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터치(High-touch), 하이테크(High-tech) 교육,
왜 중요한가?

• 글·유규오 EBS 디지털학교교육본부장

매년 10월이면 누가 노벨상을 받게 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작년 10월 9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여성이면서도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여성으로는 세 번째, 노동경제학자로는 두 번째 수상이었다. 바로 하버드대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이다. 그는 “여성의 노동시장 결과와 관련한 우리의 이해를 진전시킨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노동 참여뿐만 아니라 소득불평등, 이민, 교육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하버드대 동료 교수이며 남편인 로렌스 카츠(Lawrence Katz)와 공동으로, 경제발전과 교육발전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했다. 골딘과 카츠는 미국이 20세기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유럽보다 고등학교까지의 보통교육을 빠르게 대중화시켰기 때문이라는 점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교육이 국가의 경쟁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참고로,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EBS가 공동 제작하는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마인즈>에서 로렌스 카츠 교수의 강의를 올해 3월 4일부터 5회에 걸쳐 방송하였다.)

한국은 세계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문맹을 퇴치한 나라이다. 1945년 해방 당시, 미군정 조사에 따르면 문맹률이 78%였다. 이것이 1958년 문맹률이 4.1%로, 1966년에는 1%로 떨어졌다. 이처럼 10여 년 만에 문맹을 퇴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의 과학성과 함께 예산의 20%를 교육에 투입한 정부의 선견지명 때문이었다. (UNESCO에서도 문맹퇴치상을 ‘세종대왕 문해상’이라고 명명하여 1990년부터 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한국은 문맹 퇴치에 그치지 않고 보통교육도 빠르게 확대해 갔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1975년에 50%를 넘어섰고 1980년에는 80%를 상회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1,700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통교육에 적극 투자했다. 그 후 민주화되고 경제도 글로벌에 개방되고 디지털 기술에 적극 호응하면서 이제는 4만 달러를 앞둔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그 결정적인 원동력은 교육이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이 2030~40년대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중국은 중진국에서 못 벗어날 것이라고 내다본 사람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중국」을 쓴 스콧 로젤과 내털리 헬이다. 그들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OECD 회원국들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평균 78%인데 비해 중진국 함정에 갇힌 국가들의 평균 진학률은 36%에 불과했고 중국의 고등학교 진학률은 30%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시와 농촌으로 출신성분을 나누고 주거이전을 막고 있는 후커우(戶口)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전체 인구의 64%가 농촌 호구이고, 그들은 낙후된 농촌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갇히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고 예측했다. 이처럼 교육은 한 국가의 먼 미래를 규정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 하이터치(High Touch)가 왜 중요한가?

