 위해 정읍 동학농민혁명 샘솟길 중 ‘전봉준장군단소’와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봉준장군단소’는 전봉준 선생의 유적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전봉준 제단과 시신이 없는 허묘가 있다. 이에 1954년 천안 전씨 문중에서 제단과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94년부터는 연차적으로 정비하여 유해가 없는 허묘를 조성하고, ‘전봉준장군운명시비’도 세웠다.
묘소 옆에 전봉준 선생을 그려 놓은 석판화가 있었다. 할머니, 엄마, 도환 군은 마치 전봉준 선생과 함께 있는 듯 가족사진을 찍듯이 함께 사진을 찍어 본다.
샘솟길 중 하나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는 곳에는 농민의 마음을 알리듯 여러 개의 깃발이 가을바람에 나부낀다. 깃발 아래 뭉친 농민들은 그 꿈을 결국 이루진 못했지만 그 정신은 후세들이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힘차게 펄럭이는 듯 했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이는 농민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청명한 하늘을 보며 새겨본다.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하 기념탑)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최초의 탑으로 1963년 10월 3일에 건립 됐다. 탑 높이 7.5m 탑신 6.3m 기단 1.2m 둘레 4.64m 규모로 웅장하다. “기념탑이 너무 높아서 보기 힘들다.”는 투정 섞인 말을 하면서도 도환 군은 기념탑에 새겨진 글자를 할머니와 함께 읽으며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또 한 번 공부했다. 기념탑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가을날의 전봉준 유적지인 전북 정읍 여행을 마무리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으로 도환이와 많이 이야기 하고, 많이 걷고 웃은 하루 인 것 같아요. 아직은 생소한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선생에 대해 도환이가 이렇게 관심을 갖고 재미있어 할 줄 몰랐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고 전했다.
도환 군은 “누나가 이번 여행에 참여하지 않은 건 후회 하게 될 것”이라며 장난 끼 있는 얼굴로 이번 여행에 대해 만족을 표현했다. 할머니도 “의미 있고 특별한 곳에서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봉준장군단소

갑오동학혁명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