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Quop

글·원진하

최근 독일 교육계는 연일 “교육 위기”를 외치고 있다. 수년 간 국제적인 학업성취도 비교연구에서 독일의 기초학력 수준이 계속해서 저조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초등독해력조사(IGLU)에서 약 25%의 학생들의 읽기 역량이 학습에 필요한 기초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연방 주들은 계속해서 드러나는 기초학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다방면의 교육 지원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학습자에게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제공하려면 현재 학습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독일의 주 교육부장관 협의회(Kultusministerkonferenz) 및 교육 분야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진단을 기반으로 한 교육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독일에서도 디지털 학습 진단 도구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이미 검증된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다수 있었지만 그동안은 독일 전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Quop이라는 학습 과정 진단 프로그램이 읽기 영역의 학업 성취도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연구가 발표되면서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의 효과성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 “Quop”

Quop은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한 웹 기반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수학, 영어, 읽기 영역의 학습상태를 점검하고 그 추이를 분석하여 학습 진행 과정을 진단한다. 약 8분에서 15분 소요되는 시험을 3주에 한 번 태블릿이나 PC를 사용하여 진행하며, 평가는 절대 평가로 이루어진다. 매 시험이 종료된 직후 각 학생의 성취도 데이터가 교사에게 전송되며 성취도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자동으로 분석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읽기 영역을 예로 들면 어휘력, 문장 이해 및 텍스트 이해 등 세부 영역별 성취도가 개별적으로 표기되고 평가 시기에 따른 각 영역의 성취도 추이가 그래프로 나타난다.<그림1> 참고
각 학생의 개별적인 학습 과정 뿐만 아니라 한 학급 전체의 성취도 추이 및 학습 과정 역시 파악할 수 있다. 기존에 나와있던 독일의 성취도 진단 도구와의 차이점은 학업 성취의 과정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한 학년에 걸쳐 총 10회 시행된다는 것, 정확한 추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10회 동안 동일한 난이도의 문항이 출제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수업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 PC와 태블릿을 이용한 학습 진단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새로운 흥미와 자극이 되고, Quop에서 출제되는 시험 문항 역시 알기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림1>

“Quop” 도입의 효과

독일 국제 교육 연구소(DIPF)는 헤센과 니더작센 주의 77개 초등학교 66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 영역에 한하여 1년간 데이터를 수집해 학업 성취도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Quop을 사용하지 않은 비교군의 학생들에 비하여 Quop을 사용한 학급 학생들의 성취도가 더 높았고, 특히 읽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던 학생들의 성취도가 학년 초에 비해 크게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읽기 능력이 평균 이상인 학생들의 성취도는 Quop의 사용 여부와 관련이 없었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교사 중 88%는 개별적인 학습 과정을 나타내는 도표가 매우 유용하다고 답했고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사의 “Quop” 프로그램 활용 이점

Quop은 독일 교사들의 또 다른 교편이 되어줄 수 있다. 2023년 발표된 독일 초등학교의 평균 학급 규모는 약 18명에서 23명으로, 한명의 교사가 모든 학생들의 개별적인 학습 과정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학습 진단 소프트웨어의 활용으로 모든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수치화, 도표화하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개별적, 전체적 학업 성취의 과정이 데이터로 저장되고 자동으로 분석되면서 교사들에게는 수업 구상과 추가적인 교육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 근거가 되는 정보를 손에 쥘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학습 진단 및 평가의 과정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학생들의 학습 추이까지 정확한 수치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화된 개별적 교육 지원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 부모와의 상담에 활용하기에 적합한 데이터가 될 수 있고1), 향후 담임 교사가 학생들의 중등 교육 과정 진학을 추천할 때 객관적인 판단의 근거가 된다. 또한 이전 교육과정에서의 데이터가 다음 교육과정으로 이월되면 다음 담당 교사가 학생들의 취약점을 미리 파악하기에도 용이해진다.

1) 독일에서는 4년의 초등 교육 과정 이후 인문계·실업계 학교로 나뉘어진 중등 교육과정으로 진학하게 된다. 이 때 4년 간 같은 학급을 담당하는 담임 교사가 해당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학부모의 의견을 바탕으로 진학할 중학교 계열을 결정하여 추천한다.

