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영정을 모신 길상사

김유신과 함께 한 모녀의 역사적인 하루

아홉 살 시호는 책 중에서도 위인전을 즐겨 읽는다. 엄마의 전략적인 추천도 한 몫 했지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감동적이라 생각해서다. 김유신 장군에 대한 물음에 시호는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운 대단한 사람이죠.”라고 답했다. 엄마는 이에 “그 대단한 사람을 만나러 가볼까?”라며 여행을 권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의기투합한 모녀는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그리고 영정을 모신 길상사로 향했다.

1) 노래에서는 김유신 장군을 언급하며 ‘말 목 자른 김유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풍류에 빠진 화랑시절 김유신이 자신을 술집으로 안내한 말의 목을 잘라, 어머니와의 약속과 결의를 지켰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를 찾아서

교과서와 위인전을 통해서만 배웠던 김유신 장군을 직접 만나러 가는 길, 차 안에는 딸(박시호, 초등학교 2학년)과 엄마(구소영)의 노랫소리가 가득했다. “아름다운이 땅의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국민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1)을 부르니 모처럼 나선 여행길이 더욱 신이 났고 화창한 날씨는 흥을 더했다.
모녀의 목적지는 충청북도 진천군이다.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로 알려진 진천군에는 그의 탄생지와 탯줄을 묻어둔 태실이 있다. 이곳은 각각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에 이르러 국가에서 이둘을 한데 묶어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김유신 탄생지에는 생가를 복원한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한 풍경이 약간은 삭막할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김유신 장군은 우리나라가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뉘어 있던 시대에 태어난 신라 사람이야. 세 나라가 서로 싸우는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셨고 나중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시지.” 엄마가 설명해 주었다. “저도 책에서 봤어요. 그런데 엄마, 위인도 어려서는 말썽을 많이 부렸대요.” 엉뚱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엄마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분명 어린 김유신도 이곳저곳 뛰어 다니다가 장독대 한두 번은 깨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공터처럼 보이는 휑한 곳 한편에서 안내판을 만났다. ‘담안밭’이라고 써놓은 이곳은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는 큰 담을 쳤다고 해서 담안밭이라고 불렀는데 현재는 그 흔적이 희미하고 터만 남은 상태이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모녀는 탄생지 일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살랑이는 바람과 풀 내음 가득한 공기, 가을 햇살에 젖어 들 때, “여기 엄마랑 나랑 둘만 있는 기분이에요. 엄마도 좋지?”라고 시호가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신 탄생지 뒷산인 태령산 정상에는 장군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이있다. 태실은 삼국사기 및 역대 지리지에 김유신의 태(탯줄)를 묻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태실 중 가장 오래된 태실 축조 형식으로 알려져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엄마는 딸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 확인하고 싶었지만, 딸의 체력을 잘 알기에 다음으로 미루고 태실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했다.
태실은 김유신 장군의 탯줄을 묻은 곳이라고 하자, 시호가 물었다. “왜 탯줄을 땅에 묻어요?” 그러자 엄마가 “명당에 탯줄을 묻으면 그주인이 땅의 좋은 기운을 받는대.”라고 말했다. 시호가 해맑게 웃으며 “내 탯줄도 묻을까요? 집에 있는 거, 그거 액자에 넣어 둔 거”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딸은 더 큰 꿈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 장소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동기부여일지도 모르겠다. 시호는 김유신 장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했다. 엄마는 그가 신라의 장군으로, 어려서는 화랑으로 사후에는 흥무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존경받은 인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진평왕부터 문무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리고 사후에는 ‘흥무대왕’으로 불려 왕이 아니면서도 대왕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 장소라서 다른 걸까? 엄마는 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마냥 어린아이로만 봤던 딸이 이제는 말동무가 되어간다. 깊어진 가을 정취만큼이나 모녀의 추억도 깊어 갔다. 그 후 탄생지를 떠나 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로 발길을 옮겼다.

길상사에서 만난 김유신 장군

‘길상사’는 사찰이 아니라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진천 도당산에 위치한 이곳은 가을에는 단풍, 봄에는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엄마와 딸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는 길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은행잎을 밟았다.
길상사는 하늘로 높게 뻗은 은행나무길이 입구에서부터 펼쳐져 있다. 그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 보면, 중문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다. 중앙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옆길로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신도(神道)’라 적혀있다. “신도가 뭐예요?” 시호가 물었다. 엄마가 “귀신들이 다니는 길이래.”라고 하자 놀란 시호가 옆길로 빠져나왔다. 하마터면 귀신하고 같이 걸을 뻔했다는 딸의 말에 엄마는 한바탕 웃음이 났다.
다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중문을 지나니, 곧 김유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흥무전’이 나왔다. 그 안에서 김유신 장군이 그려진 영정2)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벽면을 차지할 만큼 큰 영정을 보니 그 위엄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엄마와 딸은 영정을 바라보며 경의를 표하고 김유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호는 김유신 장군이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와 흥무대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엄마는 김유신 장군이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고,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기억되었으며, 이러한 그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길상사’는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말해줬다. 시호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역사 여행은 모녀에게 특별한 추억이 됐다. 앞으로 딸은 역사 교과서에서 김유신을 만날 때마다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김유신 장군의 영정 앞에서 나누던 이 대화들이 모녀의 역사가 됐다.

2) 길상사 김유신 영정은 故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김해 김씨 남성 50여 명의 얼굴을 기준 삼아 그렸다고 전해진다.

역사 속 인물과 함께한 모녀의 여행

오늘 엄마와 딸은 진천지역 김유신 장군 유적지를 방문해, 그곳에서 위인의 삶과 업적에 대해 듣고 보고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딸은 김유신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며 엄마에게 질문을 했고 엄마는 딸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문득 역사는 ‘질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인물들은 그들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가치를 추구했을까? 그들은 어떤 고난을 극복했고,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현재의 우리들은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엄마와 딸은 평소에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 근처 선사유적지를 평소 자주 찾았으며, 올림픽공원 한성백제박물관은 모녀가 즐겨 찾는 체험 학습터이기도 하다.
엄마는 여행 내내 “엄마,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딸을 보며, 조금더 부지런한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함과 동시에 시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역사 놀이터에서 함께!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운영시간: 연중무휴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입장료: 무료

길상사

운영시간: 4~10월: 09시~18시, 11~3월: 09시~17시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입장료: 무료

교과서에서 찾아보기
· 초등학교 사회 5-2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
· 중학교 역사 <남북국 시대의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