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의 편견을 깬 새로운 감상법
화학자의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다
기성의 편견을 깬
새로운 감상법
화학자의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다
글·박진아 칼럼리스트
미술관에 간 화학자
화학의 분자구조와 물질의 반응성, 그리고 빛의 스펙트럼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화학물질들과의 연계 속에서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켜왔다. 이성과 감성을 매개체로 과학과 예술을 통섭한 저자 전창림은 「미술관에 간 화학자」라는 책을 통해 안료의 화학적 구성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작품의 변색과 탈착 과정 등 명화의 스토리에 과학적인 사고를 덧대 예술품 감상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을 깨뜨렸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총 5개의 장에 50개의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Chapter1.에서는 ‘미술의 역사를 바꾼 화학’, Chapter2.에서는 ‘화학원소와 화학자를 그리다’, Chapter3.에서는 ‘광학과 색채과학이 캔버스에 들어가다’, Chapter4.에서는 ‘스펙트럼 분광학으로 태동한 인상주의’, Chapter5.에서는 ‘경이로운 과학적 상상력’을 다루고 있다. 과학이 예술을 만나 형성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유화를 만들어낸 불포화지방산
1434년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에 의해 제작된 명화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보면 그 정교한 붓질과 생생한 묘사 그리고 놀라운 색감에 의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이 그림은 이전의 그림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인 아마인유(linseed oil)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불포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데, 바로 이점을 그림물감에 이용한 것이 유화이다.
에이크가 아마인유가 포함된 유화를 사용하기 전에는 대부분 달걀노른자로 만든 템페라로 그림을 그렸으며, 템페라 이전에는 석고 위에 수성 물감을 스미게 하는 프레스코로 그림을 그렸다.
사실 에이크가 유화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에 의해서 유화가 제대로 성과를 나타내고 기법이 한층 더 성장 집대성되었기 때문에 그를 ‘유화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유화물감에는 아마인유가 포함된다.
화학에 문외한이었던 천재 화가 다빈치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가 낳은 만능 예술가였다. 그는 기계공학, 해부학, 건축학, 기하학, 생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으며 분야마다 독보적인 천재성을 과시했다.
다빈치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뽑히는 <최후의 만찬>은 그가 화학에 관해서 상당히 무지했음을 방증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빈치는 유화와 템페라 기법을 혼합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템페라에 사용하는 달걀노른자는 수분을 거의 50% 이상 함유한 에멀션(emulsion)인데 유화는 기름이므로 수지 균형이 깨어져 상분리(물과 기름이 층으로 분리되듯이 두 상이 섞이지 않고 분리되는 현상)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는 납이나 구리를 함유한 색(흰색, 녹색 등)과 황을 함유한 색(버밀리온, 울트라마린 등)을 자주 함께 사용하였는데, 이들은 함께 사용할 시 서로 반응하여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나무판에 석회를 발라서 평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석회는 탄산화하여 울트라마린 등과 반응하여 탈색된다.
석고 위에 템페라와 유채로 그린 <최후의 만찬>은 완성 당시 완벽한 조화와 공기원근법의 수단인 스푸카토 기법을 예수의 풍경에 사용하여 신비롭고 완벽한 조화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심한 박락(채색층이 균열되어 떨어지는 형상)이 일어나고 색채로 전체적으로 갈색이나 어두운색으로 변색 되면서 애물단지 명작이 되었다.
이에 작품을 보전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였지만, 1980년대부터는 대복원 작업을 거쳐 새로운 색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천재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성분인 물감에 대한 화학 공식을 정복하지 못해 후세에 다른 모습으로 복원되고 말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스펙트럼 분광학과 인상주의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 <인상(해돋이)>로 인해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기성 화단에서는 ‘아카데미즘’을 중시했는데, 이는 드로잉·색채론·구도론·해부학 등을 기초로 고전 주제에 대한 탐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잘 계획하여 작품을 그려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시대상에 반하여 모네는 <인상(해돋이)>이라는 작품을 통해 태양이 바다를 물들이는 순간의 빛과 장면을 포착해 화폭에 옮겨 담았는데, 이 작품을 두고 한 기자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단지 인상만을 그렸다.”라고 조롱하면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카데미즘의 정형화된 화풍에 따르지 않는 젊은 화가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개성과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는 화단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염료와 안료들을 개발시킨 산업혁명도 인상주의의 태동에 도움을 주었으며, 뉴턴에 의해 프리즘에 의한 색의 스펙트럼 분할이 밝혀지면서 인상주의 화풍에 불을 지폈다.
이에 인상파 화가들은 빛의 변화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밝은색을 표현하고자 하기 위해 병치혼합(직접 색을 섞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조건 등에 의해 눈의 망막에서 색이 혼합된 것처럼 보이는 중간혼합 일종)을 응용하였으며, 색을 섞지 않고 한정된 밝은색의 물감만으로 붓 터치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빨강과 파랑의 작은 색점들을 모자이크처럼 교차해 병치시켜 멀리서 보면 사람 눈의 잔상 효과에 의해 보라색으로 보이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붓 터치의 기법은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달랐지만, 병치혼합을 응용한 것은 인상파 화가들의 공통된 기법이었다.
과학과 예술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가 다년간 꾸준히 자연과학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며 독자들로부터 크게 사랑받은 이유는 각계 전문가들의 시선 속에 ‘조화된 학문’의 아름다움이 포착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과 교육 그리고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소통할 수 있게 한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그래서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종합적인 교양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미술의 태생적 기원을 화학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에이크, 밀레, 휘슬러, 미켈란젤로, 브뢰헬, 틴토레토 그리고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등 우리 화가들까지 조명하며 명화에 담긴 과학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