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 반세기 작업을 만나다
국립현대미술관서 최초로 조경 전시
MMCA Poster
정영선_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1941~)의 삶과 작업을 되짚어 보며, 1970년대 대학원생 시절부터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까지 반세기 동안 성실하게 펼쳐 온 조경 활동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시 정보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 전시명 :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전시기간 : 2024년 4월 5일 ~ 9월 22일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서는 60여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조경가 정영선의 아카이브 대부분이 최초로 공개된다. 파스텔, 연필, 수채화 그림, 청사진, 설계도면, 모형, 사진, 영상 등 각종 기록자료 5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정영선 조경가는 주제별 대표작을 통해 도시 공간 속 자연적 환경이 설계된 맥락과 고민, 예술적 노력을 드러내고, 이러한 사유와 철학은 조경 건축의 직능을 넘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환원된다.
전시는 크게 7개의 ‘묶음’으로 나뉘는데 이는 경계가 느슨한 최소한의 구획을 통해 관람객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각 프로젝트의 맥락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첫 번째 묶음 ‘패러다임의 전환, 지속가능한 역사 쓰기’에서는 ‘장소 만들기’의 현장이 된 조경의 사례를 살펴본다. 한국 최초의 근대 공원인 <탑골공원> 개선사업(2002)과 ‘비움의 미’를 강조한 <광화문광장> 재정비(2009), 일제강점기 철길 중 유일하게 조선인의 자체 자본으로 건설된 경춘선을 공원화 한 <경춘선숲길> (2015~2017) 등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며,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조경의 역할이 드러난 프로젝트들이다.
두 번째 묶음 ‘세계화 시대, 한국의 도시 경관’은 주요 국제 행사 개최와 더불어 한국을 찾는 세계인에게 선진화된 도시 경관의 인상을 주기 위해 동원된 사업을 다룬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및 아시아공원>(1986),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 <대전엑스포>(1993) 등 한국의 경제, 문화, 기술적 도약의 기회였던 국가 주도 대형 프로젝트들을 통해 조경가가 제시한 발전된 도시 모습의 비전과 동시에 인공적인 개발 사업에 땅의 논리를 연결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세 번째 묶음 ‘자연과 예술, 그리고 여가생활’은 경제 성장이 동반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수요가 생긴 가족단위 여가활동의 장소들을 소개한다. 종합문화 예술단지 <예술의전당>(1988)의 조경 구상도와 모형 사진, 스포츠 중심의 휴양 리조트 <휘닉스파크>(1995)의 식재계획도와 피칭 자료 등을 통해 1980~90년대 당시 디자이너들의 소통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는 인문학 레지던시 <두내원>(2025 예정)이 소개되는데, 마르틴 하이데거의 『숲길』에서 영감을 받은 산책로의 개념 스케치가 공개된다.
네 번째 묶음 ‘정원의 재발견’은 선조로부터 향유되어 온 우리 고유의 식재와 경관, 공간 구성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정원을 들여다본다. 전통정원 요소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무대가 된 호암미술관의 <희원>(1997)으로 시작해 경기도와 중국 광저우 사이의 교류 정원으로 조성된 광동성 월수공원의 <해동경기원>(2005),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개인 정원 <포항 별서 정원>(2008) 등을 만날 수 있다.
다섯 번째 묶음 ‘조경과 건축의 대화’는 건축과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탄생한 조경 작업을 소개한다. 제주 오설록(2011, 2023)의 <티뮤지엄>, <티테라스>, <티스톤>, <이니스프리> 건축물 사이에 조성한 제주 특유의 지형을 살린 개인 주택인 <모헌>(2011)의 중정 정원에 담긴 깊은 숲의 풍경 등을 통해 조경가와 건축가의 내밀한 상생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섯 번째 묶음 ‘하천 풍경과 생태의 회복’은 강이 흐르는 곳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습지를 보호하고 도심 속 물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다룬다. 정영선은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 2007), <선유도공원>(2001), <파주출판단지>(2012, 2014) 등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 기반 시설에 수공간을 삽입했다.
일곱 번째 묶음 ‘식물, 삶의 토양’ 다양한 식생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교육하는 수목원과 식물원, 자연의 치유적 속성이 강조된 명상과 사색의 장소들을 조명한다. 광릉수목원으로 불리던 한국 최초의 <국립수목원> (1987)의 설계 청사진과 남해의 독특한 기후대의 식생을 담은 <완도식물원>(1991)의 조감도, 미국 뉴욕주 북부의 허드슨강 상류에 자리한 원불교 명상원인 <원다르마센터>(2011)를 구상한 수채 그림, 대지와 식생 현황도 등이 공개된다.
서울관의 야외 종친부마당과 전시마당에는 이번 전시를 위한 새로운 정원이 조성된다. 석산인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미술관 내·외부에 재현하고 계절감을 더하는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을 식재하여 관람객에게 휴식처를 제공함과 동시에 조경가의 작품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조경가 정영선이 평생 일군 작품세계 중 엄선한 60여 개의 작업과 서울관에 특화된 2개의 신작 정원을 선보이는 특별한 전시”라며, “그의 조경 작품에서 나타나는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이 있기까지의 각고의 분투와 설득, 구현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정영선의 조경 철학을 깊이 있게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