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지난 2023년 11월 16일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를 개최했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및 자료 200여 점을 전시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했다. 이번 기획전은 2024년 5월 1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의 사회·역사적 변화상을 중심으로 5개의 섹션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당대 한국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주요 변곡점을 넘어서며 그 모습을 달리해온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기하학적 추상이 미술의 영역을 넘어 건축이나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해 왔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도 연동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경각시키기도 한다. 난해하다는 인식을 벗어던지고 한국의 시대 안에서 재해석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전시 정보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명 :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기간 : 2023년 11월 16일~ 2024년 5월 19일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기하학적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으로 서구에서는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처음으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알렸다. 국내에서는 1920~1930년 근대기에 등장한 뒤 새로움과 혁신을 상징하는 감각으로 인식되며 미술과 디자인 그리고 문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1920년~1930년대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영화 주보를 통해 기하학적인 표지 디자인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경성은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이 직간접적으로 유입되면서 미술과 디자인, 문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이상은 미츠코시 백화점 내외부의 기하학적인 외형을 두고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과 같은 문장으로 묘사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고, ‘제일선’이나 ‘신인간’ 같은 시사 종합지 표지도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표현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감각의 혁신은 여러 논점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

1957년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인 신조형파가 결정되었다. 신조형파는 현대예술의 생활화를 주창한 미술단체로 독일의 건축,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독일어로 ‘바우(Bau)’는 ‘건축’을 뜻하고 ‘하우스(Haus)’는 ‘집’을 뜻함)의 조형 이념을 신조로 해 그들이 창조한 미술로 국가 재건에 동참하고자 했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국제적이며 한국적인 현대미술을 추구하고 있었으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으로 구성된 신조형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건축을 기반으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예술과 기술을 통합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 비록, 이들이 추구했던 바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세 분야의 예술가들이 연대해서 활동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을 대하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특히 김환기와 유영국 같은 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자연을 단순한 그림의 소재로 보지 않고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담아내는 매개이자 그 자체로 여기며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운생동의 존재로 여겼다. 이 작가들의 작품이 완벽한 질서와 균형에 기반한 기하학적 형태보다는 자연이 지닌 부드러운 선과 형태를 표현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며, 청년작가들을 비롯해 기성 미술가들까지 세대와 관계없이 다양한 기하학적 추상 작품들을 소개했다. 1967년에 개최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청년 미술로서의 기하학적 추상’이 등장하였고, 1967년에는 ‘회화, 조각, 건축의 종합적인 창조’에 기반하여 미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한 한국조형작가회의가 창립되었다. 이듬해인 1968년에 개최된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에서는 미술가와 건축가 그리고 디자이너가 연대해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국가 발전을 상징하는 미래적 이미지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1960년대 말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산업 및 도시 문명의 변화된 시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 비행사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전 세계 생중계된 이후로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현대미술,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연계하거나 우주시대에 대한 반응을 미술을 통해 표현하려는 시도가 국내외 작가들의 작업에서 발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