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시리즈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 시리즈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위대한 영웅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담은 영화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으로 그의 뛰어난 전략 전술, 그리고 애민 정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역사는 왜 이순신 장군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수로 기억하고 있을까? 영화 속 장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한산대첩에서 도망친 적장마저 존경한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 전쟁사에서 3대 대첩은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다. 이들 전투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전략 전술로 대승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인근에서 벌어진 일본 수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거북선의 등장과 학익진 전술 덕분이었다. 학익진은 이순신 장군이 처음 사용한 전술은 아니었다. 이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사용되었던 공격 전술이었다. 그럼에도 한산대첩에서 학익진이 주목받는 것은 육지가 아닌 해전에서 학익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하이라이트는 한산도 인근에서 펼쳐진 전투 장면이다. 김한민 감독은 전편이었던 <명량>에서 용맹한 장수 이순신을 부각시켰다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지략가 이순신 장군을 묘사했다. 전투 장면도 학익진을 펼치는 지략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의 좁은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줄지어 서진하던 와키자카가 이끄는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 6척을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의 유인 작전에 말려든 것이다. 좁은 해협을 벗어났을 무렵 와키자카는 이순신 장군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학익진을 펼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함포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총에 대비하기 위해 건조한 거북선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조선 수군의 화포 위력은 일본 수군을 압도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관객들은 지형과 바람 방향을 활용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술에 박수로 호응했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의 전황이 바뀌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였다. 평양까지 승승장구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은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해 평양성에 눌러앉게 되었다. 또한 수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전라도를 공격하는 왜군의 움직임도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패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본국으로 돌아가 “나는 성급했고, 적장은 침착했다. 나의 전술은 단순했지만, 그의 전술은 치밀했다. 나는 적장 앞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비록 적장이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 어린 이야기도 남겼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자도, 가장 미워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가장 좋아하는 이도, 흠모하고 숭상하는 자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이도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자 역시 이순신이다”라는 말에서 뛰어난 전략가 이순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명언이 몇 가지 있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전하지 말라’,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처럼 많은 이들이 회자하는 명언에서 이순신 장군의 인품을 읽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명량>을 본 관객이라면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주인공 역을 맡은 최민식 배우의 결의에 찬 대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조선 수군의 총사령관인 이순신 장군에게 겨우 12척의 전함이 있었을 정도로 명량해전을 앞두고 있을 무렵 조선 수군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명장 이순신은 모진 고문을 겪다가 겨우 풀려나와 백의종군하고 있었고,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 전투에서 일본 수군의 공격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궤멸당하고 말았다. 조선의 왕이었던 선조에게 이순신 장군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다시 복직시켜 전장으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극히 경계하고 미워했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을 못마땅히 여기는 선조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여러 대신이 이순신의 복직을 천거했지만, 이순신 장군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선조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왕이 없는 자리에서 삼도수군통제사 복직이 결정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지만, 이순신은 전함 한 척 없는 이름뿐인 통제사였다. 일부에서는 배도 없는 수군을 유지하느니 그나마 남아 있는 병력을 육군에 편입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한반도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 바로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왜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였다. 이순신 장군의 조국을 지키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계략이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133척의 일본 수군 전선과 조선 수군이 넓은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좁고 조류가 빠른 울돌목으로 적선을 유인함으로써 대등한 위치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영화 <명량>의 전투 장면에서도 조선 수군이 울돌목으로 적군을 유인해 싸우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 시리즈 마지막 편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며, 임진왜란의 종결을 의미하는 노량해전을 그린 <노량, 죽음의 바다>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역을 맡은 김윤식 배우는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대사 한마디가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 했다.
노량해전은 우리 국토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일본군을 단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않으려는 이순신 장군과 순천만에 고립되어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함대를 구조하려는 시마즈 요시히로의 일본 함대가 노량해협 일대에서 벌인 전투이다. 전투의 시작은 조선군의 순천 왜성 위장 공격에서부터였다. 조선군이 순천 진을 치고 있던 고니시 부대를 포격하자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수군이 노량해협을 비우고 순천만으로 진격했다고 판단하고 노량해협에서 재빨리 벗어나려 했다. 일본 수군은 한산도와 울돌목에서 조선 수군에게 전멸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것이 두려웠다. 마침 조선 수군이 순천만을 공격하자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순신 장군의 유인책이었고, 순천만 포격은 위장 공격에 불과했다. 매복하고 있던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의 합동 공격에 당황한 시마즈 요시히로 선단은 남해 섬을 돌아 피하려고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관음포에 갇혀 독 안에 든 쥐 형국이 되고 만다. 입구가 막힌 일본군 선단은 조선 수군의 포화에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았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장수 진린 제독의 함선이 왜선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자 지원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 깊숙이 진입했다가 이때 날아든 조총 탄에 가슴 관통상을 당하고 만다. 당시 조총 탄환의 유효 사거리가 200미터 남짓이었으니 얼마나 근접했는지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이순신 장군의 서거와 함께 끝이 났다. 김한민 감독은 <노량:죽음의 바다>를 통해선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담아냈다. 적의 흉탄에 부상당한 이순신 장군이 고통을 무릅쓰고 아군의 진격을 독려하려 끝까지 북을 치는 모습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김윤식 배우는 이 장면에서 과장된 연기나 감정 표현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관객의 감정이 동화될 수 있도록 했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엔딩 크레딧이 등장할 때까지 북소리가 이어지도록 했는데 영화의 여운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감독은 그중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 듯하다. 바로 죽기 직전 투구까지 벗고 북을 치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면 때문인데 감독이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그려낸 것은 이순신이라는 위인의 순수성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능한 선조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왜란으로 죽은 백성들과 자신의 부하들을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당신 스스로는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왜군들을 뒤쫓아 섬멸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그는 위인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