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문맹이 되지 않으려면

읽는 인간 :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리터러시(literacy)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다.
이걸 직역한 게 ‘문해력(文解力)’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문해력 열풍이 몰아치면서 관련 서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그 출발점은 아마도 2021년에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일 것이다. 글쓴이는 자문을 맡았던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런데 왜 귀에 익은 ‘문해력’ 대신 ‘리터러시’를 제목에 넣었을까? 프롤로그에 그 이유가 나온다. 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달리 말하면, ‘문해력’이 굉장히 많은 것들을 놓치거나 빠뜨림으로써 리터러시의 의미와 중요성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글. 박경수 출판기획자

글자 읽기와 세상 읽기

리터러시는 ‘한글 깨치기’의 동의어가 아니다. 그렇다고 (흔히 하는 오해처럼) ‘독해력’과 비슷한 말도 아니다. 리터러시는 읽고 쓰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인과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책의 제목이 『읽는 인간』인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이 ‘제대로 읽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이라는 단어는 단지 리터러시의 출발점 혹은 전제조건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교육학의 명저 『페다고지』를 쓴 파울로 프레이리는 리터러시를 설명할 때 ‘글자 읽기와 세상 읽기’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세상을 읽으려면 일단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만, 글자 읽기(수단)는 늘 세상 읽기(목적)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떠나서는 읽기의 가치와 효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리터러시는 개인의 성장에 꼭 필요한 ‘배움의 도구’인 동시에, 읽고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사회적·역사적 도구’이기도 하다.
읽는다는 것은 목적의식이 있는 ‘앎의 과정’이지만 닥치는 대로 많이 읽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읽고 있는 정보의 가치에 대한 판단, 그리고 스스로의 앎의 깊이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읽기’의 필요성은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뉴스들이 판치는 시대, 아무리 긴 문장도 단 세 줄로 요약해주는 AI가 등장한 시대에 세상의 맥락을 읽고 더 나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속절없이 21세기의 ‘일리터러시(illiteracy, 문맹)’가 될 수밖에 없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옛 까막눈보다 더 미욱한, 기계만도 못한 인간!

리터러시가 부재한 사회의 풍경

리터러시는 정밀하고 섬세한 지적, 사회적 탐구와 실천을 포괄한다. 인류의 모든 진보는 함께 읽고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실현되었고, 잘못 읽거나 나쁘게 활용함으로써 무수한 시행착오와 퇴행을 겪기도 했다. 리터러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대의 흐름이 판이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제대로 읽지 못해 발생한 사회적 부작용의 사례로 글쓴이는 2016년 여름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든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맹렬하게 탈퇴 캠페인을 벌이던 버스에 큼직하게 적혀 있던 “We send the EU £350 million a week”라는 문구. 정부가 매주 5,600억 원을 EU에 제공 한다는 이 문구에 많은 영국인들이 분개했지만 그건 가짜 뉴스였다. 정보의 진위가 판별되지 않은 사회의 낮은 리터러시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기도 한다.
임기 4년간 30,573번의 거짓말과 가짜 뉴스를 쏟아내고도 열광적 지지자들을 몰고 다녔던 트럼프의 미국 또한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건 독해력이 아니라 텍스트를 매개로 한 사유와 실천, 즉 리터러시였던 것이다.

제3의 공간 : 리터러시를 배우는 학교

리터러시를 배우는 대표적인 장소는 학교다. 달리 말하면, 한 사회를 실질적 문맹 사회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학교에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배움’보다 성적이 우선인 선행학습, 교과서만 줄줄 외우는 수동적 읽기, 핵심만 요약하는 가짜 읽기…. 리터러시 전문가가 읽어낸 대한민국 교육의 실상이다.
그는 ‘제3공간’ 아이디어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가정이나 동네 같은 공동체(제1공간)에서 ‘습득’한 것들과 학교처럼 제도화된 공간(제2공간)에서 ‘학습’한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교실. 피츠버그대학 재직 시절 글쓴이가 그 지역 중학교 교사들과 함께 시도했던 이 아이디어는 학생들로 하여금 읽기의 대상과 방식을 주도적으로 선택케 함으로써 리터러시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교육 방식의 변화가 교육 주체(교사와 학생)의 변화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리터러시가 시대의 흐름을 바꾸듯,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이 책이 출간된 것 또한 그러한 흐름의 반영일 터이다.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는 글쓴이의 권유에 응답하려면, 일단은 이 책부터 꼼꼼하게 제대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읽는 인간 : 리터러시를 경험하라 조병영 지음 | 쌤앤파커스
리터러시는 정밀하고 섬세한 지적, 사회적 탐구와 실천을 포괄한다. 인류의 모든 진보는 함께 읽고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실현되었고, 잘못 읽거나 나쁘게 활용함으로써 무수한 시행착오와 퇴행을 겪기도 했다. 리터러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대의 흐름이 판이하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