Quop 프로그램 도입의 전제조건과 한계

온라인 학습 과정 진단 도구로서 Quop은 다수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효과성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려면 무엇보다 그것을 활용하는 교사가 진단 도구의 특성과 사용법을 잘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총 10회의 진단 과정에서 매회 동일한 시험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학습자가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에 시험을 시행해야 한다. 예컨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앞두고 진행되는 시험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릴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교사들이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를 교육적 의사결정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위 연구에 참여한 독일 교사들은 학습 과정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특히나 프로그램 사용초기에는 학습자들이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 조작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 시험 결과가 충분히 유의미한지 판단하기 어렵고, 매 시험 환경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인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과의 대화와 관찰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방식의 아날로그형 진단과 평가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Quop은 학습 과정에 대한 평가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현재 한국이 도입 준비 중인 AI디지털교과서는 문제은행 시스템 도입을 통하여 개별 평가를 기반으로 한 수준별 맞춤 학습을 지원하지만, Quop은 학습 진단 결과만을 보여줄 뿐 그에 맞는 학습 보조 자료는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독일 교사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별도의 교육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의 특성은 담당 교사가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그에 맞는 학습 자료는 교사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진단 이후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자료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것이 특히나 부담된다는 의견 역시 다수 존재한다. 학습 과정에 대한 평가와 진단은 결과이자 마지막이 아닌, 계속해서 이어지는 교육의 첫 시작점이다. 진단 도구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떠한 교육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 내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 도입에 대한 우려

학습 과정 진단 도구인 Quop이 개발되고 처음 헤센 주에 도입된 2017년, 독일의 교육학문노조(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chaft)와 헤센 주의 많은 학교들은 이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했다. 우선 여전히 대다수 독일의 학교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 정부는 학교 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19년부터 한화로 약 9조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투자하고 있고,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기기 보급과 인프라 구축 속도가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제반 환경을 다지는 것부터 교사 재교육 문제까지, 즉각적인 도입과 시행에는 현실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성취도 중심의 평가 방식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치로 결과를 나타내는 진단 도구가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다. 사회적 역량이나 비판적 사고력, 소통 및 협업 역량과 같은 부분은 표준화된 도구로는 그 학습 과정을 진단할 수 없다. 점수로 환산되는 성취도에 매몰되다 보면 기타 필수 역량의 가치가 자칫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업을 진단 도구의 평가 영역과 방식에 맞추게 되는 주객전도의 가능성도 있다. 위에서 설명한 Quop을 도입한 독일의 한 학교는 독해 관련 수업 계획을 도구의 평가 방식에 맞추어 전면 수정했다. 이는 교사들의 자율성 침해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독일에서는 수업 운영과 평가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교사에게 위임된다. 가르쳐야 할 큰 틀의 목표와 과정은 교육 당국에서 제시하지만 수업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평가 방식은 교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평가할 영역과 내용이 이미 확정된 진단 도구의 도입이 되려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학습 과정 진단 소프트웨어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교육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보조적 수단으로 기능해야한다. 그러려면 우선 학습 과정 진단 도구가 충분히 적절하고 신뢰가 가는지 검증해야 하고, 그것이 교사와 교육 현장에 가져올 수 있는 이점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결국 진단 도구의 도입과 활용 방식에 있어 주 단위뿐만 아니라 학교단위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교육현장은 그동안 진단과 평가가 곧 교육의 목적이 되는 상황을 너무나 많이 경험해왔다. 점수가 목표가되지 않으려면 진단 도구가 교육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독일이 학습 과정 진단 프로그램의 도입을 두고 여전히 미온적인 것, 연구를 통해 그 효과성을 계속해서 검증하는 것은 교실에서 학습 과정 진단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숙고의 과정이다.
독일은 여전히 디지털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쓰고 중요한 서류는 우편으로 처리한다. 사회 체계 전반을 디지털화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걸음을 뗄 줄 모르고 수년째 논의 중이기만 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독일은 굳이 느림을 택한다. 2025년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준비 중인, 질주하는 IT 강국 한국에 비하면 독일은 교육현장에서의 디지털 도구 활용에 있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속도의 측면에서 독일이 한국의 본보기가 될 수는 없으나, 그들이 주저하는 이유를 고찰하는 것이 내달리는 한국에는 과속방지턱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원진하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NGO 활동가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교육 사업을 지원하다가, 학문과 연구 분야로서의 교육을 더 배우고 싶어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학교 연구 및 학교 개발이라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교사 교육 및 예비 교사 역량 개발, 다문화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