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아니라 ‘우리 말’이라고 생각할 때까지

월곡초등학교의
다문화 가정을 위한 노력

글·윤정 월곡초등학교 교사

국제결혼 증가와 외국인 근로자 정착으로 학령기 다문화 가정 자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은 기본적으로 한국어가 서툰 부모님이 양육하기 때문에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광주 월곡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학습 격차 완화 및 학력 신장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성과를 낸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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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초등학교, 전체 학생의 20%가 다문화 가정

광주 월곡초등학교 주변에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이 모여 사는 공동체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2000년대 초반 하남산업단지와 평동산업단지에 고려인 근로자가 정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4,000명이 족히 넘을 만큼 많은 고려인이 공동체를 이루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고려인들이 유입되면서 인구 증가세가 가파르다. 광주 월곡초등학교의 외국인 학생 수도 이러한 영향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는 증가 추세가 더욱 빨라져 현재 월곡초등학교의 다문화 가정 비율이 전체 학생의 20퍼센트 정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겪는 어려움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

외국인 가정 학생이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겪는 어려움은 의사소통이다. 아이들은 생김새도 다른데 말마저 안 통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언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모든 학교가 그렇듯 월곡초등학교에서도 외국인 학생이 입·취학하면 언어 교육부터 시작한다. 외국인 학생은 매일 두 시간씩 네 학기 동안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도 한국어로 진행하는 교과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어휘력 부족, 학습 도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학습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언어소통 어려움으로 인한 문제가 비단 수업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에도 언어 장벽은 큰 장애 요소다. 부모들의 무관심도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부모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다. 이는 부모들이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외국인 가정 학생들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월곡초등학교는 외국인 가정 학생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들이 학교생활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쳤다.

외국인 학부모들을 위한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만들었어요.

월곡초등학교는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에서 발송하는 안내장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보내고 있지만, 학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안내장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외국인 학부모가 참여하는 온라인 소통방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어다. 러시아어로 교육 활동과 공지 사항을 실시간으로 안내하고, 궁금한 점은 바로바로 모국어로 물어보도록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외국인 학부모 대상 입학식과 학교 교육 과정 설명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출결 사항, 개별 체험 학습, 연간 학사 일정, 학교폭력 및 아동 학대 예방 교육 등 한국인 학부모라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내용까지 자세히 안내했다.
학부모들은 자신이 다녔던 학교와 시스템이 달라서인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 역시 질의응답 시간을 활용해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학부모들의 의문점을 해소시켰다. 직장 근무 시간과 겹쳐서 참석하지 못한 학부모들을 위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전달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카드뉴스 형태로 안내문을 제작해 온라인 소통방에 게시함으로써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더라도 내용 이해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담임 교사와 학부모가 오프라인 면담을 진행할 때 반드시 학년별로 이중 언어 담당 강사를 동석하도록 해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4월과 9월에는 외국인 학생 학부모 상담주간을 따로 마련해 학생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방법을 학부모와 의논했다. 학부모 상담은 교사와 학부모가 직접 만나는 대면상담이 원칙이지만, 부득이하게 시간을 낼 수 없는 학부모와는 전화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월곡초등학교의 노력으로 학교와 학부모 간에 신뢰가 쌓이면서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는 학교를 신뢰하며 함께 해결 방법을 찾게 되었다.
2학기에는 ‘가족 소통의 날’을 만들어 학부모회 가정과 외국인 가정이 함께 모여 가죽공예 체험을 진행했다. 외국인 학부모는 모든 활동을 마치고 난 후 “이런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학교에 감사드리며,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한국어가 서툰데 다음에는 러시아어가 아닌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워오겠다.”, “한국에 오기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보니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행사를 준비한 학교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월곡초등학교는 올해 학교 축제에 ‘다문화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데, 가죽공예에 참여한 외국인 학부모들이 도우미 역할을 해줄 예정이다. 외국인 학부모들은 이외에도 앞으로 학교 활동에 학부모로서 참여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한국어 실력이 쑥쑥 성장하고 있어요.