2010년대부터 인류 사회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격변기에 들어섰다. 그 상징적인 출발이 바로 2016년 3월에 있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AI는 대부격인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 교수가 2006년 ‘심층신뢰 신경망(Deep Belief Network, DBN)’이라는 딥러닝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지, 불과 10년 만에 거둔 AI의 역사적인 승리였다. 그리고 2022년, 오픈AI에서 ChatGPT를 공개했다.
ChatGPT는 인간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고 자부해 온 언어능력을 인간보다 더 뛰어나게 구사했기 때문이다. AI는 더욱 진화, 발전했다. 다양한 문체로 작문하고 번역하는 것을 넘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제는 동영상을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2월 15일 발표한 AI에서는 요구한 문장에 맞추어 1분 내외의 동영상을 제작하거나 제시한 동영상을 보고 문장으로 요약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이제 AI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언어능력을 넘어 영상 창작활동까지도 가능해진 것이다.
AI의 급격한 진화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AI시대, 인간만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교육받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40년 전에 미리 던진 현인이 있다. 바로 ‘하이테크(High Tech), 하이터치(High Touch)’ 개념을 만든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이다. 그는 1982년 출간한「메가트렌드(Megatrends)」에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지만, “하이테크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왔다.
나이스비트는 하이테크의 구체적인 모습은 기술변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핵심 특징인 저렴화, 실시간화, 디지털·네트워크, 상호작용 등은 바뀌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일찌감치 하이테크에서도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하이테크의 중독 증상을 지적했다. 기술을 극단적으로 숭배하거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즐거움에 매몰되어 기술 장난감만을 탐닉하거나, 산만하게 살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나이스비트는 하이테크 시대에서 인간이 건강하고 창의적이며 열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이터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이터치에 대해서는 조금 장황하게 설명했다. “처음 보는 세 살 먹은 아이가 우연히 당신에게 얼굴을 돌리며 짓는 귀엽고 해맑은 환한 미소”, “이제 나이가 들어 허리 굽히는 것을 힘겨워하는 노인을 보며, 부축해 드리고 싶은 마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 “강아지를 싫어했던 당신이 이제는 당신의 얼굴을 핥도록 놔두는 것”이 하이터치라고 했다. 비유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하이터치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공감력, 인간성에 대한 탐구’이다. 나이스비트는 하이테크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 감성에 대한 탐구, 공감이 중요해진다고 본 것이다.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나이스비트가 정립한 ‘하이테크 하이터치’ 개념을 한국 교육계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게 2021년에 발간된 「AI 교육혁명」이다. 이주호, 정제영, 정영식 세 사람이 집필한 이 책의 부제대로 “AI시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답변으로 제시한 개념이 바로 ‘하이터치 하이테크’이다. 나이스비트의 ‘하이테크 하이터치’ 개념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아마도 교육은 인간에 대한 공감과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현장에서 교사의 주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이터치’를 먼저 내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책에서는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의 6단계 교수학습 이론(기억-이해-적용-분석-평가-창안)을 차용하여, 하위 2단계(기억-이해)는 AI 활용 맞춤형 ‘하이테크’ 학습으로, 상위 4단계(적용-분석-평가-창안)는 교사와 함께하는 ‘하이터치’ 학습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하이터치와 하이테크의 결합은 인간 교사와 AI 개인교사 간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AI 개인교사는 학생을 진단하고 수준에 맞춰 최적의 학습 경로를 찾아줄 수 있다.
이처럼 AI 개인교사가 개별화 교육을 지원하면, 인간 교사는 좀 더 고차원적이고 인간적인 학습 지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려해야 할 점은 AI 맞춤형 ‘하이테크’ 학습만 진행하게 되면 부진 학생들은 적절한 동기부여 없이 자기주도학습으로만 내몰리면서 학습격차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 교사의 ‘하이터치’ 학습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은 인간 교사들의 업무방식도 바꾸게 될 것이다.
2019년 OECD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의 행정업무 부담이 최근 5년간 3% 증가했다고 한다. 2020년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 미국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교사들이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는 시간(49%)보다 수업을 준비하고 평가하고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시간(51%)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터치-하이테크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면 교사들이 수업준비-평가-행정업무에 투입되는 시간이 축소될 것이고, 그만큼 학생들과 공감하면서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AI 기반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최근까지 진화, 발전해 온 AI 기반 교육 서비스에는 크게 6가지 모습이 있다.
①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이다. 개발 학습자의 학습활동과 결과를 분석하여 난이도 수준에 맞는 학습방식과 콘텐츠를 자동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MATHiaU’이다.
② 대화형 튜터링 시스템이다. 학생과 컴퓨터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자료와 활동을 제공하고, 교사에게는 학생들의 학습데이터를 제공하여 수업 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대표 사례는 IBM과 Pearson이 공동 개발한 ‘Watson Tutor’이다.
③ 자동화된 서술형 평가 시스템이다. 자동 음성·필기 인식과 AI기술을 활용하여 에세이를 세부 척도(개념, 내용, 구성, 문장 유창성, 단어 선택, 표현 등)로 평가하여 진단하는 것이다. 대표 사례는 Pearson의 ‘IEA’와 ‘WriteToLearn’ 등이다.
④ 교수학습 지원 플랫폼이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수업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생들에게 맞춤형 숙제를 제공하며, 학습 단계와 단원을 조정하여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대표 사례는 IBM의 ‘Watson Education Classroom’과 중국의 ‘VIPKID’이다. 특히, ‘VIPKID’는 5~12세 영어학습자에게 1:1 화상 학습 시스템을 제공하며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학생의 집중도와 흥미지수를 체크하여 수업 내용을 수정한다.
⑤ 교육 자료 검색엔진 및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이다. ‘Ask Mo’는 교육용 비디오 검색 엔진이고 ‘MobyMax’는 AI 기반으로 수학, 언어, 어휘 등에 대한 학습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기계학습 알고리즘에 의해 학생 맞춤형 수업을 제공한다. ‘alta’는 수학, 통계, 화학 등의 텍스트, 비디오를 활용한 문제 및 평가를 통해 개인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맥그로 힐에서는 ‘ALEKS’를 통해 수학능력을 평가하고 개인 맞춤형 학습과정을 제공한다.
⑥ 챗봇 및 범용 AI의 교육적 활용이다. 대표적인 교육용 챗봇으로는 다양한 주제로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한 영어학습용 소셜 챗봇인 AKAI의 ‘뮤지오’가 있다.

추격할 것인가? 앞지를 것인가? 뒤처질 것인가?

1883년 원산학사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근대식 학교는, 대형 교실에서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정해진 교육과정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에서 큰 변화 없이 140년을 버텨왔다. 근대식 학교 제도는 대량생산 시스템과 유사한 대량교육 시스템(Mass Education System)으로, 급속한 산업화 시대에 효율적으로 인재 양성을 해왔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 속에서 대량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근면, 절약하며 자녀 교육에 헌신한 부모들과, 효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한 자식들까지, 공부를 숭상한 유교적 전통은 대량교육 시스템에서도 최고의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대량교육 시스템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 유교적 전통은 사라졌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격변 속에 있다. 이와 함께 한국 교육에는 기초학력 수준이 계속 추락하는 위기의 증후도 나타나고 있다. 기초학력미달(2수준) 비율이 2000년 6%에서, 2015년에는 14.5%로 급증했다. 한국 교육에 심각한 경고음이 켜진 것이다.
앞에서 밝힌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렌스 카츠 연구에서 국가 발전을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로 비유했다. 교육이 기술을 앞서갈 때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경제 불균등도 개선되지만, 교육이 기술과의 경주에서 뒤처질 때 경제성장이 느려지고 경제 불균등이 확대된다고 밝혔다.
우리는 지금 AI 혁명이라는 인류사 중 가장 큰 격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술 대격변 시대에 한국 교육은 기술 발전을 추격할 것인가? 오히려 앞지를 것인가? 아니면 기술과의 경주에서 뒤처질 것인가?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유규오
EBS 디지털학교교육본부장

1992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4년 EBS 입사, <딩동댕유치원>, <하나뿐인지구>, <아기성장보고서>, <다큐프라임-민주주의> 등 연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극한직업>,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다문화고부열전> 등 기획·제작, <EBS 수능연계 사업>, <위대한수업, 그레이트마인즈> 등 실무 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