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예술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익산 미륵사지
신라에 경주 황룡사가 있다면 백제에는 익산 미륵사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창건한 두 사찰은 사찰 규모와 건축 기술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백제와 신라를 대표하는 두 사찰은 아쉽게도 모두 소실되어 절터만이 당시의 위용을 증명하고 있다. 노승민(중학교 3학년)과 노승우(초등학교 6학년) 남매는 엄마 아빠와 함께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와 예술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익산 미륵사지로 답사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엄마의 묘책
승민이와 승우 엄마는 요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쉽다. 중학생 딸은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엄마와 마주하는 시간이 없다시피 하고, 둘째 승우는 사춘기가 한창이라 말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려는 마음에 ‘교과서로 떠나는 여행’ 체험을 신청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바람에 따라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흔쾌히 동의했다.
승민이와 승우 가족의 여행지는 익산 미륵사지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아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아이들은 인터넷도 검색하고, 교과서를 찾아보더니 2019년 복원을 완료해 관람객에게 공개한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선택이 의외였다고 했다.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고궁이나 사찰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고즈넉한 사찰 터에 탑 두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을 선택해서 의외였어요. 저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서 아이들의 선택에 만족했습니다.”라며 아이들과 마음이 통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서둘러 익산 미륵사지를 향해 출발했다. 3시간 남짓의 이동시간 동안 가족의 대화 소재는 한류 문화였다. K-Pop과 K-드라마, 게임까지 아이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 주제여서 그런지 이동시간 내내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내심 오늘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한류 이야기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백제의 찬란한 불교 유적과 마주하다
승민이와 승우 가족은 초여름 햇볕이 정수리를 따갑게 할 무렵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니,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미륵사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미륵사지 석탑은 그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웠다. 가족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서탑으로 향했다. 미륵사지에는 두 개의 탑이 남아있는데 그중 서탑은 1998년부터 20년 동안 복원 과정을 거쳐 2019년에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었다. 초등학생 승우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복원 작업이 오래 걸린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누나 승민이가 승우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내가 자료 찾을 때 봤는데 미륵사지 9층 석탑 중에 서탑 복원 사업이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 사업 중에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해.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탑을 복원하기 위해 시멘트로 덧칠해 놓아서 오히려 복원하는데 시간과 정성이 더 필요했나 봐.”라며 동생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사전 조사에서 찾은 기사를 가족과 공유했다. 1915년에 일제가 부은 콘크리트 더미를 벗겨내고, 석재 하나하나를 해체하고, 이를 다시 일일이 조립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한 김현용 학예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있던 석재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려는 노력 덕분에 사용률이 81%에 이른다. 새 돌을 많이 쓰면 21세기의 탑으로 비칠 수 있다. 탑 북쪽 면 석축(石築)을 포함해 총 2,400개, 탑 몸체에 1,627개, 탑 외부에 587개의 돌이 들어갔다. 전체 균형 여부를 살피고, 쌓았다가 불안하면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쉽게 넘어간 게 하나도 없다. 새 탑 만드는 것보다 공력이 3배는 더 들어간 것 같다.”며 복원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석조 유물 복원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고, 이렇게 얻은 기술을 불국사 석가탑 복원에 적용하기도 했으며,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에도 적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서도 견학을 왔다고 하니 20년 넘게 걸린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아빠에게 가람배치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
가족들은 서탑을 살펴보고 동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탑은 서탑과는 달리 9층 석탑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사방으로 열려 있는 동탑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승민이는 비슷한 모양의 탑이 왜 두 개 있는지 궁금하다고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사찰을 지을 때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거든, 그걸 ‘가람배치’라고 해. 그런데 가람배치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달라. 패션에도 유행이 있듯이 가람배치도 그런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어.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이라고 할 수 있는 황룡사는 3금당 1탑 형식이고,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1금당 2탑 형식이 대세였어. 너희들이 잘 아는 불국사도 탑이 두 개 있잖아. 다보탑과 석가탑 이렇게 말이야. 백제의 가람배치는 기본적으로 1금당 1탑 형식인데 미륵사만 유독 3금당 3탑 형식으로 창건되었어. 조금 전에 보고 온 서탑과 동탑 그리고 그사이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탑이 있었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말이야.” 아빠의 연이은 설명에도 아이들은 신기한 듯 이야기에 주목했다.
국내 유일의 지하 박물관 관람
가족들은 목탑이 있었던 자리를 둘러보고 그 규모에 놀랐다. 한 변의 길이가 19.5미터로 이를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 높이가 50미터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탑을 처음 봤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높아서 놀랐었는데 그것보다 두 배 이상 높았을 것이라니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금당지까지 돌아보자, 아이들은 지치기 시작했는지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무더운 초여름 날씨에 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 넓은 절터를 답사하려니 지칠법하다. 엄마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아이들을 재촉해 시원한 국립익산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곳 박물관은 전국 최초로 지하에 조성된 박물관이다. 평지에 있는 미륵사지의 조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지하에 만든 것이다. 국립익산박물관에는 미륵사지 유물 발굴 과정에서 발견한 유물과 서탑 복원할 때 발견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원한 박물관에서 기운을 차린 승우는 여러 유물 중에서 모형으로 복원해 놓은 미륵사 목탑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아빠의 설명대로 목탑이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어서 균형이 잡혀 보인다”는 승우의 유물 감상평은 제법 그럴듯했다.
중학생 딸 승민이는 “국립익산박물관이 미륵사지와 백제 문화를 잘 보존해 전시하고 있어서 좋았고, 특히 지하 박물관이라는 독특한 형태가 신기했어요. 백제와 익산 미륵사지의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서 앞으로 교과서에서 보게 되면 더 반갑고 친근할 것 같아요.” 라고 익산 미륵사지 여행을 평가했다.
장마를 며칠 앞둔 뜨거운 초여름날 선조의 지혜와 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넓은 사찰 터를 답사하고,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백제 불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는 데 모든 가족이 동의했다. 엄마는 미륵사지 석탑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낙엽과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을에도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고 전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 국립익산박물관
위치: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운영 시간: 09:00~17:30 (매주 월요일, 1월 1일과 설·추석 당일)
관람 요금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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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