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과학’하는 즐거움
글·박창용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호기심과 경외감은 자연의 질서, 자연의 변화 과정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자연에 대한 이론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수능이라는 현실의 벽이 있지만, 잠시 자연 속에서 숨 쉬며 자연을 느끼고 그 속에서 ‘과학’하는 즐거움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로서의 활동과 이화여자고등학교의 교육 활동을 소개한다.
교과연구회 활동의 시작, 젊은 지구과학교사 모임
교사 첫 해였던 1998년 어느 날,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로부터 교과연구 모임에 나와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아 ‘젊은 지구과학교사 모임’의 활동을 시작했다. 카페에서 만나 교사로서의 수업 연구 과정에서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방학에는 지질학 논문 장소로 야외 답사를 함께 했다. 그해 교육청 사업에 공모하게 되면서 연구회의 이름을 ‘젊은 지구과학교사 모임’으로 결정했다. 그 당시 우리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기에 함께 소소하게 도서도 출판하고, 교육과정이 바뀌면 교과서 선정을 위한 교과서 분석도 하며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함께 나누었으며 벌써 20여 년째 함께하고 있다. 육체적으로 결코 젊다고 말할 수 없는 지금도 공부하려는 ‘젊은 마음’으로 만나 아직도 공부하고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르침을 위한 배움, 가르치며 배움 ‘자연탐사학교’
1991년 창립된 서울중등지구과학교육연구회(지교연)는 매해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해 교사 지질답사를 진행해 왔다. 평회원으로 1999년부터 몇 년간 열심히 참여했고, 이러한 활동을 눈여겨본 선배 교사들로부터 2001년 자연탐사학교 활동을 제안받았다. 자연탐사학교는 지교연의 부설 기관으로 지교연의 지질답사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 대상 지질답사를 목적으로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현재 40여 명의 정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격주로 모여 다양한 답사 경험을 공유하고, 효과 높은 답사 지도를 위한 교사로서의 내공을 쌓기 위해 연구한다.
자연탐사학교는 겨울엔 제주(2박 3일), 봄에는 강화(1일), 여름엔 경기 화성(2박 3일), 가을엔 경기 연천(1일)에서 연 4회의 학생 대상 탐사를 진행했다.
이 탐사를 위해 사전 답사와 교육 시뮬레이션과 선배 교사들의 지도 등을 통해 학생을 지도할 교사로서의 역량을 키웠고, 매년 교육 자료와 역량을 업데이트해 오고 있다.
하나의 작은 지구 시스템, 지구과학실 수업
1998년 부임하여 처음 만난 지구과학실은 본관 지하에 있는 어두컴컴한 방이었고, 3면에 층층이 암석 샘플로 채워진 곳이었다. 이 샘플은 저자의 전임 교사가 20여 년 동안 모아둔 먼지 쌓인 유산이었고, 부임 첫 한 학기를 샘플 세척과 분류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은 힘들고 지루했다기보다는, 다양한 암석 샘플을 두고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하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교사 초기 좋은 선배 교사들과의 인연으로 교과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야외지질학의 본질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지질 유산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좋을지 늘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05년 이화여고백주년기념관이 건축되면서 새로운 공간에 지난 몇 년간 고민하며 설계한 지구과학실을 이전하게 되었다. 설계 과정에서부터 기존의 암석 샘플을 어떻게 보관하고 전시할지를 고민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리장에 넣어 잠그고 만질 수 없는 샘플을 전시하느니 그냥 암석 책을 보는 게 낫다.”라는 하나의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 암석 샘플을 만지고 관찰할 수 있는 공간, 실험할 때만 찾는 곳이 아니라 지구과학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다양한 화분과 어항을 통해 small earth system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 교사와 학생에게 필요한 도서가 구비되어 있는 공간, 이 공간을 ‘작은 지구’처럼 꾸미고 살아있는 수업 공간이 되도록 구성했다.
실제 지구 시스템과의 만남, 과학캠프
처음 부임한 학교이자 27년째 근무 중인 이화여자고등학교는 1990년대 중반 선배 교사들이 몇 년간 과학캠프를 진행했다. 끊어진 전통을 되살리고 학생들에게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즐거움을 체험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2000년부터 새롭게 과학캠프를 구상했다. 첫 장소는 경남 고성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였다. 여러 선생님의 협조로 1박 2일간의 캠프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고, 이후로도 방학이면 경남 고성·진주, 전남 해남·보성·화순, 충남 보령 등의 지역으로 과학 캠프를 다녔다. 당일 코스로도 충북 단양, 경기 여주·연천·화성, 강원 철원, 인천 강화 등의 지역에서 과학캠프를 진행하며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접하며 지구과학을 하는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호흡하는 수업
지구과학의 한 학기 수업 계획 시작은 평가계획에서부터 시작한다. 10여 년 전부터 수행평가의 비중을 60%로 설정하고, 지필평가의 비중을 낮추었다. 학생들의 지필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수행평가 과정을 통해 성장하도록 하는 의도에서였다.
특히 수업 중에 학생들은 언제든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그래서 학기 첫 수업에서 ‘이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며 어떤 질문이든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수업 종료 후에는 거의 질문을 받아주지 않는다. 수업 중에 질문을 해야 학급의 모든 학생이 질문의 내용과 교사의 대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내용을 어떻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늘 숙제다. 그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사고치기 노트’이다. 사고치기 노트는 학생이 수업 중 질문한 내용에 대해 교사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내용을 기록하고, 학생의 생각으로 정리하여 다시 확인 받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나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피드백해 주거나 더 공부하면 도움이 되는 부분을 다시 짚어줄 때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교사의 피드백에 대한 학생의 내용 보강은 때에 따라 여러 번 계속 이어지기도 하며,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 교사가 판단하면, ‘Goooood’, ‘Nice’ 등과 같은 말로 하나의 상호작용을 마무리한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사로서 과학캠프와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과학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창용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교육을 전공하였다.
1998년 이화여고 교사가 된 첫 해 지질학 노두를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젊은 지구과학교사 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학생들을 위한 야외 지질 학습을 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자연탐사학교’에서도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0년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창립 이후 지금까지 사무국장으로 ‘토요일에 찾아가는 지질-화석 탐사’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해오고 있다. 2021년부터는 한국지구과학올림피아드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