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페인트 Parent’s Interview
이 시대 부모 자식간의 의미를 되묻다!

소설페인트Parent’s Interview
이 시대 부모와 자식간의 의미를 되묻다!

부모와 자식 간은 혈연으로 연결돼 서로를 선택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묶인 ‘본질과 결합’이라는 의미를 당연시하며 암묵적으로 서로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간다. 이희영의 장편소설 ‘페인트’는 이러한 현 세태를 풍자하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금 경각해보게끔 하기 위해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고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미래세계를 그려냈다. 바로 부모 면접을 통해서 말이다. 아이에 대한 양육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을 대신해 국가가 나서서 센터 안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부모를 찾아주는 미래세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을까? 전연 픽션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미래세계를 앞서 살펴보며 현 가족의 모습과 닥쳐올 시대적 변화를 고찰해보도록 하자.

 

국가의 아이들
한국 전역에 퍼져 있는 NC(nation’s children) 센터는 크게 세 곳으로 분 류되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과 미취학 아동을 관리하는 퍼스트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그리고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이다. 주인공 제누301(이하 제누)은 17살의 나이로 라스트 센터에 거주하고 있다.

라스트 센터의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고 사회로 나가게 되면 NC의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생 차별과 싸워야만 한다. 하지만, 부모를 선택할 경우 NC에서의 기록은 모두 삭제되고 일반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살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 면접 (Parent’s Interview)이라는 ‘페인트’를 통해 부모를 선택하고, 아이를 입양한 부모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된다.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양육공동체’라는 제도가 운용되는 것이다.

 

필요성이 기반이 된 선택? 부모 면접
어느 날 한 남녀가 제누와 페인트를 진행하기 위해 찾아온다. 생모와 생부 밑에서 자라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가적 지원을 목적으로 페인트에 지원했던 다른 페인터들과 달리 이번 페인터는 생소할 정도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런 모습이 제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솔직한 마음을 한켠 드러내 보이게 만든다.

“제가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벌써 열일곱인데.”
“친부모 밑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은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지. 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문제가 없을까? (중략)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p116~117)

NC의 아이들은 생면부지였던 사람들을 만나 ‘부모’라고 부르며 서로의 습관을 살펴보고 행동을 파악하고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약간의 거리감이 서려 있는 이들의 관계는 결국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어 있지만, 남녀가 사랑을 키워가듯 이들 역시 찬찬히 서로를 알아가며 애정이라는 감정이 싹트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계약이 성립돼 센터를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친부모와 옥신각신하며 한집에서 부딪히며 사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NC의 아이들은 서로 맞지 않으면 다시 센터로 돌아와 부모를 페인트하게 된다.

“행복에 겨운 새끼들이지. 낳아서 키워주고 돌봐 줬는데 부모가 귀찮다? 나쁜 자식들이야. 진짜.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 부모들도 저 녀석들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저 녀석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 않을까? 나는 절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p45)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서너 번의 만남과 한 달간의 합숙 기간만으로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무거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NC의 아이들은 10여 년의 기간 축적된 교육과 어린 경험치를 바탕으로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선별해야 한다.
페인터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은 더 깊은 연륜으로 아이의 성격을 파악하고 본질을 헤아리며 자신의 품에 오를 문턱을 내리고 타협하며 가족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부모란 무엇이며. 좋은 아이란 무엇일까? 부모는 아이를 위해 어떠한 부모가 되어야 하며, 아이는 부모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응답해야 하는 걸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처럼 관계의 모습도 다양한 색깔을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과 NC 밖의 세상은 다르다. 울타리가 없어진 사회라는 공간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연약한 존재들은 짓밟히고 있었다. 주인공 제누는 오랜 고민 끝에 NC 밖의 세상에서도 NC의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족이 아닌 또 다른 길을 선택하여 NC의 아이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세상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NC 출신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는 건, 오직 NC 출신들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NC 출신들은 늘어가는데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NC 출신은 드물었다. 신분이 바뀌었으니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를 비난할 수도 없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놔두고 좁고 험한 길을 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찾는 사람이 늘면 언젠가는 좁고 험한 길도 넓고 평평해질 것이다. 시작은 돌멩이 하나를 치우는 일일 것이다. 벌써 누군가는 돌멩이를 멀리 풀숲으로 던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뒤에 오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p218)

사람들은 생이 다할 때까지 가야 할 길을 선택해 나간다. 그래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길을 다지고 만들어 나가야 하며, 마음을 담아 길을 걸어가야 한다. 소설 속 국가의 아이들처럼 누군가는 든든한 울타리를 택해 타협과 상생을 선택해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주인공 제누처럼 제도 밖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닦아 나갈 것이다. 결국 제 가슴 속의 행복이 가야 할 길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

글 · 이희영 작가 출판사 · 창비

『페인트』는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작품으로 국가에서 센터를 설립해 아이를 키워 주는 ‘양육 공동체’가 실현된 미래 사회, 청소년이 부모를 직접 면접 본 뒤 선택하는 내용으로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을 도발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좋은 부모란, 나아가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질문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