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의상대, 강릉 경포대, 죽서루

정철의 발걸음을 따라 떠난 동해안 여행

관동지방, 한반도를 동서로 나누는 태백산맥 동쪽, 동해안과 마주 보고 있는 지역을 관동이라고 부른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관동지방을 두루 살피며 보고 느낀 경치와 풍류를 관동별곡에 담았다. 역사를 좋아하는 중학생 형제가 아빠와 함께 정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에 나섰다.

낙산사 의상대에서 정철의 충심을 배우다

오늘 여행의 주인공은 파주에 사는 중학생 형제 황용하(중학교 3학년)와 황진하(중학교 1학년)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형제에게 역사서적은 가장 흥미로운 장르였다. 최근 이순신 장군 영화를 재미있게 본 형제는 조선 중기 역사에 관심이 갔고, 그 호기심은 송강 정철까지 이어졌다. 이번 여행지를 강원도로 정한 것도 송강이 관동별곡에 그린 경치를 직접 보고 싶어서다.

한반도 서쪽 끝에 있는 파주에서 첫 번째 목적지인 낙산사까지는 한반도를 횡으로 가로질러야 하는 꽤 먼 거리다. 가족은 4시간 남짓 이동하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둘째 진하는 평상시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 섭섭했는지 가는 시간 내내 운전하는 아버지가 귀찮아할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게임으로 시작된 이야기 주제는 여행지인 양양, 강릉, 삼척으로 이어졌고, 정철의 삶과 정치에 대한 토론으로 연결되었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즈음 첫 번째 목적지인 낙산사에 도착했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서기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낙산사 의상대는 동해 일출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송강 정철은 낙산사 의상대에서 일출의 장관과 감회에 대해 노래하며 우국지정을 보여주었다. ‘녈구름(간신)이 임금 옆에 머물까’라고 의상대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노래한 것은 나라를 걱정하는 신하로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아버지 황성호 씨는 형제에게 낙산사가 2005년 4월 발생한 양양 지역 산불로 대부분이 전소되어 2007년 복원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산불의 불길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낙산사 범종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버지의 얘기를 들은 형제는 복원으로 새로 탄생한 낙산사 범종을 다시 살펴보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심각한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한껏 들뜬 아이들은 낙산사 범종각에서 의상대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에서도 정철 생각은 까맣게 잊은 듯 신나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정철이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 가만히 동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에 빠졌다. 황성호 씨는 여행 소감을 이야기할 때 낙산사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한적한 겨울 바다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율곡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릉 경포대

가족의 발걸음은 양양을 벗어나 강릉으로 향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7번 국도는 관동지역을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차창을 통해 펼쳐지는 동해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청량감을 준다. 아이들도 바다가 보일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양양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겨울 바다 정취를 한껏 즐겼다.
강릉은 관동지방의 중심으로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죽헌, 경교장, 강릉향교, 경포대 등 선조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경포대다.

송강 정철은 잔잔한 경포호를 바라보며 비단을 두 번 다린 듯하다고 표현했다. 동해바다의 역동적인 파도에 비해 잔잔한 경포호의 모습을 비단에 비유한 것이다. 경포대에는 율곡 이이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가 기둥과 기둥 사이의 문설주에 걸려있다. <경포대부>의 앞부분은 경포대의 경치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내용이, 뒷부분에는 자연을 통해 성정을 다듬어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하겠다’는 어린 율곡 이이의 의지가 담겨 있다.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와 경포대 해변을 둘러보던 아이들은 정자에서 내려오자마자 며칠 전에 내려 쌓인 눈으로 눈사람 만들기를 시작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손이 빨갛게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눈덩이를 굴렸다. 아빠도 아이들을 거들기 시작하자 어느덧 둘째 진하 키만큼 자란 눈사람이 완성됐다. 눈사람을 만드는 사이사이 아빠와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경포대를 둘러본 가족은 경포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경포해변을 십리(4km)라고 했을 정도로 경포해변은 그만큼 길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 바다 모래사장을 걷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의 첫날은 강릉에서 마무리했다.

대나무숲 서쪽에 지어진 죽서루

둘째 날, 가족은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삼척까지 내려갔다. 삼척은 경상북도와 경계하고 있는 강원도의 최남단으로 관동별곡에도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정철은 죽서루 아래 흐르는 오십천을 보며 왕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죽서루는 이름 그대로 대나무숲 서쪽에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에서 물끄러미 대나무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에 실려 오는 댓잎 비벼지는 소리가 상쾌하다. 첫째 용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죽서루 옆의 대나무숲을 꼽았다. 몽환적인 소리와 냄새가 자신을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나중에 다시 오면 꼭 대나무숲에 들어가 보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죽서루에 올라 주변을 살피던 둘째 진하는 “이곳에서는 동해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제 갔던 곳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진하의 말처럼 관동팔경으로 꼽히는 곳이 모두 바닷가에 있어서 일출을 즐길 수 있지만, 죽서루만 강을 끼고 있어서 일출 대신 석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죽서루는 오르는 계단이 따로 없는 것도 특징이다. 바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과 죽서루 바닥이 맞닿아 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자연에 기대어 정자를 지은 우리 선조의 멋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죽서루 탐방을 끝으로 여행 일정을 마친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아버지 황성호 씨는 “제가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한 적이 없었어요. 1박 2일이라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오고 가며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라며 가족 여행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첫째 용하는 경포대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나 싶었다며 어른스러운 여행 소감을 밝혔다. 둘째 진하는 눈사람 만들기와 아빠와의 눈싸움이 기억에 남는다며 다음에도 아빠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삼부자에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낙산사 의상대

위치: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운영 시간: 06:00~17:30

경포대

위치: 강원 강릉시 경포로 365
운영 시간: 09:00~18:00

죽서루

위치: 강원 삼척시 성내동 9-3
운영 시간: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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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