언어에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 양식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상황과 맥락이 파악되는 환경 속에서 언어를 접할 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성장기 어린이들의 경우 발달 특성상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경험할 때 언어 습득이 훨씬 빠르다. 월곡초등학교는 이러한 언어 특성을 고려해 한국어 교육과정 속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체험활동을 포함시켰다.
우리 고장에 있는 벽진서원을 방문해 유복 입기, 공수법, 다식 만들기와 다도 예절 등 한국 전통 예의범절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고, 광주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살펴보기, 옷감 짜기, 불 피우기, 도자기 빚어보기 등 다양한 역사 체험활동을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내 손으로 직접 송편을 빚은 후 쪄서 친구들과 나눠 먹고, 팀을 나누어 윷놀이를 진행했다.
우리 마을 탐방 시간에는 월곡시장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1학년 학생들은 오고 가는 길에 상점 간판 읽기로 그동안 배웠던 한국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생들은 월곡시장에서 다양한 시장 물건을 구경하면서, “선생님, 이건 뭐예요?”, “여기 한복 있어요. 우리 집에도 있어요”, “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등 쉴 새 없이 한국어로 재잘거리기도 했다. 3~6학년 학생들은 ‘전통 시장으로 떠 나는 경제교육’이란 주제에 따라 시장에서 직접 장보기 활동을 하며 한국 화폐 단위, 지역 상품권 사용법 등을 배웠다.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쌓인 경험은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특히 평소 말하기를 주저하는 소극적인 학생들도 체험활동을 할 때는 용기를 내서 한국어로 한마디라도 더 말하려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외국인 친구 중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친구도 많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감을 느끼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친구들도 있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Weeclass 내 상담교사와 상담을 진행하거나 학교 내 대안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정서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요.

러시아 언어권 학생이 한 학급에 3~4명이 되는 반도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학급 내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통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월곡초등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한국인 친구와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서로 다른 언어권 친구가 2인 1조로 팀을 꾸려 참가하는 ‘국경 없는 어린이 베이킹 교실’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다.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공통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가 조금 서툴더라도 서로 도와가며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에 외국인 친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접해볼수 있다는 점에서 월곡초등학교만의 장점이다. 월곡초등학교는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생자치 활동 토론 주제로 ‘다양한 국적이 공존하는 우리 학교에서 친구들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를 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 결과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다문화 친구들 모국어 배우기였다. 월곡초등학교에서는 학생자치회 의견을 반영해 다문화 친구들의 모국어인 ‘친구 말 배우기’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러시아어로 어떻게 말해요?’에서는 러시아어 안내용 L자 파일도 만들었다. 이 외에 러시아어, 우즈벡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권 친구들의 ‘친구 말 배우기’ 영상을 제작해 월곡초등학교 모든 학생과 공유했다.
‘친구 말 배우기’는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 모두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외국인 학생에게는 두 가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 힘들었지만,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는 시간이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친구들에게는 낯선 다른 나라 말을 배워봄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에 적극적인 외국인 친구들은 학생회 선거에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특별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 참여했다. 이후 월곡초등학교에서는 학생 자치활동 행사를 추진할 때 다문화 친구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생각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을 위해 이중언어로 제작한 학교 규칙과 관련 홍보물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길을 걸어가요.

외국인 학생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를 익혀도 교실에서 한국어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학습 도구 한국어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당 10시간의 한국어 학급 수업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외국인 학생 수가 많은 경우 그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월곡초등학교는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월곡동에는 마을 교육 공동체인 ‘한울타리’와 ‘광산다누리’ 마을 학교가 있다. 마을 학교에서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기타, 댄스, 노래 교실 수업도 있고, 토요일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KT에서는 다문화 학생 대상 ‘랜선 한글 교실’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학습자 맞춤형 한국어 수업과 한국사 및 진로 체험 학습을 진행하고 있으며, 월곡초등학교 재학생 중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월곡1동 주민센터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이 지금 사는 우리 마을에 관심 가지는 것과 함께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제1회 슬기로운 마을생활’ 퀴즈대회를 열었고, 총 60여 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월곡초등학교는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외국인 학생들이 우리나라 공교육에 적응하고, 기초 학력 신장을 이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월곡초등학교는 외국인 학생 역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라고 믿고 있다. 그들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갈 것이다.

윤정
월곡초등학교 교사

광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광주 월곡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2015년부터 광주지속가능발전교육 교원 연구회 회장 및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다양한 ESD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 학교를 연계한 다양한 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교육, 어떻게 할까?>, 광주광역시교육청 ESD·환경교육 인정도서 <지속가능한 지구, 빛고을 생활>을 공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